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웬디> 메인포스터

영화 <웬디> 메인포스터 ⓒ 영화사진진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꿈의 섬 네버랜드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내일이면 어른이 된다는 웬디의 이야기에 피터팬이 팅커벨의 요정 가루를 묻힌 뒤 함께 하늘을 날아 간 곳.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고 행복한 일만 가득한 곳의 이야기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피터팬>의 이야기는 1953년 디즈니에서 제작된 14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의 내용이다. 1935년 <피터팬> 연극을 관람한 월트 디즈니가 이 이야기에 빠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은 뒤 클라이드 제로니미, 월프레드 잭슨 감독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다. 붉은색 깃털이 달린 초록색 모자에 초록색 상의와 타이즈를 입은 피터팬의 모습은 이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피터팬이 처음 세상에 등장한 것은 1902년 소설가 제임스 매튜 배리에 의해서다. 원래 피터팬의 이야기는 그의 소설 <작은 하얀 새(The Little White Bird)>에 수록된 내용 가운데 일부였다고 한다. 이 피터팬 이야기가 이후 크리스마스 아동극으로 만들어졌고, 작가는 1911년 이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 <피터와 웬디(Peter and Wendy)>라는 이름의 동화 이야기로 다시 만들었고, 이 내용이 월트 디즈니의 눈에 들게 된 것이다.

다만 원작이 수록되어 있던 소설 <작은 하얀 새>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의 내용과는 많은 부분 달랐으며, 성인을 위해 쓰여진 작품으로 상당히 무겁고 어두운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는 동화로 원작 격에 해당하는 <피터와 웬디>도 마찬가지인데, 가령 피터팬이 후크의 손을 자르는 장면에 대한 묘사나 네버랜드의 아이들이 어른이 될 경우 피터팬이 직접 제거하는 등의 장면들이 수록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답고 신비한 동화 나라 네버랜드의 이야기는 월트 디즈니 버전의 애니메이션에 가까우며, 세월이 흐르며 아이들을 위한 진짜 동화(童話)로 그 모습을 바꾸어 온 셈이다.
 
 영화 <웬디> 스틸컷

영화 <웬디> 스틸컷 ⓒ 영화사진진


02.
영화 <웬디>는 이 네버랜드의 이야기와 영원한 동심을 상징하는 피터팬의 이야기를 웬디(데빈 프랑스 분)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작품이다. 장편 데뷔작인 <비스트>로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 벤 자이틀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앞서 설명한 디즈니 프로덕션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가까워 보이는 이 작품은 어린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상실하게 되는 여러가지 감정과 순수함을 들여다 보며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고자 한다.

영화는 기찻길 옆의 오래된 작은 식당에서 시작된다. 이따금씩 철로 위를 달리는 화물 열차가 창문 바로 바깥 쪽으로 보이는 곳이다. 어릴 때부터 이 창문으로 열차가 달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웬디는 어느 날 기차 위에서 또래 아이 하나를 발견한다. 피터(야슈아 맥 분)다. 그의 자유로운 몸짓과 곡예에 호기심이 생긴 웬디는 쌍둥이 오빠 더글라스(게이지 나퀸 분), 제임스(개빈 나퀸 분)와 함께 달리는 기차 위에 올라탄다. 그렇게 피터를 따라간 곳은 영원히 어린 아이로 살 수 있는 신비로운 섬, 네버랜드다.

03.
본격적으로 네버랜드에서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영화가 시작되는 부분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을 키우며, 심지어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웬디를 돌보며 가게를 꾸려나가는 엄마와 할머니의 모습이다. 이들은 이 좁은 공간에 인생이 묶여버린 사람들이다. 나름대로 어린 시절의 꿈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자라는 동안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선택이나 지금의 모습이 나쁘다거나 초라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음식과 가게를 사랑해주는 손님들과 함께 그리는 내일. 그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다만, 꿈의 이야기를 가져다 붙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의 모습이 그들이 어린 시절 꿈꾸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세 아이가 집을 떠나기 전날 밤, 웬디와 엄마가 나누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중요하다. 웬디는 엄마의 어린 시절 꿈에 대해 묻는다. 그 꿈을 지금은 왜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인지, 또 왜 이룰 수 없는지에 대해서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꿈도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는 엄마의 말을 웬디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웬디와 엄마는 삶의 같은 평행선 위에 놓여 있지만, 완전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이미 저만치 앞선 곳에 위치한 엄마의 시간 속에서 끌어올려진 말의 의미를 지금의 웬디가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이다. 옆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더글라스와 제임스도 엄마는 단지 늙었기 때문이라며 말을 보탠다.

