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12월 마블에서 제작한 <스파이더맨>의 세 번째 이야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개봉했다.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1편 <홈커밍>이 8억 8000만 달러, 2편 <파 프롬 홈>이 11억 31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을 정도로 단일 시리즈로는 마블 최고의 효자상품이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그리고 <노 웨이 홈> 역시 19억 2100만 달러라는 경이적인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역대 세계 박스오피스 7위에 이름을 올렸다. 

<노 웨이 홈>에서 관객들을 가장 열광시켰던 부분은 멀티버스를 통해 샘스파(토비 맥과이어 분)와 어스파(앤드류 가필드 분), 톰스파(톰 홀랜드 분)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장면이었다. 관객들이 상상만 했던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한 화면 속에서 현란하게 움직이고 서로 협동하면서 적들을 물리치는 장면은 <스파이더맨> 팬들을 흥분시키기 충분했다(그 와중에 어스파는 관객들을 울컥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장면도 연출했다).

<스파이더맨>은 샘 레이미 감독의 트릴로지를 시작으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 2편, 마블의 <스파이더맨> 3부작,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까지 총 10편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은 지금까지 공개된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최고의 영화로 이 작품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지난 2004년 샘 레이미 감독이 만들었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의 두 번째 이야기 <스파이더맨2>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최고명작으로 꼽히는 <스파이더맨2>는 7억88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최고명작으로 꼽히는 <스파이더맨2>는 7억88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 성우 넘나드는 배우

스페인 출신 아버지와 이탈리아 출신 어머니를 두고 있는 알프리드 몰리나는 195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9살 때 연극 <스파르타쿠스>를 관람한 후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런던에 있는 세계적인 공연예술학교 길드홀 음악 연극학교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운 몰리나는 1978년 시트콤에 출연하며 배우활동을 시작했다. 몰리나가 처음 이름을 알린 작품은 1981년에 개봉했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 <레이더스>였다.

몰리나는 <레이더스>에서 인디아나 존스의 가이드였다가 뒤통수를 치려 했던 사기꾼 사티포 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영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드라마를 위주로 꾸준히 활동하던 몰리나는 1997년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부기 나이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2002년 셀마 헤이엑과 연기호흡을 맞춘 <프리다>에서는 당대 최고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연기했다.

그리고 몰리나는 2004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자신의 대표작 <스파이더맨2>를 만났다. <스파이더맨2>에서 메인빌런 '닥터 옥토퍼스'를 연기한 몰리나는 팔 하나당 76개 파트로 분리돼 있는 무거운 기계팔들을 실제로 부착하고 연기에 임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몰리나는 <스파이더맨2> 이후 <다빈치 코드>와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마법사의 제자> 등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중저음의 좋은 목소리를 가진 몰리나는 많은 애니메이션에서 성우로 참여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다크 웹에 사는 민달팽이 형태의 괴물 더블 댄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와 아렌델의 왕이자 엘사와 안나의 아버지 아그나르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겨울왕국2>였다. 특히 <겨울왕국2>는 전편에 비해 아그나르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성우가 몰리나로 교체됐다.

2021년 애니메이션 <십계>에서 람세스의 목소리를 연기한 몰리나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17년 만에 닥터 옥토퍼스로 돌아와 관객들을 만났다. 닥터 옥토퍼스는 <노 웨이 홈>에 등장하는 첫 번째 빌런이었는데 등장만으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닥터 옥토퍼스를 기다렸던 팬들의 그리움과 달리 정작 몰리나는 인터뷰에서 <노 웨이 홈>에 출연한 이유를 '돈' 때문이었다고 밝혔다(물론 농담으로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이젠 보기 힘든 '히어로 비밀' 지켜주는 시민들 
 
 피터 파커는 평범한 대학생인 자신과 시민들을 지키는 책임을 가진 히어로의 의무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피터 파커는 평범한 대학생인 자신과 시민들을 지키는 책임을 가진 히어로의 의무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세계 최고의 군수회사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대표로 아이언맨 수트 수 십개를 만들었다가 부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부자다. <배트맨> 브루스 웨인 역시 부모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물려 받은 고담시에서 손에 꼽히는 재력가로 배트맨으로 활동하지 않을 때는 매일매일 성대한 파티를 열어 흥청망청 부를 낭비한다. 하지만 '생계형 히어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삶은 이들과 전혀 다르다.

