논쟁3 언론 징벌적 손배 찬성

"돈 목적으로 가짜뉴스 생산, 징벌적 손배 이미 늦었다"

[창간21주년 기획 논쟁 /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 찬성]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

21.02.22 07:10최종 업데이트 21.02.2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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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는 확증편향을 거쳐 더 많은 독자를 끌어온다. 이런 구조를 깨기 위해선 경제적 제재가 병행돼야 한다. 민사 소송을 제기해도 배상액은 청구액의 1/10 정도밖에 안 되고 60% 정도는 500만 원 안쪽이다. 언론 재벌 또는 매월 수 억 원을 버는 유튜버들은 이를 필요경비로 생각할 거다."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 이희훈

 
"가짜뉴스에 대해 형사처벌 외에도 경제적 배상 책임을 물도록 해야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우리는 독재정권 시절 너무도 언론의 자유를 갈망했었다. 때문에 한편으론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 신화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다"라며 언론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찬성 입장을 내놨다.
 
이 교수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모든 자유는 자유권이 지닌 내재적 한계 때문에 제한할 수밖에 없다"며 "막강한 힘을 가진 언론은 특히 더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2월 초 민주당은 '언론개혁 6개 법안'을 발표했다. 그 중 윤영찬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가장 뜨거운 감자다. 이른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불리는 법안이다.

법안에는 "정보통신망 이용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 또는 불법정보 생산·유통으로 명예훼손 등 손해를 입은 경우 그 손해를 입힌 이용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법원은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결정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즉 정보통신망 이용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문제가 될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할 수 있도록 정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용자'의 범위에 1인 미디어, 유튜버, SNS 사용자뿐만 아니라 언론과 포털사이트까지 포함시키겠단 방침이다.
 
이 교수는 "언론 신뢰도가 꼴찌 수준인 상황에서 전국언론노조나 한국기자협회가 환영까진 몰라도 고육지책으로 이 제도를 수용할 줄 알았다"라며 "많은 기업이 왜곡보도로 망하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심지어 우린 대통령(노무현 전 대통령 지칭)까지도 그렇게 됐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짜뉴스에 대해 형사처벌 외에도 경제적 배상 책임을 물도록 해야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라며 "통계를 보면 민사 소송을 제기해도 배상액은 청구액의 1/10 정도밖에 안 되고 60% 정도는 500만 원 안쪽이다. 언론 재벌 또는 매월 수 억 원을 버는 유튜버들은 이를 필요경비로 생각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래 이 교수와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왜곡보도에 대통령도 죽은 나라, 언론 자유 신화에 빠져 있다"
 

"중요한 건 형사 소송은 기자 정도만 처벌받지만 민사는 언론사도 함께 책임을 진다는 거다. 이게 중요하다."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 ⓒ 이희훈

 
-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론 신뢰도가 꼴찌 수준인 상황에서 사실 전국언론노조나 한국기자협회가 환영까진 몰라도 고육지책으로 이 제도를 수용할 줄 알았다. 이들의 성명을 보면 '언론을 상대로 제조물의 책임을 묻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 기사는 일반 제조물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많은 기업이 왜곡보도로 망하지 않았나. 많은 사람이 죽지 않았나. 심지어 우린 대통령(노무현 전 대통령 지칭)까지도 그렇게 됐다. 저는 독극물보다 유해식품이 더 위험하다고 본다. 독극물엔 '주의'라고 적혀 있지만 유해식품은 스스로 건강식품이라고 한다. 허위·조작 정보, 가짜뉴스가 그렇다.
 
가짜뉴스에 대해 형사처벌 외에도 경제적 배상 책임을 물도록 해야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짜뉴스는 확증편향을 거쳐 더 많은 독자를 끌어온다. 이런 구조를 깨기 위해선 경제적 제재가 병행돼야 한다. 통계를 보면 민사 소송을 제기해도 배상액은 청구액의 1/10 정도밖에 안 되고 60% 정도는 500만 원 안쪽이다. 언론 재벌 또는 매월 수 억 원을 버는 유튜버들은 이를 필요경비로 생각할 거다."
 