이제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하던 웬디가 창 밖을 지나는 화물 기차를 보는 동안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엄마는 일찌감치 그 시절을 지났고, 또 한참의 세월을 더 지나왔다.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의 삶과 꿈, 늙어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 주어진 시간을 인생의 경험으로 치환해 나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 영화의 남은 러닝 타임을 메워야 하는 것은 웬디가 어떤 경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세월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영화 <웬디> 스틸컷

영화 <웬디> 스틸컷 ⓒ 영화사진진


04.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그 시간의 거리를 적절히 메우는 데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피터팬의 이야기를 가져와 활용한 것은 영리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을 수 있다는 원작의 설정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과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들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지어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또한, 원더랜드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들은 물리적 시간의 거리를 뛰어 넘어 이해가 가능케 하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영리함이 거기에서 멈춰서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크게 세 지점으로 나누어 본다. 조금 전에 언급했던 웬디와 그의 쌍둥이 오빠가 원더랜드에 들어가는 시점까지의 이야기가 하나. 원더랜드에서의 즐거운 시간이 펼쳐지며 모험이 시작되는 부분의 이야기가 또 하나. 그리고 더글라스가 실종되며 제임스의 노화가 시작돼 긴장이 고조되고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지점까지의 이야기가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될 것이다. 처음 두 개의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로 어느 정도의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 현실의 이야기에서는 문제를 제기하고 어른의 사정을 전한다면, 원더랜드의 지점에서는 그 문제의 반대편에서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동화적인 시선과 천진난만함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원더랜드에 머물고 있는 노인 버조(로웰 랜디스 분)를 등장시키면서부터 영화의 초반부에서 바르게 쌓아 올린 동화적 환상과 현실적 개연성 모두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한다. 웬디와 엄마의 사정을 오가며 양쪽의 이야기를 균형적으로 바라보던 영화의 시선은 이제 완전히 원더랜드의 이야기로만 매몰되면서 그 매력을 잃기 시작한다.

05.
더글라스가 실종되고, 상실과 슬픔을 이기지 못한 제임스가 점점 늙어가기 시작하며 갈등을 고조시키던 장면까지도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런 장면들을 위한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각색의 방향성이다. 영화는 중반부에 들어와 원더랜드의 이야기를 하면서부터는 어느 정도의 각색을 보여주고자 하나 큰 뼈대는 바꾸지 않는 선에서 소심하게 움직인다. 여기에서 그 뼈대가 되는 것은 여러 정황 상,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내용이 아니라 그 이전의 원작에 속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인데 후크의 손을 자르는 장면이나 늙기 시작한 아이들의 처분을 놓고 보이는 피터팬의 행동 등이 그런 장면에 속한다.

물론 우리가 아는 기존의 작품들에서도 웬디와 아이들이 원더랜드로 향한 이후의 이야기는 철저히 그들의 것으로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아이들의 동경만을 다루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의 꿈에 대한 좌절이나 안식, 적응과 대비되는 꿈의 속성을 원작의 원더랜드에 옮겨오고자 했다. 이 작품 <웬디>에서 원더랜드는 더 이상 어른을 동경하던 아이들의 꿈(Dream)과 모험의 공간이 아니라, 그런 어른들이 포기한 꿈과는 달리 자신의 꿈(Hope)을 완성시키기 위한 공간이 됐다.

완전히 다른 목표를 제시했지만 원작과 동일한 흐름을 따르는 동안 그 틈은 조금씩 계속해서 벌어지기 시작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어머니를 외치고 꿈을 외치며 연대와 생(生)을 호소해보지만, 이미 헐거워질 대로 헐거워져 버린 영화는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만다. 그간의 수많은 각색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미래를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웬디라는 캐릭터의 변화만이 그나마 이 작품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긍정이랄까.
 
 영화 <웬디> 스틸컷

영화 <웬디> 스틸컷 ⓒ 영화사진진


06.
장편 데뷔작인 <비스트>(2012)로 선댄스영화제의 심사위원대상을 받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의 후보에 오르며 주목을 받게 된 벤 제틀린 감독. 피터팬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에 감독은 30대의 찬란한 순간을 모두 바친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 감독은 이 작품을 연출하는 동안 32살에서 38살이 되었다. - 영화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도 분명히 있으리라. 차라리 영화의 처음부터 다음이 전혀 기대되지 않도록 모두가 알고 있는 그 피터팬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랐더라도 차라리 실망은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 없는 시작과 점차 동력을 잃고 방황하는 연출 앞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마스터피스라 일컬어지는 대단한 작품들 앞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만큼이나 명확하고 또 정확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이 생각난다. 웬디의 딸이 엄마가 타고 떠났던 똑같은 기차를 타고 원더랜드로 떠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자체적으로 플래시백(Flashback)할 테니, 다시 거기서부터 시작해 줄 수는 없는 걸까. 웬디가 다시 원더랜드로 향하는 것으로.
영화 피터팬 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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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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