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끝까지 아무도 믿지 말아요."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돈세탁 전문가 도일(위하준)은 인주(김고은)에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처럼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속에서 이번 회에 내가 본 장면이 진짜인지 계속 의심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진실을 궁금해하며 <작은 아씨들>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마침내 모든 진실이 밝혀졌고,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화영(추자현)의 상아(엄지원)에 대한 복수심과 인주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는 게 진실의 요지였다. 세 자매와 주변 인물들은 이를 감당해냈고, 정란회 회원들은 모두 그 대가를 치르게 됐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극적인 사건들은 결국 돈과 욕망 속에 가려진 '진짜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음을 말이다. 돈과 욕망 뒤에 숨겨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차리고 이를 실천한 이들은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처참한 결과를 맞이했으니 말이다. <작은 아씨들>의 인물들이 '진짜 삶'을 찾아간 과정을 돌아본다.
 
인주와 인경
 
인주와 인경(남지현)은 가난과 형편없는 부모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인물이다. 인주는 무능력한 데다 책임감도 없는 부모를 대신해 직장에서 따돌림을 견뎌내며 돈을 번다. 심지어 가족들을 위해 돈 많은 남자와 결혼했다 이혼하기도 한다. 이런 인주에게 자기 자신의 삶은 없었다. 인경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지만 그러기 위해 알코올에 의존한다. 인경은 "나는 왜 술을 마실까?"(2회)라고 질문을 던지는데, 가난과 여러 유혹 속에서 정직함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살아온 인경은 자신의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어릴 적부터 쭉 자신 곁에 있어온 종호(강훈)의 마음도 모른 척하며 지낸다. 
 
이런 인주와 인경에게 화영이 남긴 큰 돈이 생기고, 이로 인해 각종 사건들에 휘말리면서 여러 차례 목숨을 위협받는다. 이 위기들을 통과하면서 둘은 자신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알게 된다.
 
가난 속에서 '돈'을 갈망했던 인주는 11회 "700억에 휘둘리는 돈벌레처럼" 살아왔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인주는 늘 '돈' 아닌 '관계'를 중시해왔다. 동생들이 위협당했을 땐 20억을 포기하며 치료비만을 받고자 했고, 700억을 찾으러 싱가포르에 갔을 때도 돈보다 화영을 더 찾는다.

12회에도 인주는 위험을 무릅쓰고 화영을 구해낸다. 인주에게 돈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러 위기들을 겪으며 마침내 깨닫는다. 자기 자신이 없으면 이 소중한 관계들도 사라진다는 것을. 12회 인주는 '이제부터 난 조금 다른 사람이 될 것 같다'고 독백하는데 이는 인주가 스스로를 좀 더 소중히 여길 것을 다짐하는 장면이었다 볼 수 있다. 
  
 인주와 인경은 위기를 겪어내면서 자신들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간다.

인주와 인경은 위기를 겪어내면서 자신들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간다. ⓒ tvN

 
인경은 돈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정의로움을 지켜낸다. 인경이 지켜낸 이 가치는 11회 장사평(장광)에게 붙잡혀 고문을 받을 위기에 처했을 때 스스로를 지켜준다. 인경은 사평에게 장군이 내세웠던 가치를 생각해보라 하며 상아는 이 가치를 저버렸음을 알린다. 이에 사평은 마음을 돌려 상아와 맞선다.

그 후 인경은 이 모든 과정에 함께 한 종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자신 안의 또 다른 진심인 공부하고 싶었던 마음을 인정하고 유학을 결심한다. 이는 인경이 '정의'라는 자신의 가치를 마음껏 충족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욕구가 충족된 후에야 사람은 또 다른 자신의 욕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주와 인경은 경제적으로 결핍된 상황에서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찾아내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인혜와 효린
 
인혜(박지후)와 효린(전채은)은 탐욕에 사로잡혀 '진짜 삶'을 살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일찌감치 간파한 현명한 아이들이었다. 인혜는 엄마가 수학 여행비를 들고 도망간 날 "엄마 없이 살기로 결정" 한다. 그리고 언니들의 부담스러운 사랑에 숨 막혀 하며 효린네를 선택한다. 하지만, 인혜가 본 효린네는 온통 '가짜'투성이다. 효린 역시 늘 모든 것들이 '가짜'라는 느낌에 괴로워한다. 그러다 마침내 효린의 느낌이 '진짜'였음을, 그러니까 효린의 가족들은 돈과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연기하며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엄마 상아와 아빠 재상(엄기준)이 살인마라는 걸 알게 된 효린은 인혜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8회).
 