- 명예훼손 등으로 형사 처벌이 가능한데 민사 소송으로 언론사를 징벌하는 건 이중처벌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원래 민·형사 소송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건 형사 소송은 기자 정도만 처벌받지만 민사는 언론사도 함께 책임을 진다는 거다. 이게 중요하다. 데스크나 사주의 입김이 작용해 그림을 만들어 오라든가 정파적으로 기사를 쓰라는 강요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야당과 언론단체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두고 표현의 자유 침해, 언론 검열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실적 악의를 품고 내보낸 기사가 너무도 많은 게 현실이다. 법에 걸리지 않으려면 악의를 버리고 공정하게 보도하면 된다. 그럼 겁날 게 없다. 또 사실 겁이 좀 나야 예방 효과가 있는 거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수정헌법 1조에 넣어 불가침의 권리로 정해뒀다. 그렇다고 미국 언론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갔나? 유럽학계에선 미국 언론은 망가졌다고 평가한다. 특히 중동 문제에 관해선 유대 자본에 뿌리를 둔 주요 언론들이 9.11테러 이후 전쟁을 부추겼다고 평가한다.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에선 아직도 고급 전문지를 중심으로 토론 문화가 유지되고 있지만 미국, 이탈리아에선 정치적 소통을 위한 통로가 막혀 민중의식의 빈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 이른바 공론장의 부재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모든 자유는 자유권이 지닌 내재적 한계 때문에 제한할 수밖에 없다. 막강한 힘을 가진 언론은 특히 더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독재정권 시절 너무도 언론의 자유를 갈망했었다. 때문에 한편으론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 신화에 빠져 있다. 남의 인권을 침해할 자유, 가짜뉴스로 명예를 훼손할 자유는 없다."

"남용우려? 그래서 법원이 중요"
 

"반대 의견을 지닌 이들이 명분에서 밀리면 '시기상조론'을 들고 나온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논의됐다. 지금 언론 신뢰도가 훨씬 더 추락한 상황 아닌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 ⓒ 이희훈


- 정부기관, 대기업 등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전략적 봉쇄 소송'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요건이 까다롭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인정돼야 한다. 그 판단도 정부가 아닌 법원이 한다. 물론 모든 법엔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소송을 남발할 수도 있다. 그래서 법원이 중요하다. 미국의 법원은 이러한 전략적 봉쇄 소송의 경우 대부분 각하해버린다."
 
- 입증 책임을 '손해를 입힌 이용자'에게 지도록 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있다. 즉 언론이 고의나 중과실이 없었다는 걸 입증해야 하는 건데 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미국은 그러한 문제점 때문에 공인이 소를 제기할 경우 스스로 입증 책임을 지도록 정해뒀다. 원래 언론에게 입증 책임이 있었는데 1964년 연방대법원의 '설리번 사건'의 판결을 통해 바뀌게 된 것이다. 현재 단순 손해배상이 아닌 징벌적 손해배상의 경우 공인이 아닌 일반인도 언론의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일반인의 경우 언론사가 입증 책임을 지고 공인의 경우 스스로 입증 책임을 지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실 소송 제기 자체가 일반인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조선일보>가 '민주노총 소속 서울대병원 노조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딸기밭으로 연수를 다녀왔다'는 식의 오보를 냈는데 이건 기자가 서울대병원 노조에 확인 전화도 안 했다는 거다. 민주노총 소속인 서울대병원 노조를 비난하려는 악의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감이라고 생각한다."
 
- 실제 일반시민이 얼마나 이 법으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존재한다.
 
"일반인들은 억울한 보도의 피해자가 돼도 '당하고 말지 어떻게 언론과 싸우나'라고 생각한다. 홍가혜씨의 사례만 봐도 뒤늦게 무죄 판결을 받고 언론을 상대로 민사 소송에서 이겼지만 이미 고통은 받을 대로 다 받은 상황 아닌가. 일반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허위보도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필요하다."
 
- 윤영찬 의원 법안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을 손해배상 조건으로 삼고 있다. 별도로 정청래 의원 법안의 경우 '악의적'이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 기준들이 모호하단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통해 정하면 된다. 더 중요한 건 법원이 판례를 쌓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사실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와 관련해 많은 판례가 쌓여있다. 문제는 양형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쉽게 설명해 양형 기준을 높이겠다는, 판사 자의에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제란 명칭이 언론을 지나치게 모욕하는 면이 있다. 언론피해 구제법이라고 했으면 저항이 좀 덜했을 텐데 아쉽다."

