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새로운 교양 예능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이 첫 선을 보였다. 12월 2일 방송된 <알쓸인잡> 첫 회에는 MC 장항준과 RM(김남준)을 비롯해 베스트셀러작가 김영하, 물리학자 김상욱, 법의학자 이호, 천문학자 심채경 등 우리 사회의 지식인과 셀럽을 대표하는 6인이 만나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주인공으로 삼고 싶는 인간'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영화감독인 장항준은 평소 영화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로 '격정의 순간'을 꼽았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인물이,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터닝포인트를 제공한 인물, 사회-심리적 고난을 스스로의 의지로 돌파했다고 할 수 있는 인물 등은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도 어떤 새로운 관점으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대중에게 색다른 반전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첫 주자로 나선 심채경은 NASA의 과학자 미미 아웅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미안마계 미국인인 아웅은 30년넘게 NASA에서 근무하며 여성이자 아시아 출신이라는 배경을 넘어서 우주탐사 연구원이자 화성 헬리콥터팀의 리더까지 역임한 세계적인 공학자로 인정받았다.
 
대기가 희박한 화성에서 비행기를 띄운다는 것은, 인류의 첫 비행기 발명과 맞먹는 획기적인 업적이었다. 아웅은 6년간 헬리콥터팀을 이끌며 각고의 노력 끝에 무게를 줄이고 빠른 날개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화성 헬기가 발명되면서 멀리서 촬영하는 인공위성이나 지형의 제약을 받는 지상 탐사봇의 한계를 극복하고 화성을 더 빠르고 폭넓게 조사하는 게 가능해졌다.
 
화성은 대중문화에서 외계인의 활동무대로 자주 등장하곤 했다. 현재 화성에 생명체의 존재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구의 생명체는 바다에서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우주 생명체는 아직까지 발견된 것이 없다. 심채경은 현재로서는 일단 화성 생명체가 없다는 의견에 무게를 실었다.
 
이호는 "지구와 외계 생명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정의부터 다를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영하는 "외계 생명체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음악이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 바이러스처럼 인간에게 깃든 외계 생명일수도 있는 것"이라는 작가다운 흥미로운 상상력을 발휘했다.
 
아웅은 화성헬기의 첫 비행을 생중계로 지켜보다가 성공을 거두자, 실패할 때 읽으려고 준비한 원고를 화끈하게 찢어버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화제가 됐다. 학계에서는 우주탐사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아웅과 같이 꿈을 향해 도전하는 많은 과학자들에게는 언젠가 자신도 저런 멋진 세리머니를 선보일 수 있다는 동기부여와 영감을 제공했다는 평가다.
 
심채경은 "과학자들은 보통 자기 자랑에 익숙하지 않지만, 해야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사람들이 희망과 관심을 가지니까"라고 고백하며 한국에서 누리호 발사 당시 성공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에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와 비교하면서 아쉬워했다.
 
심채경은 유투브 댓글에서 누리호 발사 성공장면을 지켜본 한 누리꾼이 남긴 "세금 아깝지 않네"라는 짧은 댓글 하나가 수많은 과학자들에 희망을 주었던 일화를 언급하며 "조금 실패하더라도 또 도전해봐라는 국민들의 허락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세리머니도 하고 국민들과 소통을 해야 국민들도 더 응원해주시지 않을까"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김영하는 학자들의 세리머니중 인상적인 장면을 언급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노벨상 수상이 확정된 주인공 존 내쉬에게 동료 교수들이 자신의 만년필을 선물하며 경의를 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은 고인이 생전에 선보였던 '넥타이 자르기 퍼포먼스'를 재현하며 색다르고 유쾌한 방식으로 고인의 예술혼을 기렸다.
 
