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우울의 정서가 팝을 지배하는 시대다. 신나고 명랑한 댄스 팝이 빌보드를 호령하던 과거도 잠시, 코로나19 시기와 경제적 저성장에 직면한 Z세대는 우울을 노래하는 과정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하나의 문화로 만들었고, 자기혐오와 냉소, 불안정한 정서를 내세운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이별의 아픔을 양가적으로 노래한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등을 그들의 우상으로 만들며 팝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현상의 뿌리를 찾아 파고 들어가다 보면 그 끝 무렵에서 너바나(Nirvana)와 라디오헤드(Radiohead)라는 두 역사적인 밴드를 만나게 된다. 미국에서 탄생한 너바나는 세대의 절망적, 분열적 정서를 그런지, 얼터너티브 록의 형태로 분출했다. 영국에서 등장한 라디오헤드는 기존 밝고 아련한 감성의 브릿팝보다 한층 우울하고 감성주의적인 음악 세계를 선보이며 브릿팝 시대의 종말을 고함과 동시에 포스트-브릿팝의 시대를 열었다. 
 
두 거함 중 현재 팝의 흐름에 더 크고 직접적인 영향을 준 밴드를 뽑자면 단연 후자일 것이다. 너바나가 록이라는 장르의 생명을 연장했다면 라디오헤드는 그 특유의 정서와 사조를 음악계 전반에까지 넓게 확장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현상과 영향력에 '라디오헤디즘(Radioheadism)'이라는 신조어를 명명할 정도로 그 영향력의 크기는 막대했다.
 
콜드플레이와 음악, 그 존재 가치와 의의

 
  콜드플레이 < A Rush of Blood to the Head >가 수록된 앨범.

콜드플레이 < A Rush of Blood to the Head >가 수록된 앨범. ⓒ 워너뮤직코리아

 
21세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명성을 떨친 콜드플레이(Coldplay)의 걸작 < A Rush of Blood to the Head >는 우선 이 라디오헤디즘을 전 세계에 강력하게 설파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빌보드 앨범 차트 5위에 오른 이들의 상업적, 범지구적 성공은 라디오헤드식 감성주의 록을 대중에게 전도하는 기점이 되며 이후 팝의 흐름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뒤바꿨다. 

미츠키(Mitski), 닐뤼퍼 얀야(Nilüfer Yanya) 등 인디 록 아티스트들부터 얼터너티브 열풍을 이끈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나 로드(Lorde), 멀리는 프랭크 오션(Frank Ocean),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와 같은 흑인음악 혁명가들까지, 이 모든 범장르적 흐름의 뿌리에 콜드플레이와 < A Rush of Blood to the Head >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단순히 흐름의 전달자 역할에 머물렀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데뷔작 < Parachutes >의 서정적 팝 록을 더욱 정밀하게 세공하여 발전시킨 < A Rush of Blood to the Head >는 묵직하게 몰아치는 선율로 록의 시대 종말 이후 록이 나아갈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했다. 원리퍼블릭(OneRepublic)이나 1975, 하임(HAIM) 등 수많은 대중 지향적 팝 록 밴드들에게 분명한 귀감이 된 셈이다. 
 
이 은은하면서도 큼지막한 파도는 거꾸로 록이 팝 쪽에 흡수되는 과정에도 영감을 주었다. < A Rush of Blood to the Head >가 자랑하는 피아노와 보컬, 기타 중심의 부드러운 진행은 테일러 스위프트, 해리 스타일스,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 팝 발라드의 전형으로 연결됐고, 이는 팝 시장의 주류를 구성하는 데 큰 기여가 됐다. 
 
흔들림 없는 완성도와 작품성
 
 영국의 록밴드 콜드플레이 콘서트 장면(자료사진).

영국의 록밴드 콜드플레이 콘서트 장면(자료사진). ⓒ AP=연합뉴스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의의나 상징성을 가리고 보아도 앨범의 완성도와 위력은 놀랍도록 뛰어나다. 

우선 주목할 만한 부분은 중심 트랙의 대단한 전달력이다. 인트로 트랙 'Politik'의 질주 이후 낭만적인 기타 리프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In My Place', 비교적 간결한 코드 진행의 피아노 연주와 점층적 구성이 빛나는 'The Scientist', 시곗바늘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사운드의 'Clocks'까지, 모두 시대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뽑히기에도 손색이 없다. 
 
반복적인 피아노 연주가 흥분감을 고조시키는 'Daylight', 중심 트랙의 정체성을 계승하는 'Warning Sign' 등 핵심 트랙을 받치는 나머지 트랙의 완성도가 모두 매끄럽다는 사실 또한 인상적이다. 말 그대로 '흠잡을 데 하나 없을' 만큼 깔끔한 한 장. 

콜드플레이가 영국 록을 20년간 대표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 A Rush of Blood to the Head >에 있다.
콜드플레이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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