<스파이더맨2> 시점에서 자취하는 대학생인 피터 파커는 매달 방세와 생활비를 걱정하는 가난한 청년이다. 여기에 히어로 활동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어 성적도 점점 떨어지고 좋아하는 여사친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 분)과의 사이도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다. 이에 피터는 고민 끝에 스파이더맨 활동을 접고 피터 파커로서의 삶에 충실하기로 결심한다. '영웅' 스파이더맨과 '소시민' 피터의 충돌은 <스파이더맨2>의 핵심주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 스파이더맨 활동을 접은 피터는 자신이 외면하고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다시금 히어로 활동을 시작한다. <스파이더맨2>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지하철을 세우는 장면에서 피터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 열차를 멈춘 후 혼절한다. 시민들은 스파이더맨의 정체가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스파이더맨 마스크를 찾아온 어린이는 피터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스파이더맨이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장면은 개봉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튜브에서 70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는 스마트폰과 SNS가 없던 2000년대 초반이었기에 나올 수 있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만약 '1인 1스마트폰 시대'가 된 현재에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면 스파이더맨의 사진과 신상은 순식간에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을 것이다. 

<스파이더맨2>에는 관객들을 감탄하게 하는 여러 명장면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영화 초반 닥터 옥토퍼스가 수술실에서 의료진들을 제압하는 장면은 숨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크게 잔인한 장면 연출 없이 집게 팔의 움직임이나 여성 의료진의 비명 이후 다음 장면을 생략하는 등 호러영화 스타일의 연출을 적극 활용했다. 샘 레이미 감독은 <스파이더맨>을 연출하기 전 <이블 데드> 시리즈를 만들며 'B급 공포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피터 슬프게 하는 역대급 민폐 히로인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한 메리 제인은 전형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의 민폐(?) 히로인이었다.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한 메리 제인은 전형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의 민폐(?) 히로인이었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한 메리 제인은 많은 남성팬을 보유하고 있는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의 히로인이지만 이에 못지 않게 많은 안티를 거느리고 있기도 하다. 바로 그녀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많은 민폐행보들 때문이다. 메리 제인은 <스파이더맨2>에서도 피터와의 관계가 지지부진하자 다른 남자와 약혼을 하더니 1편에서 스파이더맨과 키스했을 당시의 느낌을 떠올리기 위해 약혼자와 키스를 하면서 그 느낌을 찾으려 한다.

3편에서 뉴 고블린이 되면서 서브 남주 겸 빌런으로 지위(?)가 상승하는 피터의 절친 해리 오스본(제임스 프랑코 분)은 2편에서 옥타비우스 박사의 실험에 투자하는 사업가로 나온다. 스파이더맨과 닥터 옥토퍼스의 대결이 주로 나왔던 영화 중반까지 존재감이 약했던 해리는 영화 후반 스파이더맨의 정체가 피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큰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영화 후반 아버지 그린 고블린의 환영을 본 후 고블린의 혈청과 실험장비들을 발견한다.

<위플래쉬>의 플레처 교수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던 J.K.시몬스가 연기한 데일리 뷰글의 편집국장 J.조나 제임슨은 <스파이더맨2>에서도 피터를 구박하는 역할에 충실한다. 제임슨은 초반 '닥터 옥토퍼스'라는 이름을 짓기도 했는데 부하직원이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의견을 냈지만 이미 '누군가' 쓰고 있다며 기각했다. 그리고 15년 후 <노 웨이 홈>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와 닥터 옥토퍼스가 만나는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스파이더맨2 샘레이미감독 토비맥과이어 알프리드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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