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등장하는 하비 덴트는 본래 정의로운 검사였지만, 범죄자 조커의 계략에 농락당하여 사랑하는 연인과 얼굴 반쪽을 잃고 악당 '투페이스'로 흑화한다.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인물이 하루아침에 빌런으로 추락하는 반전과 비극적인 최후는 보는 이들에게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2022년 5월 18일 두산 베어스 조수행의 하루도 '투페이스의 운명'과 같았다.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SSG 랜더스와 시즌 5차전 홈경기에서 조수행은 한 경기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며 롤러코스터같은 하루를 보냈다.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던 주인공이 될 뻔한 순간에서 순식간에 역적으로 전락하기까지는 단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조수행은 두산이 1-2로 끌려가던 8회 말 안권수가 볼넷을 얻어내자 대주자로 투입됐다. 조수행은 2루 도루와 진루타에 이어 강승호의 희생플라이로 홈을 밟으며 팀에 동점을 안기는 득점 주자가 됐다.
 
하지만 이후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항상 조수행이 관련되어 있었다. 2-2로 맞선 9회 말 조수행의 타석에서 2사 2, 3루의 천금같은 끝내기 찬스가 돌아왔으나 SSG 고효준과 승부 끝에 삼진으로 돌아섰다.
 
11회말에는 1사 만루에서 다시 조수행의 두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SSG 최지훈의 2구째를 공략해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냈고, 3루주자 김재호가 홈을 밟았다. 이대로 두산의 끝내기 승리로 경기가 끝났다면 조수행이 단연 히어로가 될수 있었던 상황.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심판은 두산의 끝내기를 인정하지 않고 잠시 경기를 중단시킨 후 4심이 모여 상황을 논의했다. 잠시 후 내려진 최종 판정은 득점이 인정되지 않고 두산의 더블아웃으로 인한 공수교대 선언이었다.
 
알고보니 1,2루 주자였던 안재석과 정수빈이 끝내기 승리를 확신하여 만루에서 반드시 진루해야 하는 포스아웃 상황임을 망각하고 각각 2, 3루 베이스를 밟지 않은 것. SSG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계속 플레이를 이어갔고 유격수 박성한이 우왕좌왕하던 정수빈을 먼저 태그아웃시킨 뒤 다시 2루 베이스를 밟아 안재석까지 아웃시키며 이닝을 끝냈다. 3루주자 김재호가 홈을 일찌감치 밟았어도 득점은 인정되지 않는다. 결국 지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SSG 벤치와 수비의 빠른 상황판단이 승부의 운명을 바꾼 것.
 
졸지에 조수행의 끝내기 안타는 '좌익수 앞 땅볼 병살타'로 둔갑하는 희대의 장면이 연출됐다. 두 번의 끝내기 찬스가 모두 무산되자 조수행 역시 허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진짜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어진 12회 초, 수비하던 조수행이 1사 1, 3루의 위기 상황에서 SSG 케빈 크론이 친 타구를 잡지 못했다. 케빈 크론의 타구는 안타가 됐고 이 틈에 3루주자가 홈을 밟았다.
 
문제는 조수행의 안일한 후속 플레이였다. 조수행은 인플레이 상황에서 놓친 타구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시선을 외면해 버렸다. 조금 전 끝내기 상황이 무산된 데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크론의 안타로 경기가 끝났다고 착각해버린 듯 했다. 하지만 두산의 홈경기였기에 초 공격인 SSG는 득점을 내도 당연히 끝내기 승리는 될 수 없었다.
 
당황한 동료들과 팬들이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조수행이 허겁지겁 다시 공을 찾아내 송구했으나, 이미 시간이 지체되며 1루주자까지 홈을 밟은 뒤였고 타자 주자인 크론은 3루까지 진루했다. 두산은 이어진 위기에서 한유섬의 유격수 땅볼로 크론마저 홈을 밟으며 한 점을 더 내줬다. 1실점 이하로 그칠수도 있었던 상황이 조수행의 플레이 때문에 3실점으로 불어나고 말았다.
 
맥이 빠진 두산은 결국 마지막 공격 이닝에서도 무기력하게 물러나며 2-5로 패했다. 두산은 SSG와 2경기 연속 연장 혈전을 치르고도 소득없이 1무 1패에 그치며 최근 4경기 연속 무승(1무 3패)의 부진에 빠졌다.
 
프로 선수라면 어떠한 순간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두산 선수들은 18일 경기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망각했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선두팀다운 집중력을 보여준 SSG 선수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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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행 두산베어스 본헤드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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