다시 아웅의 이야기로 돌아와, 심채경은 "NASA는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실패한 사람을 자르는 식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실패한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며 실패를 경험으로 여기고 기다려주는 포용적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주탐사 등 과학분야는 장기프로젝트가 많은 만큼 인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실패해도 기다려주는 NASAN의 인력관리법은 우리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NASA가 2021년에 선보인 제임스웹 우주망원경도 천문학적인 비용 증가와 25년에 걸친 완성 기간을 인내한 끝에 결실을 볼 수 있었다.
 
김상욱은 "365일중 364일을 실패하고 단 하루를 성공하는게 과학"이라며 "실수와 실패는 늘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좋은 실수'를 하는지 나쁜 실수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과학계의 격언을 설명했다. 또한 김영하는 "문화 선진국일수록 결과를 즉각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며 어떤 분야이든 창조적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임을 설명했다. 심채경은 아웅을 롤모델로 삼으면서도 "오늘 할 일을 오늘 다하는게 제 꿈"이라는 소박한 목표를 밝혔다.
 
김영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진 허균을 선택했다. 하지만 김영하는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허균이 <홍길동전>을 집필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그가 홍길동처럼 서자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허균의 집안은 본래 손꼽히는 명문가였다. 그런데 허균의 부친은 아들의 글선생으로 당시에는 터부시되는 서자 출신을 붙여줬다. 서자라는 이유로 재능이 출중해도 벼슬을 얻지못하는 선생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허균이 많은 영향을 받았으리라는게 김영하의 분석이었다.
 
허균은 자유분방한 성격에 한량 기질이 있어서 신분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불교가 천대받던 유교국가에서 사대부 출신임에도 사명대사같은 승려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총명하고 박식했던 허균은 뛰어난 문장실력을 바탕으로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데 있어서는 당시 조정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로 꼽혀 자주 부름을 받았다. 당시는 선조와 광해군 시대로 각각 방계와 서자 출신으로 정통성에 약점이 있던 군왕들은 중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했던 만큼, 중국 사신들과 친밀했던 허균이 자주 말썽을 부려도 함부로 홀대할 수 없었다.
 
또한 허균은 희대의 '관종'이자 위험한 '악플러'이기도 했다. 허균은 왕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중국에서 선조와 광해군을 욕하는 책이 팔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모두 모아서 없애버렸다"고 보고했지만, 알고보니 사실 그 책은 허균이 지은 것이었다. 요즘으로 해석하면 본인이 '가짜뉴스'를 만들어놓고 이를 오히려 자신의 업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또한 허균은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위 문제를 놓고 반대여론이 높자, 자신의 집에 유생들을 모아놓고 숙식까지 제공해가며 상소를 올리게 하는 일종의 '댓글부대'까지 만들었다. 허균이 여론 형성과 조작까지 서슴치 않았을만큼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분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 같은 <홍길동전>을 굳이 한글로 작성한 것도, 그 이면에는 민간에 반체제적 사상을 널리 퍼뜨리기 위한 '선동용'이었음을 알 수 있다.
 
허균은 결국 광해군 시절에 역모 가담 혐의로 사로잡혀 능지처참을 당한다. 광해군을 폐하고 영창대군을 옹립하려했다는 혐의했다. 그런데 이는 미스터리한 의혹의 여지가 많다.

광해군은 사실 허균을 매우 총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허균이 인목대비만 제거하고 광해군을 폐할 생각은 없었기에 광해군은 끝까지 허균을 살리려고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차별없는 세상을 주장했던 허균은 역모죄로 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백성들이 허균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는 일화가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다.
 
김영하는 만일 허균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홍길동을 실존인물이자 허균의 어린 시절 친구로 등장시켜 허균 사후에 그의 정체성과 의지를 계승하게 된다는 콘셉트를 제안했다. 진짜 허균은 놀기 좋아하고 호기심은 강했으나 국가관과 비전은 없었던 인물이라면 신분은 비천하나 야망이 있었던 홍길동이 허균의 이름을 빌려 꿈을 실현한다는 스토리다.
 
