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파워 오브 도그>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파워 오브 도그> 포스터. ⓒ 넷플릭스

 
1925년 미국 북서부 몬태나주, 부모님께 목장을 물려받아 주인으로 부유한 생활을 하는 필과 조지 형제는 함께한 지가 25년이 되었다. '브롱코 헨리'한테 배운 대로 산에서 팔팔한 엘크를 잡아 간을 따선 석탄불에 구워 먹자는 형,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동생이다. 결국 그들은 직원들과 함께 닭 튀김을 먹으러 간다. 그곳은 미망인 로즈가 아들 피터의 도움을 받아 운영하는 식당이자 여관이었다. 피터가 생화 대신 손으로 만든 꽃을 두고 필은 신랄하게 조롱한다. 반면, 조지는 모두 돌아간 뒤 울고 있는 로즈에게 다가가 위로한다. 

오래지 않아 필과 로즈는 아무도 몰래 결혼하는데, 필이 대노한다. 필과 조지의 목장으로 이사하는 로즈와 피터, 필의 대노는 곧 로즈 모자(母子)에게로 향한다. 그들은 곧 물과 기름처럼 서로를 멀리하고 나아가 격렬히 싫어한다.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한마디 때문에 주지사 내외와 필, 조지 부모님 내외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되었다가 결국 하지 못하는 로즈, 이 망신 어린 사건 이후 스트레스를 참지 못해 끊었던 술에 입을 대곤 알코올 중독으로 빠져든다. 

로즈의 알코올 중독을 알게 된 필, 그런가 하면 필이 몰래 혼자 목욕하는 연못을 우연히 알게 된 피터는 그의 개인물품 보관 창고에서 나체 남성 잡지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후 피터에게 마음을 연(열 수밖에 없게 된) 필은 브롱코 헨리에게 배운 것들을 고스란히 전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로즈는 증세가 더욱더 심해진다. 그런 로즈를 돌보는 조지. 이들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인가?

'황금종려상' 감독의 화려한 컴백

제인 캠피온 감독은 1980년대 첫 단편영화 <과일 껍질>로 칸 영화제 단편영화 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1990년대 <피아노>로 대망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이어서 내놓은 <내 책상 위의 천사>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7개 부문을 휩쓸며 당대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섰다. 이후 할리우드에도 진출하며 작품을 내놓았지만 이전만큼의 위상을 보여 주진 못했다. 결국 TV 시리즈로 선회한 그녀,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2021년 <파워 오브 도그>로 화려하게 영화계로 컴백했다. 전 세계 유수 영화제들에 초청되며,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1967년 미국 작가 토머스 새비지가 내놓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작품은 토머스 새비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했는데, 출간 당시 평단과 언론의 성대한 찬사를 받았으나 흥행에선 참패했다. 그러던 2001년 재발견되어 재출간된 바 있고, 다시 2021년 재발견되어 영화화된 것이다. 참으로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원작의 스토리와 메시지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듯하다. 구약 성서 시편 22장 20절의 한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 소설의 한 축을 담당하다시피 하는데, 영화도 완전히 동일한 제목이기도 하니 말이다. '개의 세력' 즉, '악의 세력'은 무엇일까. 그런가 하면, 영화에서 두어 번 보여지는 언덕의 '개의 형상'은 무엇을 뜻할까. 이밖에도 영화가 보여 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느끼고 메시지를 풀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편으론 말할 나위 없이 섬뜩하기도 하고 말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기엔 많은 걸 너무나 잘 담고 있는 영화이다. 

악의 세력

필과 조지의 대치에서 필과 로즈의 대치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은 잘 씻지도 않는 꾀죄죄한 면을 앞세워(?) 자신의 마초성을 한껏 뽐내려 한다. 착하고 순수한 조지와 섬세하고 여린 피터를 조롱하기에 바쁘고, 부리는 카우보이에게 위엄을 보이기에 바쁘다. 자기만의 세계이자 왕국에서 군림하던 그 앞에, 조지의 돈을 보고 시집 온 게 분명해 보이는 미망인 로즈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녀와 그녀의 아들을 향해 조롱과 멸시의 맹폭을 날리는 필이다. 

영화는 여기에서 필연처럼 필의 동성애를 내보인다. 하여, 그가 보이는 섬세함과 여림, 착함에 대한 조롱과 멸시가 왠지 이해된다. 사실 그는 남성을 사랑하는 스스로를 용납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더욱 반대급부로 자신과 정반대의 성향을 보이는 남자들(조지, 피터)을 철저히 탄압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며 '남자란 자고로 이래야 한다' 즉, 브롱코 헨리한테 제대로 배운 필 자신과 같아야 한다고 윽박지르며 교화하려 한다. 

필의 마음속에서 격렬하게 맞부딪히고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위부로 표출되곤 한다. 스스로는 물론 주위 사물과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일쑤다. '개의 세력' 즉, '악의 세력'은 그런 행동을 하는 필이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필로 하여금 그렇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게 한 세상의 통상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필은 사실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본성을 지키며 세상의 '나쁜' 통상 개념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얼굴은 나오지 않지만 그 이름은 족히 수십 번 나오는 브롱코 헨리도 악의 세력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 스릴러
 
 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 스틸

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 스틸 ⓒ 넷플릭스

 
영화의 주요 테마를 풀어 보는 재미가 '필'이라는 캐릭터의 아이러니에 있다면, 영화가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심리 스릴러'로서의 재미는 주요 캐릭터들의 관계에 있다. 조지와 로즈 그리고 조지와 피터는 좋거나 혹은 무난하거나이지만 필과 조지, 필과 로즈, 필과 피터는 피만 튀기지 않을 뿐 대면할 때마다 전투를 치르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 중심엔 당연히 필이 있다. 

언제나 필의 시비로 시작하는 관계들의 역동성은 곧 감정에 끝없이 스크래치를 남긴다. 섬뜩한 심리로 다가가는 데 주저함이 없는데, 이 광활하고 황량한 서부 한복판에 있는 소수의 이들이기에 더욱 그럴 테다. 서부극 고유의 행동으로서의 역동성이 아닌 심리로서의 역동성은, 역동성을 더해 갈수록 더더욱 교묘해지고 섬뜩하기 마련이다. '개의 형상'으로 표현되는 자연풍광의 대표성은 곧 인물들의 공허함과 빙퉁그러짐으로 나타난다. 넓게 넓게 퍼져 있는 아름다운 언덕에서 하필이면 입 벌린 개의 형상을 보는 건 뭐람. 

결코 재밌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여운이 오래오래 갈 것 같은 영화 <파워 오브 도그>, 여러모로 탁월하고 비범한 작품이거니와 서부극의 또 다른 경지에 이른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최근 개봉한 '서부극의 신기원' <퍼스트 카우>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서부극이 주체가 아니라 심리 스릴러가 주체일 테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섬세하며 우아한 심리 스릴러는 또 없을 거라고 말이다. 이 방면에서 <파워 오브 도그>가 최고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파워 오브 도그 제인 캠피온 악의 세력 심리 스릴러 서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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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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