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06 07:19최종 업데이트 21.05.06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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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국회의사당. ⓒ 권우성

 
'공무원은 문서로 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무원은 모든 일을 기록해 근거를 남기고, 그 근거에 따라 일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공무원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문서를 만들어냅니다. 다른 부서와 일을 하거나 다른 기관과 일을 할 때 공무원은 공문을 주고받습니다. 심지어 민간기관이나 시민들과 일할 때도 공무원은 일단 공문을 보냅니다. 그래서 공공기관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려면 일단은 공문 목록을 보면 된다고들 합니다. 

그러면 국회의원은 어떨까요? 법을 만들고, 예산을 결정하는 국회의원. 정부를 감시하고 시민을 대의하는 국회의원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우리는 기록으로 알 수 있을까요? 


국회도 당연히 기록을 만듭니다. 어떤 문서를 생산하고 접수하는지 알 수도 있습니다. 국회의 각종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열린국회정보'에서는 국회의 생산 및 접수 공문 목록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개하는 것은 국회사무처(각 상임위 포함), 국회예산정책처, 국회입법조사처, 국회도서관 등 국회 소속기관에 대한 기록뿐입니다. 스스로 헌법기관이라고 자임하는 국회의원이 어떤 기록을 만들었는지, 누구와 공문을 주고받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초라한 국회의원 기록

지난해 정보공개센터는 국회의원실이 어떤 문서들을 남기는지 알아보려고 국회에 '국회의원실의 국회전자문서시스템 문서등록 현황'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실의 업무지원을 맡아 하는 국회사무처는 해당 정보가 없다며 정보부존재 답변을 했습니다. 

 

‘국회의원실의 국회전자문서시스템 문서등록 현황’ 정보부존재 통지서 ⓒ 정보공개센터

 
* 청구내용
 20대 국회 국회의원실에서 사용한 국회전자문서시스템 생산접수 현황 : 의원실명, 등록번호, 등록일자, 단위업무명, 문서제목, 담당자, 접수등록구분, 보존기간, 공개구분, 수발신자, 문서유형 등 전자문서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는 항목별로 공개하여주시기 바랍니다.

* 답변내용
귀하께서 청구하신 정보는 국회사무처에서는 생산·접수하지 않는 정보이므로 「국회정보공개규정」제6조의3제1항제1호(공개 청구된 정보가 소속기관이 보유·관리하지 아니하는 정보인 경우 정보부존재 처리)에 따라 정보부존재함을 알려드립니다.  

'정보부존재'는 참 이상한 답변입니다. 국회사무처의 정보가 없다는 답은 어떤 의미로든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우리는 왜 국회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록이 없어서입니다. 아니 엄밀하게는 기록이 관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회의원실에서 생산하는 문서들은 기록관리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기록관리법 격인 '국회기록물관리규칙'이라는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300개 국회의원실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록을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기록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19대 국회 기간(2012~2016) 동안 '국회전자문서시스템 생산·접수 현황'에 등록된 문서 중 국회사무처의 기록은 39만 4374건에 달하는 반면 국회의원실 기록은 8777건에 불과합니다. 의원실 당 연평균 7건꼴입니다. 지금은 나아졌을까 싶지만 앞서 봤다시피 아예 정보가 없다고 하니 확인할 길도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원실이 하는 일은 많은 데 비해 인원이 많지 않아 그때그때 기록을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록관리의 부재는 곧바로 기록의 부재로 이어집니다. 초라한 국회의원 기록이 이를 증명합니다. 

임기를 마친 국회의원들은 기록을 국회에 남기기도 하는데요. 국회기록보존소가 수집해 관리하는 전·현직 국회의원이 남기고 간 의정활동 기록물은 2021년 기준 2만 3393점에 불과합니다. 제헌의회부터 지금까지 국회의원이 5천 명도 넘었다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양입니다. 

의정활동 기록을 국회에 기증해달라는 요청에 어느 국회의원실은 "의정보고서 제출하면 됐지, 내부 업무 기록을 왜 남겨야 하나요?"라며 오히려 당당하게 되묻습니다.
 

국회의원 의정활동 기록물 수집 및 관리현황 ⓒ 국회기록보존소

 
국회의원과 대비되는 대통령

누구는 국회의원의 일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들도 많아 기록으로 남기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민감함으로는 결코 뒤지지 않을 대통령도 퇴임할 때는 기록을 남깁니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14명이 남긴 기록은 3100만여 건입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대통령이 기록을 충실히 남겼던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이 남기고 간 기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건 김대중 대통령부터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혼자 남긴 기록의 양이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영삼 대통령까지 남긴 기록을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왜였을까요? 법 때문입니다. 당시 국민의정부는 법적으로 공공기록물의 관리를 의무화하기 위해 공공기록물관리법을 제정했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모든 공공기록은 마음대로 가져가서도, 마음대로 폐기해서도 안 된다는 원칙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대통령도 여기에 적용된 거죠. 

그 이후인 참여정부에서는 대통령기록을 더 잘 남기기 위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제정합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기록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기록을 남기고 퇴임했습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제도의 힘입니다. 국회의원은 쏙 빠져있는 국회기록물관리규칙과도 대비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마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2020.9.7 ⓒ 유성호

 
지금 우리는 국회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도 볼 수 있고 회의에서 발언한 것도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의정활동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법안을 만들기까지 어떤 일을 하는지, 발언과 질의를 하기까지 무슨 과정을 거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대변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국회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니 알아야겠습니다. 그것은 권한을 위임해 준 시민의 권리입니다. 시민을 대의하는 국회의원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기록은 책임의 근거이자 투명성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지금 국회의원은 책임을 설명한 기록도, 투명성을 드러낼 기록도 없습니다. 정보공개청구를 해봐도 정보가 없다는 답변뿐입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의 기록이, 기록을 남기게 할 국회의원 기록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정보공개센터는 국회의원이 의정기록을 의무적으로 남기도록 요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반드시 남기도록 서명으로 동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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