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3 12:23최종 업데이트 21.10.13 16:53
  • 본문듣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장기화되고 일상 생활이 비대면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사회보장제도와 소득 지원에 대한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외환위기 이후 계속해서 심화되어 온 '부익부 빈인빅' 현상은 코로나를 거치며 가장 첨예한 사회문제가 되었고, 영세 자영업자들과 빈곤층의 생계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지난 8월 정보공개센터는 재난지원금 지급,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산정을 포함해 소득을 기준으로 한 각종 복지사업에 있어 기준으로 활용되는 기준중위소득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결정되었는지 알기 위해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이하 중생보위)의 회의록과 속기록을 정보공개청구 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2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63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1.7.28 ⓒ 연합뉴스


중위소득이란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소득을 오름차순으로 배열했을 때 중앙에 있는 금액을 말하는데, 활용하는 통계나 계산법 등에 따라 그 금액이 크게 달라져 관계부처(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장차관 6명, 사회복지와 관련된 학문을 전공한 전문가 5명, 공익을 대표하는 위원 5명으로 구성된 중생보위에서 논의를 통해 매년 그 금액을 결정하고 있다.

코로나 재난지원금 분배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 중위소득에 따라 빈곤에 놓인 사람들의 지원 여부와 범위가 나뉘기 때문에, 중생보위의 결정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생사를 좌우하는 것이다. 하지만 행정가와 전문가 집단이 대부분인 이 20명 남짓의 위원회에서 어떤 내용의 논의가 오가는지, 무엇이 쟁점이고 각 입장의 구체적인 주장과 근거가 무엇인지,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최종결정이 이뤄지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 회의도 회의록도 언론과 시민에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결정 과정의 내용이 공개될 경우 향후 해당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정보에 해당' 한다며 기준중위소득 관련한 회의 내용을 일체 비공개했다. 심지어 2022년 기준소득이 전년 대비 5.02% 인상으로 결정된 이후였음에도 불구하고, 결정되기까지 과정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중생보위 회의록 및 속기록 정보공개청구 통지 중생보위 회의록 및 속기록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기준중위소득 관련 회의록은 일체 비공개 통지했다. ⓒ 정보공개센터

 
'위원회'의 취지 무색한 회의록 비공개

회의과정이 비공개되는 것은 비단 중생보위만의 문제는 아니다. 행정안전부의 <2020 행정기관 위원회 현황>에 따르면 2020년 현재 각종 행정기관 위원회는 585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의 위원회는 1만7746개에 달한다. 이중 행정기관 위원회는 행정기관위원회법에 따라 설치 운영되며, 지방자치단체의 위원회는 각 지자체의 조례에 따라 설치 운영되는데, 행정기관위원회의 경우 회의록, 속기록, 녹음기록 등을 작성해야 하나, 이를 공개해야 할 의무는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회의의 내용을 알기 위해 정보공개 청구를 하더라도, 중생보위의 경우처럼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2017년 정보공개센터에서는 <회의공개법 제정을 위한 한국과 미국의 회의공개 실태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데, 당시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위원회 20개에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회의 내용을 일부라도 공개한 경우는 7건에 그쳤다.

'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게 보다 민주적인 거버넌스 구조를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떤 회의가 열리는지, 무엇을 결정하는지, 누가 위원으로 참여하는지 등을 시민들이 알지 못하는 상황은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행정'을 추구하기 위한 위원회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회의공개법 제정을 위한 한국과 미국의 회의공개 실태연구 정보공개센터에서 2017년 수행한 한국 회의공개 실태 연구 중 국무총리 참석 회의록 공개 현황 일부 발췌 ⓒ 정보공개센터

 
게다가 이번 중생보위 속기록 요청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답변과 같이, 속기록을 꼭 남겨야 하는 지정속기록 회의가 아닌 경우 회의 내용이 개략적이고 부실하게 기록되는 문제 역시 심각하다. 현행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국가기록원에서 지정하는 회의의 경우 속기록을 작성해야 하는데, 정보공개청구 결과 중앙부처의 속기록 의무생산 회의는 2020년 기준 고작 84개에 불과한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작성된 속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행령에 따라 최대 15년까지 속기록을 비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은 전혀 확보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철저히 공개

회의가 공개되지 않는 것은 물론 기록도 제대로 남겨지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위원회 운영과는 달리 미국의 경우 연방회의공개법과 50개 주별 회의공개법이 모두 존재한다. 미국의 회의공개법은 회의록의 공개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의 사전공지, 대중의 회의 참관, 회의록의 사후 공개 등의 조건을 모두 갖춘 '회의 자체의 공개'를 의미한다. 미 회의공개법의 경우 공공기관의 활동과 정책 결정의 과정을 공개적으로 수행하여, 대중의 참여와 감시가 이뤄질 수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되었고, 회의공개법을 위반하여 절차를 지키지 않고 진행한 회의의 결정은 모두 무효화되어, 밀실회의를 방지하고 있다.

한국의 제도에서는 위원회 회의의 운영과 관련한 내용들이 법률 단위가 아닌 개별 시행령이나 규칙으로 규정되어 있어, 운영기관의 의지에 따라 투명성의 보장정도가 좌지우지 되는 경향이 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20일 과천 방통위에서 열린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4.20 ⓒ 연합뉴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의 경우 2008년 4월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운영에 관한 규칙을 의결하여 "회의운영 공개 원칙"을 세우고, 누구든 12시간 전까지 방청을 신청하면 회의장의 상황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몇몇 위원회들 역시 비슷한 행정규칙에 따라 방청이 가능하다. 이제 이러한 회의 공개의 사례들이 모든 공공기관의 회의운영 원칙이 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의 각종 위원회 회의들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정하는 일관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원회라는 소수의 집단이 큰 결정을 내리게 되는 거버넌스 구조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그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의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행정의 기본적인 의무다. 행정에서는 위원들이 위축되어 자유로운 의사개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회의 공개에 난색을 표하곤 한다. 그러나 위원회가 맡고 있는 역할과 그 결정이 미치는 파급력등을 함께 고려했을 때, 논의 내용이 공개되는 정도의 책임성도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는 밀실행정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10만인클럽후원하기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