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어머니와 외간남자가 공공연히 교제하는 장면은 조선시대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그런 수준을 뛰어넘어 외간남자가 정치에까지 공식 개입하는 일은 이 시대에는 더욱 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런 일이 KBS 사극 <고려거란전쟁>의 배경인 고려시대에는 불가능하지 않았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천추태후(이민영 분)와 김치양(공정환 분)처럼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버지가 아닌 남자'가 공개 연애를 하며 국정을 이끄는 일이 이 시대에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고려시대 왕실 여성의 힘
 
 KBS <고려거란전쟁> 한 장면.

KBS <고려거란전쟁> 한 장면. ⓒ KBS

 
고려시대에는 왕실 여성의 힘이 조선시대보다 지속적이었다. 조선 왕실의 여성은 출가외인이 된 뒤에는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고려 왕실의 경우에는 달랐다. 고려 왕실 여성들은 혼인 뒤에도 왕실의 현역 일원으로 남을 수 있었다. 조선왕조의 공주는 결혼 뒤에 왕후가 될 수 없었지만, 고려왕조의 공주는 그것도 가능했다.
 
천추태후는 고려 태조의 손녀이자 추존왕인 대종의 딸이다. 조선시대 상식대로라면 이런 여성은 절대로 왕비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고려시대는 달랐다. 그는 사촌오빠인 경종과 혼인하고 그의 제3왕후가 됐다. 그런 뒤 아들 목종이 왕위에 오른 뒤 태후가 됐다.
 
고려시대에는 왕실 여성의 결혼이 '경력 단절'과 직결되지 않았다. 공주로 태어난 사람이 왕후도 되고 태후도 될 수 있었다. 권력 기반이 그처럼 강하고 지속적이다 보니, 이들이 김치양 같은 외간남자를 공공연히 가까이 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었다. <고려거란전쟁> 제1회에서 묘사된 김치양의 권력은 이런 구도에 바탕을 뒀다.
 
<고려사> 김치양열전은 "김치양은 동주(洞州) 사람이며 천추태후 황보씨의 외족이다"라고 말한다. 경기도 파주시와 북한 평양시의 직선거리 중간쯤인 지금의 황해북도 서흥군 사람이며, 천추태후의 어머니인 선의태후 유씨(류씨)와 친족이었던 것이다.
 
왕건의 손녀인 천추태후가 황보씨가 된 것은 그가 할머니인 신정왕후 황보씨의 족보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는 가야왕조에도 있었다. 가야 시조인 허황옥과 김수로의 열두 아들 중에서 열 명은 김씨가 되고 둘은 허씨가 됐다. 왕건이 호족들의 지원을 받아 왕이 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고려 초기에는 이들 지방세력이 특히 막강했다. 이런 상황은 왕족들이 호족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일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었다.
 
과거제 실시와 호족 숙청으로 유명한 제4대 광종에 이어 975년에 주상이 된 인물이 천추태후의 남편인 경종이다. 경종이 981년에 죽자 제6대 주상이 된 사람은 광종의 조카이자 경종의 사촌인 성종이다. 천추태후의 오빠인 성종이 천추태후의 남편 뒤를 이어 임금이 됐던 것이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관계
 
 KBS <고려거란전쟁> 한 장면.

KBS <고려거란전쟁> 한 장면. ⓒ KBS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관계가 핫이슈로 부각된 것은 제5대 경종이 죽은 뒤였다. 천추태후가 남편을 잃은 뒤로 궁궐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김치양이 궁궐을 드나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궁을 자유롭게 출입할 명분이 없었다. 고려시대 성문화가 아무리 개방적이었다 해도, 현직이든 전직이든 왕후 신분을 가진 여성이 외간남자를 가까이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머리를 깎는 것이었다. <고려사> 내에서 반역열전으로 분류된 김치양열전은 "일찍이 거짓으로 머리를 깎고 천추궁을 출입했다"고 알려준다.
 
'거짓으로 머리를 깎았다(詐祝髮)'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머리를 깎기는 깎았을 것이므로 "거짓으로 승려가 되고"로 번역해야 옳을 수도 있다. 승려인 척하며 궁을 출입하면서 천추태후를 만났던 것이다.
 