"오랫동안 생각했어. 이 집에 살면 내가 뭐가 될지 모르겠다고."(효린)
"괴물이든 평범한 아이든 일단 너 자신이 되어야겠지. 그러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이 집을 탈출하는 거." (인혜)

 
이렇게 둘은 어른들의 탐욕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인혜는 효린에게 "러시아에 가서 루벤스의 방에 앉아 있으면 우리가 엄마 없는 애라는 걸 잊을 수 있어"(9회)라고 말한다. 이는 부모의 삶과 자신의 삶을 완전히 분리시켜 '나 자신'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효린 역시 '엄마의 불행과 슬픔이 마음 깊이 느껴져요.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끊고 싶어요. 그냥 내 삶을 살고 싶어요'(10회)라고 편지를 남기고 떠난다.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부모와 선을 긋고 원하는 바를 실천에 옮긴 이 두 청소년의 용기는 결국 이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 그리고 도일의 요청으로 인주의 돈을 안전하게 보관했다 언니들에게 나누어준 인혜는 언니들의 사랑에 대한 '빚진 마음'까지 덜어낼 수 있었다.
  
 인혜와 효린은 탐욕에 가려 가짜 삶을 살고 있는 어른들로부터 탈출해 스스로를 지켜낸다.

인혜와 효린은 탐욕에 가려 가짜 삶을 살고 있는 어른들로부터 탈출해 스스로를 지켜낸다. ⓒ tvN

 
도일과 상아
 
도일은 철저하게 계산된 삶을 사는 인물이었다. 돈세탁 전문가 도일은 자신의 일 만큼이나 비밀스러운 삶을 산다. 속마음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으며 돈만을 믿고, 돈을 지키기 위한 계획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이는 상아 가족과 관련된 부모의 업보로부터 '돈'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도일에게 사람이 돈보다 중요한 인주의 모습은 새로운 자극이었을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안전하게 돈을 이송해 살 수 있다는데도 불구하고 화영을 찾다가 동생에게 돌아가는 인주의 모습은 '돈'만 믿어온 도일에겐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인주의 모습에 도일은 자신에게도 역시 돈이 '전부'가 아닌 '수단'이었음을 알아차린다.

때문에 도일은 인주의 안전이 위협받았던 9회 방독면을 쓰고 정신병원에 뛰어든다. 이는 도일이 돈이 아닌 사람을 믿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이후 도일은 스스로 감옥에 가기를 자처하면서 인주를 구해낸다. 그리고 '돈'이 전부였던 예전의 삶과 선을 긋기 위해 휴대폰과 이메일을 모두 정지하고 진짜 삶을 찾아 떠난다(12회).
 
반면 상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상처와 탐욕에 휘둘린 인물이었다. 그녀의 범죄가 밝혀졌을 때 "700억을 기부하라"는 마리(공민정)의 조언에도 그녀는 "700억을 전부?"라고 반문할 만큼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다(12회). 또한, 인주가 간파했듯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도 벗어나지 못한 채 어머니가 죽기 직전의 짧은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 살인을 재미로 즐기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12회 인주가 이를 직면시켜주었을 때도 상아는 계속해서 "엄만 나쁜 거야"라며 증오 속에 갇혀 지낸다. 상아는 남편과 아이, 가족을 모두 잃는 대가를 치르면서도 자신의 상처와 탐욕과 선을 긋지 못했고 결국 스스로가 계획한 살인의 덫에 걸려들어 고통스럽게 죽는다.
  
 도일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멀리 떠난다.

도일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멀리 떠난다. ⓒ tvN

 
이처럼 <작은 아씨들>의 인물들에게 '돈'은 다양한 의미를 지녔다. 인주와 인경은 돈 자체와 돈으로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충돌할 때 후자를 선택했기에 자신들이 원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인혜와 효린은 돈과 탐욕이 어른들을 어떻게 망치는지를 똑똑히 보았고 이와 선을 그음으로써 스스로를 지켜냈다. 도일 역시 '돈'으로 보장받던 안전 뒤에 가려진 자신의 진심을 만난 후 과감히 '돈'과 거리를 두고 '진짜' 삶을 찾아 나선다. 반면 상아는 자신의 탐욕과 상처로부터 한 발자국도 멀어지지 못했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어쩌면 우리도 이 인물들과 같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선 '부유함'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고민하기도 한다.

그럴 땐 지금 내가 '돈'을 추구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 '돈'이 나의 진짜 삶을 가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이 드라마의 인물들을 떠올려 본다면 좋겠다. 어떤 선택을 한 인물이 '진짜 삶'을 살 수 있었는지 기억한다면 현실의 우리들도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작은아씨들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 위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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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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