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 가운데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있으리란 사실을 말이다. 나의 머릿속에서 참사의 피해자는 언제나 인간이었다. 당연했고 의심한 적 없었다.

영화제 프로그램노트를 보고 받은 충격이 제법 컸다. 추천받은 작품이 아니었음에도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볼 영화 중 하나로 <인간의 마음>을 고른 데는 이러한 연유가 자리했다.
 
영화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다룬다. 가습기 내 세균번식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불티나게 팔린 가습기살균제가 알고 보니 유독성이 있는 물질이어서 노출된 이들이 죽고 병든 바로 그 사건이다.

인정된 사망자만 1700명이 넘는 이 사건은 1차적으로는 안정성 없는 제품을 만들어 판 업체와 이를 관리하는 데 실패한 정부의 책임이며, 나아가 업체에 유리한 결과를 내놓으려 연구내용을 조작한 일부 학자들과 로펌의 비윤리적 행태까지 겹친 사회적 참사로 물의를 일으켰다. 관련된 업체만 해도 옥시레킷벤키저와 SK케미칼, 애경, LG생활건강,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코스트코 등 다수인데, 다큐가 이들 기업의 홈페이지에서 관련 내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할 만큼 기억이 빠르게 스러져가고 있다 보아도 좋겠다.
 
인간의 마음 스틸컷

▲ 인간의 마음 스틸컷 ⓒ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는 인간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마음>은 사회적 참사로부터 우리가 주목하지 못한 부분에 카메라를 가져다 댄다. 다름 아닌 동물이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이 건강상 문제를 겪기 이전, 이 참사를 인지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은 더 있었다는 것으로부터 영화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가정 중 적지 않은 수가, 아마도 한국 반려동물 소유 가정 비율만큼 많은 수가 동물을 키우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들 가정에서 많은 동물들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생명을 잃는다.
 
제작진이 만난 이들 가운데는 키우던 개와 고양이를 한꺼번에 잃은 이가 적지 않다. 모두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일어난 죽음이었으나 주인들은 문제를 제때 파악하지 못했다. 이 참사의 특성상 피해자들이 전국에 흩뿌려져 있었기에 동물병원 등에서도 문제를 제때 인식할 수 없었다. 그저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동물이 곳곳에서 급증했었단 사실이 증언될 뿐이다.
 
영화는 반려동물을 잃은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인터뷰를 통해 담아낸다. 사람들은 제가 직접 구매해 가습기에 넣은 살균제로 인해 제가 키우는 동물을 떠나보냈음을 인지하는 순간 정서적인 변화를 겪을 밖에 없다. 우울과 무력감, 분노와 같은 것들이다. 당시 가습기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던 이들은 건강과 청결에 민감하고 새로운 기술이며 제품에도 친숙할 확률이 컸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수가 참사를 겪은 뒤 새로운 시도에 보수적으로 변하였고,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도 좀처럼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같은 변화는 과연 자연스러운 것일까, 변화한 태도 자체가 계측하기 어려운 피해는 아닐까.
 
상대적으로 짧은 반려동물의 수명 탓에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대부분의 동물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사람에 대한 피해보상도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동물에 대한 피해를 인정받을 길은 요원하다. 반려동물을 잃은 이들은 결국 정부와 기업을 불신하며 스스로를 원망할 뿐이다. 한국사회에 있었던 수많은 사회적 참사가 그러했듯 후폭풍을 막는 데 급급한 정부의 태도는 반려동물의 피해와 예방까지 닿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 스틸컷

▲ 인간의 마음 스틸컷 ⓒ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 식용 이슈를 다루는 방법은 아쉬워
 
<인간의 마음>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속 반려동물과 주인이 입은 피해를 관계자 인터뷰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영상 등을 활용해 알기 쉽게 보여준다. 이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전반부를 이룬다. 영화는 이내 후반부로 훌쩍 넘어간다. 뒤는 역시 개의 이야기란 점에서 연결점이 있지만, 전반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 해야 옳겠다.
 