- 법안의 정교화 과정을 위해 민주당이 추진하는 2, 3월 내 입법은 무리라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반대 의견을 지닌 이들이 명분에서 밀리면 '시기상조론'을 들고 나온다. 또 '원론 찬성, 각론 반대' 의견을 내놓는 게 토론의 역사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논의됐다. 지금 언론 신뢰도가 훨씬 더 추락한 상황 아닌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미 법안의 뼈대가 있으니 국회의원, 국회 전문위원, 정부가 머리를 맞대면 법안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 2월이면 가능하고 3월이면 충분하다."

"언론 윤리, 항상 뒷전이었다"
 

"문제적 기사는 절대 스스로 도태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세월호 참사 이후에 자정 활동이니, 언론윤리강령이니, 재난보도준칙이 다 있지만 소용이 없었다. 생존이 걸린 사업 경쟁 체제에서 언론 윤리는 항상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 교수. ⓒ 이희훈


- 언론 신뢰도가 낮은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선진국에선 활발하지만 우리는 죽어있는 게 바로 미디어 자체 비평과 미디어 상호 비평이다. 자체 비평은 '좋은 게 좋다' 식의 주례사 비평 일색이다. 상호 비평은 동업자 심리가 작동해 서로 눈감아주거나 간혹 비판하면 '너나 잘해' 식으로 이어져버린다. 메이저 언론 가운데 유일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었던 KBS의 <저널리즘토크쇼j>도 결국 중단돼버렸다.
 
또 하나 문제는 언론인의 저널리즘 교육과 일반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저널리즘스쿨에서 저널리즘의 기본을 배우고 언론인이 되는데 우린 언론사에 들어가 1년 선배, 1진 선배한테 취재기법과 문장스타일을 배운다. 심지어 선배들의 가치관까지 빨리 닮아가는 사람이 좋은 출입처를 배정받고 승승장구한다. 도제식으로 물들어버리는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경우 정부가 많은 예산을 들이고 일정 성과도 냈지만 그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본다. 정부나 정부 예산을 받는 재단이 추진해 정치적 중립성이 항상 문제였다. 또한 언론 현장 외 교육 현장, 즉 대학 및 초·중·고교에 신문·방송을 열심히 모니터링하는 교수·교사가 드물다. 미디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민간 베이스의 미디어 리터러시 스쿨이 필요하다."
 
- 문제가 되는 기사는 자연스레 도태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절대 도태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세월호 참사 이후에 자정 활동이니, 언론윤리강령이니, 재난보도준칙이 다 있지만 소용이 없었다. 생존이 걸린 사업 경쟁 체제에서 언론 윤리는 항상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 정부나 여당의 언론개혁 움직임이 부족하단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언론개혁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
 
"법을 바꾸지 않고 집행만 제대로 해도 개혁할 수 있는 게 많다. 언론운동 하시던 분이 방송통신위원장으로 가서 기대했는데 지금은 직원들에게 포획된 것 같다. 그 직원들 다수가 보수 신문에 종편 나눠주고 특혜를 부여해 키워왔던 사람들이다. 태세전환이 쉽겠나. MBN은 태어날 때부터 자본금이 문제였고, TV조선과 채널A는 방송심의 제재 건수가 한도를 넘어도 재승인을 받고 있다. 그러니 전혀 겁내지 않는다.

뉴스 채널이 너무 많아지면 오히려 선택이 힘들어진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 효과로 채널 선택의 여과 장치에 거품이 껴서 여론의 다양성을 해치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을 추진하고 종편의 진입규제 및 재승인 제도를 풀겠다는 건데 이런 모습이 시청자를 위한 방송통신위원회인지 의심이 든다.
 
신문은 발행 부수의 신화에서 깨어나야 한다. 세계 일류 신문들은 대개 10~20만 부 수준이다. 많아봤자 40만 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번에 <조선일보> 9개 지국 유가부수를 조사했더니 그동안 <조선일보>가 발표해온 것의 절반 수준이었다. 광고주에게 허위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결국 절반은 폐지 업체로 간다는 얘기다. 제 페이스북 친구가 아프리카 조그마한 도시에 사는데 시장에서 한국 신문이 군것질 포장지로 쓰이는 모습을 찍어 보내왔다.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는 나무를 잘라, 그렇게 생산한 펄프를 대량 수입해 잉크만 묻혀 다시 폐지로 재수출하는 말도 안 되는 짓을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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