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죄와 벌 그리고 하키>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죄와 벌 그리고 하키> 포스터. ⓒ 넷플릭스

 
아이스하키 하면 NHL, 즉 미국과 캐나다에서 함께 시행해 1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National Hockey League'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별 볼일 없을 정도의 인기지만, 북미에선 풋볼, 야구, 농구 리그와 함께 당당히 미국 4대 프로 스포츠 리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만의 독보적인 특징이 있는데, 다름 아닌 '패싸움'이다. 아이스하키 자체가 워낙 격렬한 운동이기도 한데, 온갖 장비로 중무장한 선수들이 싸우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 날 수 있기 때문에 협회와 심판 차원의 용인과 관중의 열렬한 호응에 힘입어 일종의 안전 장치이자 유용한 볼거리로 패싸움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스하키 패싸움 전문꾼을 인포서라고 부른다.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만의 특징을 악용 또는 똑똑하게 이용해 NHL 하위 리그 격이었던 UHL(United Hockey League)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던 팀이 있다. 2004년에 미국 코네티컷주 댄버리에서 창단한 '댄버리 트래셔스'다. 지역 최대의 쓰레기 처리 사업을 하던 사업가로 잘 알려진 '제임스 갈란테'가 만들었다. 그리고 단장이자 총감독으로 17세 아들 AJ를 앉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말하지 못한 이야기: 죄와 벌 그리고 하키>가 그때 그 이야기를 전한다. 

마피아가 만든 아이스하키 팀

<죄와 벌 그리고 하키>는 제임스 갈란테와 AJ 갈란테의 이야기가 따로 또 같이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제임스로 말할 것 같으면, 미국 이스트코스트 최대 쓰레기 처리 업체를 운영한 사업가이자 뉴욕 5대 마피아 패밀리 중 하나인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 매튜 이아니엘로의 돈줄이기도 했다. 

그는 아이를 사랑해마지 않았는데, 풋볼을 하면 좋았을 아들 AJ가 아이스하키를 좋아한다고 하니 아이스하키를 시켰고 큰 사고를 당해 더 이상 아이스하키를 할 수 없게 되자 아이스하키 팀을 창단시켜줬다. 팀 이름은 자신의 쓰레기 처리 사업에서 따온 '트래셔스'였는데, 창단 모토이자 팀의 방향성이기도 했다.

이 팀은 거칠고 더티한 플레이로 일관하며 북미 아이스하키의 또 다른 면을 가져와 완전히 자기네 것으로 만들고 또 부각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사실, 그들이 할 줄 아는 게 그런 것들뿐이었다. 

창단부터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알 만한 사람은 다하는 유명한 사업가가 불과 17세 아들을 위해 프로 아이스하키 팀을 창단한 것도 그렇고 당당하게 '쓰레기'를 팀 이름에 붙여 이제껏 보지 못한 플레이를 보여 주겠다고 호언장담한 것도 그렇다. 또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란히 보고 들었던 UHL 커미셔너(최고관리자) 리처드 브로살의 이야기도 재밌다. 그는 UHL의 품위와 질서유지를 위해 존재했기에 제임스와 AJ를 반기지 않았지만 그들 덕분에 리그의 인기가 수직상승했으니 말이다. 

17살 짜리 감독의 놀라운 반전

하지만, 이게 전부라면 사실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문제는 제임스가 마피아 패밀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FBI가 오랜 수사 끝에 제노비스 패밀리의 목을 조를 직전까지 와 있었고, 제임스가 정확히 그 목덜미에 있었다. 그런 찰나 그가 프로 아이스하키팀을 창단하며 큰 이목을 끌었고, 그때부터 이미 FBI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제임스의 멸망은 기정사실이고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리 없는 제임스와 AJ 부자, 그리고 수많은 관계자들은 사람들의 댄버리 트래셔스를 향한 관심에만 주목할 뿐이었다. 그들은 팀의 창단 모토와 방향성을 충실히 이행하며 리그 최고의 반칙왕으로 사람들의 열광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여기에 성적까지 좋았으니 인기가 식을 줄 몰랐다.  

특히 팀의 단장이자 총감독인 17살 짜리 AJ 행보가 놀라웠다. 망나니같은 외모와 행동거지에, 신뢰감을 줄 수 없는 말투를 썼는데 그는 자신이 어떤 팀을 이끄는 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팬의, 팬을 위한, 팬에 의한 이야기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댄버리 트래셔스가 창단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2006년 제임스 갈란테는 FBI의 수사망을 피하지 못하고 붙잡혔다. 그리고 트래셔스는 제임스의 돈세탁 창구로 활용되었다는 혐의로 사라지고 만다. AJ는 물론 팀의 선수들과 관계자들 모두 조사를 받기도 했다. 자신 이외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걸 참기 힘들었던 제임스는 제노비스 패밀리를 팔아넘기고 대신 형량을 조금 적게 받았다. 그 와중에 UHL 커미셔너 리처드 브로살은 의리를 지켰다. 불과 2년 사이에 제임스와 댄버리 트래셔스를 향한 시선이 180도 달라진 것이었다. 그도 '팬'이 되어 버렸다. 

이 작품은 팬의, 팬을 위한, 팬에 의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포츠라는 게 팬이 없으면 애초에 존재할 수 없기에, 스포츠 이야기라면 무조건 팬을 잘 서술해야 하는데, 이 작품은 잘 해냈다. 앞서 언급한, 리처드 브로살이 팬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비롯해 단 2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의 활약(?)으로 여전히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니,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프로 스포츠계는 냉정한 것 같다.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팀이, 이유야 어떻든 한순간에 속절없이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프로 스포츠계는 냉정해야 한다. 수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얽히고설켜 있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죄와 벌 그리고 하키 아이스하키 댄버리 트래셔스 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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