장항준은 영화감독의 입장에서 "허균은 혼란스럽고 일관성이 없는 인물이었다. 만일 두 명이었다면 허균의 캐릭터가 납득이 된다"며 김영하의 설정에 공감했다. 김영하는 소설의 홍길동 역시 도적을 하다가 왕의 회유로 벼슬을 하기도 하고 다시 율도국의 왕이 되는 등, 허균처럼 오락가락하는 행동을 거듭하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허균과 홍길동은 모두 인간이오직 한 가지 색깔이 아닌 여러 겹겹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겹쳐진 존재라는 것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상욱은 '진화론의 아버지'로 꼽히는 찰스 다윈을 자신의 영화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다윈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믿음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다윈은 용기있게 사회적 파장을 감수하며 자신의 이론을 제시하여 세상의 상식을 바꾼 인물이다.

다윈은 본래 신학자 출신이었으나 영국 해군 측량선인 비글호로 타고 5년간 세계를 여행하고 연구를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갈라파고스 제도를 방문한 다윈은 서식하던 새들이 같은 종임에도 먹이의 종류에 따라 부리가 변화한 모습을 보고 '생명의 다양성'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다윈이 진화론을 제시한 <종의 기원>을 발간하는데는 그로부터 무려 20년이 걸렸다. 다윈의 주장은 자칫 성경 전체를 부정하는 이야기가 될수 있었다. 신앙적 믿음이 강하게 지배하던 시대에 자신의 이론이 세상의 공감을 얻을수 있을지, 자칫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동설을 처음으로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와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윈은 연구가 진행될수록 진화에 대한 수많은 증거를 찾아내며 창조론의 모순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됐다. 다윈은 당시 19세기에 횡행했던 비둘기나 강아지 등 다양한 동물들의 품종개량에 비유하며 "인간은 자신들이 개입하여 특별한 결과를 얻고 싶을 때 동물들의 많은 교배를 통하여 원하는 형질을 얻어왔다"고 지적하며 "인간이 선택의 방법을 통하여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왔다면, 하물며 자연이 그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다윈의 주장은 많은 파장을 일으켰고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그런데 19세기말, 많은 사람들이 뜬금없이 진화론을 열광적에 대한 지지로 돌아서는 뜻밖의 사건들이 벌어진다. 다윈의 의도와는 달리, 진화론이 '경쟁을 통한 약육강식을 정당화'하는 선전 도구로 변질되는 경우가 등장한 것, 대표적인 사례가 인간의 유전자에 우월이 존재하고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개량할 수 있다는 나치 독일의 '우생학',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합리화 논리로 악용된 것 등을 꼽을수 있다.

다윈은 원래 초판본에서는 '진화(Evolution)라는 단어가 아닌, 수정을 통한 나아짐(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다. 진화라는 표현 속에 '더 좋아지는' 듯한 긍정적이고 단정적인 느낌을 주고싶지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에볼루션이라는 표현이 대중에게 더 많이 선호되면서 자연스럽게 굳어졌고, 다윈은 자신의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퍼진 진화론의 의미에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김상욱은 과학자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DNA를 가지고 있는 각각의 종"으로, 김영하는 작가의 시선에서 "인간은 다른 종과 달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이야기는 생존에 필요한 정보들을 감정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의미한다.

진화론은 오늘날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과학이론으로 평가받았고, 이러한 진화론의 틀을 기반으로 확장하여 'BTS의 노래는 어떻게 전세계로 퍼져나갔나. 왜 다른 가수가 아닌 BTS였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김상욱은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을 소개하며 "처음 지구에 우연히 나타난 생명은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 생명을 향한 그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있다"는 문구를  언급했다.

진화론이라는 단순하고 느슨한 규칙 속에 수많은 운과 변이를 거쳐 오늘날에 이른 생명체들의 모습은, 곧 인간의 파란만장한 인생과도 닮아있다.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처럼 예측 불가능한 삶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큰 매력이자 재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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