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30 07:15최종 업데이트 24.04.3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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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당선인들이 12일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당선인들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번 총선이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 선거였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지율 1%라도 할 일은 하겠다고 큰소리쳤던 윤석열 대통령조차 소통하겠다며 먼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아래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한 걸 보면, 그도 내심 국민에게 심판의 회초리를 맞았다는 것을 느끼는 듯하다. 

정치평론가들은 윤석열 정권이 마침내 레임덕에 돌입했다고 진단한다. 승리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은 환호하는 가운데 공세를 어떻게 펼칠지 전략을 짜느라고 고심이다. 다음 대선이 언제쯤 치러질지 예측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마음껏 승리의 기쁨을 노래해도 괜찮을 만한 상황이다. 그런데 필자는 그냥 이렇게 지나가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민주당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이긴 선거인가, 정부 여당이 패배한 선거인가.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패배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결과를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민주당이 아니라는 사실이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계속된 실수와 군계일학과도 같았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활약이 겹쳤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물론 이재명 대표의 끈질긴 유세와 민주당 후보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대세를 결정짓는 키(key)는 아니었다. 

윤석열 정권 출범 후 민주당의 행태를 돌아보면, 이번 선거 승리의 공을 민주당에 돌리기는 어렵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번에 민주당이 거둔 승리는 본질적으로 어부지리다. 그러니 지금 민주당이 할 일은 개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승자의 성찰'이 아니겠는가.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미래를 제대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필자는 민주당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반성을 촉구하는 몇 가지 지적을 하려고 한다.

개혁 전사의 등 뒤에다 화살을 쏘아댔던 민주당 인사들
 

22대 총선에서 12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조국혁신당 파란불꽃선대위 해단식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조국혁신당 사무실에서 열린 모습. 당선자 자격으로 꽃다발을 목에 건 조국 대표. ⓒ 권우성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민주당은 개혁을 천명하고 발걸음을 뗀 후 얼마 못 가서 처음 입장을 철회하고는 개혁의 전사로 나섰던 사람들을 뒤에서 공격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다. 핑계는 '중도층이 떠나간다', '역풍이 분다', '선거에서 지게 생겼다' 하는 것이었다. 이런 행태에 희생된 대표적인 인물이 조국 교수와 추미애 전 장관이다. 두 사람은 검찰개혁을 해 달라는 당부를 거절하지 못해서 독배를 받았다가 가족까지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겪었다. 

전투에서 병사와 장수가 쓰러지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자기편 장수가 적군의 화살을 맞고 쓰러졌는데 거기다 대고 등 뒤에다가 화살을 쏘아댄다면 그건 이상하기 짝이 없다. 지난 몇 년간 민주당 사람들이 바로 그런 짓을 했다. '조국의 강'이니 '추-윤 갈등'이니 하는 보수 언론의 조어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으며 쓰러진 개혁 전사를 매도하기에 열심을 내지 않았는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2월 13일 조국 교수가 신당 창당을 선언했을 때 민주당의 선거연합 추진단 단장 박홍근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절체절명의 역사적 선거에서 조 전 장관의 정치 참여나 독자적 창당은 결코 국민의 승리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불필요한 논란과 갈등, 집요한 공격만 양산시킬 것"이라며, "과도한 수사로 억울함이 있어도 진보개혁 세력 승리를 위해 자중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같은날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KBC '여의도 초대석'에 출연해 "조 전 장관의 신당에 대해 방치하거나 혹은 받아들이거나 하는 경우 이른바 우리가 어렵게 건너갔다고 생각했던 조국 사태, 조국의 강 이런 부분을 다시 되돌아가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추미애 전 장관과 조국 교수가 이번 총선에 출마할 뜻을 내비치자 '조·추·송(송영길까지 포함) 리스크'라는 말이 새롭게 회자하면서, 이들의 출마가 중도층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민주당 안에 팽배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21년 6월 2일 송영길 당시 민주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조국 교수 대신 사과하는 '촌극'을 벌였다. 그해 12월에는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까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리 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비판받는 문제의 근원 중 하나"라며 "아주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사과드린다"고 했으니 당시 민주당 분위기가 어땠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나놓고 보니 어떤가. 이번 총선 과정에서 과연 '조·추·송 리스크'가 작용했는가. 세 사람 때문에 중도층이 국민의힘 쪽으로 돌아서는 역풍이 불었는가. 민주당 인사들이 걱정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다수의 국민은 '조국의 강'이 아니라 '윤석열의 강'이 문제였고 추미애 전 장관의 지나친 고집이 아니라 윤석열 총장의 '검찰 쿠데타'가 문제였음을 직시하고 있었다. 