급작스럽게 전환된 영화는 개 식용문제와 관한 이슈에 카메라를 들이민다. 개식용 반대를 외치는 활동가들과 뜻을 같이하는 국회의원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개고기 소비 현황과 문제를 알리는 식이다. 개 식용농장들이 법적 지위를 얻고서 축산업의 규제는 따르지 않은 채로 암암리에 고기를 유통하는 것이 어떠한 문제를 발생시키는지를 지적한다.
 
특히 인상적인 건 2011년 음식물 쓰레기의 해상투기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된 뒤 발생하는 쓰레기를 개 농장에서 처리해왔다는 대목이다. 해양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체결된 런던협약과 그 일환으로 미리 준비됐던 국내법 개정은 정부로 하여금 폭발적인 음식물쓰레기 발생을 처리할 방안을 강구하도록 했다. 정부는 그 해법으로 동물먹이를 통한 재활용 카드를 꺼내들었는데, 조류독감과 구제역 등을 거치며 결국 규제 밖에 있는 개만이 음식물쓰레기를 먹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와 관련한 위생과 동물복지의 문제 등이 골고루 언급되는 가운데 영화는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의 인터뷰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다만 이 대목에서 <인간의 마음>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 등장한다. 김영환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의 인터뷰로, 그는 카메라 앞에서 개 식용 문제에 대해 종종 따라붙곤 하는 '소와 돼지는 안 불쌍하느냐'는 비판이 무가치하다는 식으로 치부하는 발언을 한다. 이는 영화 내내 반복돼 보이는 개는 다른 동물과 달리 특별하다는 인식, 또 국민적 '정서'가 개를 먹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주장들과 맞물려 제작진이 개와 다른 동물의 생명에 차등을 두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
 
인간의 마음 스틸컷

▲ 인간의 마음 스틸컷 ⓒ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동물을 향한 무지와 폭력, 이대로 괜찮은가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지난 십수 년간 벌어진 동물에 대한 폭력을 논할 때 개와 고양이보다는 소와 돼지, 닭 등의 가축을 빠뜨릴 수 없는 일이다. 그 수로 보나 폭력의 정도로 보나 이들이 겪는 고통이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은 때문이다.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매장된 동물이 지난 10여 년간 1억 마리를 상회하고, 공장식 축산 시스템 아래 비윤리적으로 비육되고 도살되는 가축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인간이 제 쾌락을 위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되지 않던가.
 
이를 모르지 않을 영화가 가축의 고통은 외면한 채 정서라는 불확실한 개념을 바탕으로 반려동물만 구분해 온정적 시선을 보내는 건 바람직한 태도가 못 될 것이다. 마트 쇼핑 등 여러 장면에서 개를 축산업에 포함시켜 마트에 진열하는 건 국민정서가 용납하지 않는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개 식용 문제에 이어 올해 초 발생한 양평 개 대량학살 사건으로 관심을 옮긴다. 양평군 주택가에서 1200마리가 넘는 개가 죽은 채 발견된 충격적 사건으로, 일명 처리업자가 반려동물 번식업자 등에게 필요가 없어진 늙은 개 등을 싼 값에 사들인 뒤 죽였다가 적발된 사례다. 질식과 아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죽은 개 사체를 제대로 처리조차 않은 채 유기한 이 사건은 인간이 동물에게 어떠한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일깨우며 충격을 던진다.
 
영화는 좀처럼 서로 엮이지 않는 듯한 세 개의 이야기를 병렬식으로 늘어놓고 개에 대한 인간의 폭력과 무관심을 일깨운다. 몇몇 인터뷰에서 동물 전체로 문제의식을 확장하려는 듯한 대목도 있으나, 그보다 많은 인터뷰와 자료에서 다른 동물보다는 개로 문제를 한정하는 듯 느껴지는 측면도 많아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듯 난잡한 인상을 준다.
 
영화적으로는 아쉬움이 크지만 다루고 있는 이야기 중에선 사회적으로 고민해 볼 가치가 큰 부분이 있다. 특히 첫 사례, 사회적 참사 속 동물의 피해를 인간이 무시하고 있었단 점은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충격이었다. 영화가 이 사례를 인터뷰 몇 차례로 담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깊이 돌입해 들어갔다면 어떠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적절한 문제의식이 주는 아쉬움이란 점에서 긍정적인 아쉬움이라 하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 임진평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다큐멘터리 김성호의 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