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 하세요?" 하고 물어올 때 주저하게 된다. 돈을 버는 일을 답해야 할지, 마음을 다하는 일을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생계를 꾸리기 위한 업과 이루기 위해 성을 다하는 일이 같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이것이 다른 이들은 부연설명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미용사로 출근하는데, 사실은 댄서입니다"라거나 "공무원인데요, 글을 씁니다"라거나 "자영업 하고 있는데 봉사활동가입니다"라거나 하는 식이다.

사회적으로 맡고 있는 직분을 이야기할 때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사업가고 은행원이고 작가이며 교사, 청소부와 간호사 같은 일이 모두 직업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은 마땅히 수익이 창출되게 마련이므로 그대로 생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직업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시를 써서는 먹고 살 수 없어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를 알고 지낸 일이 있다. 그는 시를 포기하기까지 학원이 아닌 모든 곳에서 저를 시인이라고만 소개하였다. 그러나 시는 그에게 한 달에 채 십여 만 원만을 벌어주었을 뿐이므로 그의 생업이 시인일 수는 없었다. 세상에 그런 경우가 얼마만큼 많은가.
  
부천노동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 부천노동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 김성호

 
마을 방과 후 교사를 아시나요?

나는 이달 초 업과 생업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을 만났다. 우연히 뜬 광고를 보고 찾아나선 부천의 작은 영화제에서였다. '부천노동영화제'였고, 상영관은 공용공간으로 꾸려진 '마을카페 소란'이었다. 큰 영화제에선 좀처럼 불러주지 않는 삼류 영화평론가로서 나는 이런 작은 영화제를 즐겨 찾는다. 유력한 평론가들보다 내가 나은 것이 단 하나 있다면 그건 시간이 많고 엉덩이가 가볍다는 것뿐일 테니까. 더불어 세상의 적잖은 귀한 일들이 조명받지 못하는 변방에서 일어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날 상영된 영화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였다. 1시간 30분 남짓의 다큐멘터리로, 제목 그대로 마을 방과후 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고백하자면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가 무엇인지 들어본 일 없었다. 30대 중반의 서울 태생 미혼 남성으로, '마을'과 '방과 후'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처음 영화가 시작했을 땐 어린이집인가 싶던 것이, 가만히 보고 있자니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모이는 공간이 마을학교인가 싶었다. 그렇다고 공부방이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 이곳의 교육과정이 학교의 교과와 관련돼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요새 맞벌이 부모 중에선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하고 싶지만 동네에 이렇다 할 놀이 문화가 없는 데다 아이들을 돌볼 여력도 없으니 학원에서나 놀아라 하고 학원을 보내는 경우가 적잖은 듯하다. 사실상 돌봄이 학원에서 이뤄지는 꼴인데, 이 같은 모습이 그 또래 문화의 얄팍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스틸컷 ⓒ 부천노동영화제

 
공교육이 품지 못한 돌봄,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방과 후 교육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 듯 보인다. 영화 속 방과 후 학교에선 선생과 학생들이 함께 밥을 먹고 게임을 하고 춤추고 산을 오르고 자전거를 타고 줄넘기를 한다. 나 어릴 적 동네에서 친구들과 흔히 하던 일인데, 따져보면 요즈음엔 죄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도는 것이 일상이니 이런 일을 하는 아이들을 본 지도 꽤나 오래된 것 같았다. 이를 방과 후 교사들이 마을학교에서 해내는 건 '노는 일도 교육의 일환'이란 관점과 닿아 있는 것이다. 아마도 조합원들은 그 필요에 공감하고 있을 테고, 그래서 이 같은 교육기관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이상과 맞지 않다. 이상은커녕 좌충우돌하는 다큐 속 공간을 유지하는 데도 힘에 부친다. 영화는 방과 후 교사들의 고충을 그대로 내보인다. 선생들의 처우는 서울형 생활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노동자와 그 가족이 빈곤수준 이상의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하한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봉급을 받으며 아이들과 종일 어울려 지내는 게 이들의 일상이다.

그렇다고 미래가 밝으냐 하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줄어가고 조합들은 문을 닫는다. 한국 교육제도는 방과 후 학교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이들의 교육자로서의 이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저출산 추세 속에서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입으로는 강조하면서도 이와 같은 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없다시피 하다.

처우도, 미래도 보장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선생들은 떠나가기 일쑤다. 이들을 붙잡는 건 오로지 제 일이 의미 있다는 판단과 주변 동료 및 학부모와의 연대며 지지 뿐이다. 그러나 그조차 가끔은 턱없이 허약하여 제 일터를 등지는 이들이 적지가 않다. 영화의 주역인 교사 여럿이 일터를 떠나가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이 다큐를 새드엔딩처럼 느껴지게 한다.
 
부천노동영화제 홍보물

▲ 부천노동영화제 홍보물 ⓒ 김성호

 
자긍심은 부서지고, 현장은 사라지는데

이날 내가 찾은 상영관에는 일반 관객들보단 이런저런 대안교육 조합원들과 전현직 마을 방과 후 교사들이 많았다. 마을 방과 후 학교 교사로 일하다 몇 년 전 현장을 떠났다는 어떤 이는 영화를 보고 나서 '예나 지금이나 고민이 똑같다'고 탄식하였다. 영화 뒤 관객과의 대화 형식으로 객석 앞에 나온 두 사람은 모두 전직 마을 방과 후 교사로 현재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돌봄이 부족하다고, 아이들이 마음껏 놀 공간이며 문화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인지, 나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실 어느 직업이든 마찬가지일 테다. 자긍심이 함께하지 않는 업은 삶을 불행하게 한다. 자긍심은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상당부분은 직업인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그 완성은 외부와의 관계로부터 달성된다. 충분한 보상과 일과 여가의 균형, 동료와의 관계, 학부모며 학생 같은 업무관련자의 인정 등을 통해서다. 그렇다면 영화 속 돌봄 교육 현장은 처참하기 짝이 없다.

아이들은 선생의 공로를 잊어갈 것이다. 동료들은 하나 둘 현장을 떠나간다. 처우는 형편없고 국가는 방치한다. 방과 후 돌봄교사의 자긍심은 대체 어떻게 채워질 수 있다는 말인가. 뚜렷한 답을 내릴 수 없는 가운데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이 영화의 결말이 뒤바뀌지 못할 것만 같아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만 같았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박홍열 황다은 부천노동영화제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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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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