총선 과정 내내 소위 중도층 중 다수가 조국 대표의 선명한 입장에 열렬히 환호했고, 지금은 추미애 당선인의 국회의장 취임을 지지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지켜보면서 지난 몇 년간 조국의 강, 추-윤 갈등 운운했던 민주당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야 마땅하다. 지금쯤이면 그때 오판했던 사람들 가운데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나서서, 우리가 조·중·동의 선전을 내면화하는 바람에 큰 잘못을 범했다고 고백해야 하지 않겠는가. 

감세 정책에 합의해 주고는 웬 부자 감세 비난인가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1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 도중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대통령실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퇴장당한 데 대한 입장표명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윤석열 정권의 감세 정책으로 인해서 세수가 격감하고 국가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법인세 세율 인하로 2023년 법인세 세수는 2022년보다 23조 1509억 원(22.4%)이나 줄었고, 종부세 완화로 2023년 종부세 세수는 2022년보다 2조 2024억 원(32.4%) 감소했다. 그 결과 국세 수입이 예산보다 56조 4000억 원이 줄고 국가 채무는 59조 3000억 원이 늘어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윤 정권이 부자 감세를 부르짖다가 역대급 세수 부족을 초래했다고 맹렬히 비난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이 무리한 감세 정책을 밀어붙일 때 민주당은 무엇을 했을까. 윤 정권의 법인세 감세와 종부세 완화는 법률 개정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일이다. 흔히 비난하듯이 시행령만 고쳐서는 안 되는 일이어서 민주당이 합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는 말이다. 심히 유감스럽게도 민주당은 윤 정권의 법인세 감세와 종부세 완화에 동의했다. 국회 의석 180석을 가지고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법률 개정에 합의했던 것이 바로 민주당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은 윤 정권이 부자 감세를 하는 바람에 현재의 세수결손이 초래됐다고 비난할 자격이 없는 셈이다. 

여기서 문제적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김진표 국회의장이다. 그는 국회의장이 되기 전부터 종부세를 상위 2%에게만 부과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민주당 안에서 종부세 후퇴의 분위기를 조성했고, 국회의장이 된 다음에는 법인세 개편과 관련해 2년 유예를 전제로 국민의힘의 개정안에 찬동하는가 하면 최고세율을 1% 포인트 낮추는 중재안을 제안함으로써 법인세 과세표준 전 구간 세율을 1% 포인트씩 낮추는 일에 물꼬를 텄다. 이런 인물을 국회의장으로 뽑았으니 민주당 의원들의 잘못이 크다. 