그 '거짓'은 세상에 알려졌다. 김치양열전은 "상당히 추잡한 소문이 났다"고 말한다. 이 사실이 천추태후의 오빠인 성종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 "성종이 이를 알고 곤장을 쳐서 먼 데로 유배보냈다"고 열전은 말한다.
 
이 상황은 성종에 이어 목종이 즉위하면서 뒤집혔다. 임금이 된 아들을 배경으로 천추태후가 실권을 갖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사실상의 공인을 얻게 됐다. 태후는 쫓겨난 김치양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처음에는 정7품 관직을 줬다가, 초고속 승진을 시켜 불과 몇 년 만에 정2품 고관으로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왕조의 권력은 11일 방송된 <고려거란전쟁> 제1회에도 묘사됐다시피 천추태후와 김치양 두 사람에게 집중되어갔다. 위 열전은 "모든 관료의 임명과 해임이 그의 수중에 달려 있었다"라는 말로 김치양의 권세를 설명했다.
 
김치양은 그 상태로 만족하지 않고 왕의 아버지가 되는 일까지 꿈꾸었다. 천추태후가 목종의 후계자 문제를 공론화하고 김치양의 아들이 주목을 받는 <고려거란전쟁> 제1회의 상황을 실제의 김치양은 마다하지 않았다. 김치양열전은 "나중에 태후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치양과 사통하여 낳은 것이었다"라며 "치양과 태후는 왕의 후사로 삼으려고 모의했다"고 말한다.
 
조선시대 관념에 따르면, 두 사람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기존 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나라를 개창하지 않는 한은 그랬다. 그러나 고려왕조는 달랐다. 이 시대에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김치양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었다. 이 점은 왕씨인 고려왕조는 물론이고 이씨인 조선왕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추태후의 아들'은 달랐다. 조선왕조에서는 불가능했지만, 고려왕조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래서 김치양의 아들로 살지 않고 천추태후의 아들로 사는 사람은 이 왕조의 대통을 승계할 여지가 있었다.
 
고려 초기의 왕실은 신라 왕실과 비슷했다. 천추태후와 경종의 혼인에서 나타나듯이 왕실 내에서 근친혼이 허용됐다. 왕족들이 끼리끼리 배우자를 구하는 족내혼도 유지됐다. 태조 왕건은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지방 호족의 딸들과 혼인했지만, 그 뒤에는 이들 내부에서 근친혼과 족내혼이 이뤄졌다.
 
고려 왕실이 신라의 유풍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후계자의 혈통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박씨인 신라 왕실은 석탈해와 김알지의 혈통을 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부계 혈통으로 석씨나 김씨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도 이 왕실의 임금이 될 수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박혁거세의 아들인 제2대 남해왕(남해차차웅)이 사위에게도 아들과 동일한 자격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남해왕 편에 따르면, 그는 '내가 죽은 뒤에는 아들과 사위를 막론하고 나이 많고 어진 사람이 자리를 잇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들이 없으면 사위에게도 기회를 주라'가 아니었다. '사위가 있으면 아들과 동일하게 대우하라'였다. 이에 따라, 자기 아버지가 박혁거세의 핏줄을 이어받지 않았더라도, 그 혈통을 이어받은 여성과 결혼했거나 그런 여성의 몸에서 태어났다면 왕실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는 신라에서 왕의 정통성을 판단하는 최고 기준이 부계 혈통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석탈해와 김알지의 혈통을 이어받은 남성들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그들이 박혁거세의 여성 후손과 혼인했거나 그런 여성의 몸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런 제도를 유지한 신라가 멸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에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살았다. 천추태후는 신라가 멸망한 지 30주년도 안 되는 964년에 출생했다. 그래서 그가 생존한 시대에는 고려 왕실 내에서 신라 왕실의 근친혼과 족내혼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를 감안하면,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이 고려 초기에는 불가능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왕건의 혈통을 어머니 쪽으로나마 이어받았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 혈통을 아버지 쪽으로도 이어받았다면 정통성이 훨씬 강했겠지만, 김치양의 아들은 불완전하나마 왕건의 혈통을 물려받았으므로 다음 임금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다. '외간남자' 김치양이 왕씨 왕조의 임금 아버지가 되려는 야심을 품은 것은 조선시대라면 몰라도 고려시대에는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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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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