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풍요롭게 소유하는 삶을 잘사는 삶으로 부추기는 세상 앞에서, 잘 산다는 것에 대한 관점이 빈약할 때 인간의 존엄성은 무너지기 쉽다.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노동 시장에 파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삶에서 인간이 사물화와 도구화되어 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스포츠 뉴스에 누군가의 몸값이 거론돼도 어색하지 않다. 시장의 가치가 우리 삶을 지배한다.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 그러나 교육은 시장을 닮아간다. ‘명품 교육’이라는 표어는 마치 교육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느낌을 안긴다. 학생들은 사물이 아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학교에서 받은 성적은 상품의 등급처럼 사용된다. 전자 제품도 아닌데 자신의 시험등급을 받아 들고 여기저기 내민다. 자신의 시험 성적은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따른 공정한 결과라고 여긴다. 친구와 교사, 부모에게 빚을 진 대가라는 생각은 경쟁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진로를 선택할 때 어떻게 사느냐보다는 무엇이 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무엇이 되느냐를 위한 선택은 내 삶의 지평을 왜소하게 만들고 무력감을 맛보게 한다. 획일화된 선택은 삶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에 도전할 기회를 제한하며 무력감에 젖게 한다. 오만한 능력주의는 경쟁과 서열이 공정하다는 착각을 낳게 하며 윤리의 가치를 오염시킨다. 해서, 오늘날 학교의 교육은 사람의 존엄성에 합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사와 학생들은 존엄한 삶을 원하고 존엄하게 살기 위해 각자의 처지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특수학교의 교육은 자본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존엄한 삶의 이야기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교육 현장에서 장애를 겪는 학생들의 장애에 대한 극복이나 치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를 겪으며 사는 이야기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 연재가 장애에 대한 낙인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데 작은 힘이 되길 희망한다.
참여기자 :
교사와 학생의 만남은 소문을 넘어서는 일이다
학생이 직접 하도록 믿고 지켜보면 어떨까?
학생들에게 부지런히 응답하란, 나에게 주는 깨우침
여전히 장애인에겐 발 디딜 사회 공간이 부족한 세상이지만, '희망'을 찾기를 바라며...
장애인 처지 고려 않는 사회에서 밴댕이 소갈딱지로 살아내기
자립과 의존, 이분법적 시각을 벗어나자
장애인을 향한 무시와 모욕의 시선을 없애는 교육과 실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