병립형 주창자들, 다 어디에 갔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유성호

 
작년 연말부터 여의도 정가를 들썩들썩하게 만들었던 최대 이슈는 선거제도다. 병립형이니 연동형이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 제도가 연동형이었으니 민주당으로서는 가만히 있으면 연동형으로 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민주당 안에서 선거제도를 병립형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의견이 표출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민주당 지도부가 거기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잠깐, 병립형이 뭔지 연동형이 뭔지부터 알아보자. 둘 다 국회의원 비례대표 제도의 유형인데(비례대표 제도 자체가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가 의석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전자는 정해진 비례 의석수를 각 정당의 정당 지지율에 따라 단순 배분하는 제도이고, 후자는 각 정당의 정당 지지율에 따라 지역구와 비례를 합한 정당 의석수를 미리 정하고, 각 정당의 지역구 의석수가 거기에 미달하는 경우 비례의석으로 그 차이를 메워주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차이 전체가 아니라 절반만 메워주고, 메워주는 의석수가 미리 정해진 총 비례 의석수(현재 46석)를 초과할 때는 메워주는 의석수를 비례적으로 축소하기 때문에 완전한 연동형이 아니다. 그래서 '준' 자를 붙이는 것이다.

2020년 병립형으로 유지하던 비례제도를 준연동형으로 바꾼 데는 이유가 있다. 소선거구제에서 지역구 방식으로만 국회의원을 선출하면 득표율과 의석수 비율 간에 큰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를 병립형 비례제도로 보완하더라도 괴리는 거의 해소되지 않는다(특히 우리나라처럼 전체 비례 의석수가 적을 때는 더 그렇다). 정당 득표율은 제법 높지만 모든 지역구에서 1위를 하지 못해서 지역구 의석을 1석도 얻지 못한 정당은 병립형 비례제도 하에서는 유권자의 지지에 한참 미달하는 의석수밖에 얻지 못한다. 

준연동형 비례제도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비율 간의 괴리를 완화해 선거의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되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상당한 정당 지지율을 얻는데도 불구하고 의석수를 제대로 얻지 못한 진보 정당들이 약진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한마디로 당시의 제도 변화는 '정치개혁'의 일환이었다. 

선거제도의 병립형 회귀는 투표의 비례성을 높이려는 정치개혁의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었고 민주당의 지역구 의석 확보에도 불리한 것(지역구 후보 난립, 약속 위반에 대한 비난 등을 생각해보라)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절대로 선택해서는 안 되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병립형 회귀로 기울었다. 이는 비례대표 의석 몇 개를 더 확보하려는 목적에 불과했고, 만약 그랬다면 비례대표 몇 석을 더 확보하려다가 지역구에서 훨씬 많은 의석을 잃을 수밖에 없었으니 소탐대실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민사회와 나라를 걱정하는 지식인들의 눈물 어린 노력이 있었다. 마침내 이재명 대표는 마음을 돌려서 현행 연동형 제도를 유지하겠다고 결단했다. 

필자가 듣기로 민주당 최고위원 대부분이 병립형 회귀에 찬성했다고 한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가 연동형 유지 결단을 내린 다음날인 2월 6일, 그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나와서 자기는 "그런 말 했던 기억이 없다"며 껄껄거렸다. 게다가 자신이 '이 시대 참 연동형 주장자'라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실수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해야 하는 자리에서 '오리발'을 내밀다니 참으로 염치없는 짓 아닌가. 

사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이번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의 약진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윤석열 정권 심판의 열기도 그처럼 고조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은 민주당 인사들은 압승의 토대가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도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병립형 회귀를 목소리 높여 주장했던 사람들 중 누구라도 나서서 그때 '잘못 판단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라고 고백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민주당에 꼭 필요한 것
 

22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선자(경기 하남시갑)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4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현재 민주당에서 최대 이슈는 국회의장 선출 문제다. 과거 같으면 최다선 고령자 우선으로 조용하게 결정되었을 텐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출마자가 여럿 등장해 분위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이를 두고 당내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그 와중에 민주당의 '고질병'과도 같은 이야기가 또 흘러나오고 있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차기 국회의장 유력 후보인 추미애 당선인을 두고 추-윤 갈등의 당사자라는 둥, 정권교체에 책임이 있다는 둥 철 지난 레코드를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수 언론과 국민의힘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지금 민주당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승자의 성찰'이다. 이것이 없이는 민주당은 또 한 번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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