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13 19:44최종 업데이트 21.11.2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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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장호항 정호어촌체험마을. ⓒ 권우성

 
"오르막차로 2km, 아이고~"

오르막에서 페달을 멈출 때마다 한숨이 터졌다. '낭만가도'라고 적힌 도로안내판은 액셀러레이터만 밟으면 되는 차량 이용자에게만 적용되는 문구였다. 오르막길에서는 무조건 걸었지만, 온몸이 땀으로 젖어 천근만근이었다. 어떤 구간은 달리는 것보다 '끌바'(자전거 끌고 이동) 시간이 더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도로 위에 찍힌 전화번호가 나를 유혹하기도 했다. 


"자전거 수리 010-3XXX-XXXX"

임원항으로 가는 아스팔트 바닥에 붉은 락카칠로 새긴 글씨였다. 도로를 광고판으로 활용한 발상보다 전화번호만 누르면 순간이동도 가능하다는 게 더 매력적이었다. 자전거 수리를 위해 타고 온 트럭이나 밴을 이용하면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이 업계 전문용어로 소위 '점핑'. 돈만 지불하면 시간도 벌고 라이딩 거리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임원항으로 가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 찍힌 자전거 수리점 전화번호 ⓒ 김병기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고개 정상에 오르면 페달을 한 번도 구르지 않고 2~3km를 점핑할 수 있었다. 내리막을 채 내려오기 전에 오르막이 시작되면 또 다시 입 밖으로 "아이고" 소리를 냈지만 고개 위에서 탄성을 지르며 '점핑'을 거듭했다. 사실 4대강 자전거 길과 비교하면 동해안은 '업힐 지옥'이었다.

[장호항] 비경 속에 사람이 있다

걷고 달려서 찾아간 '한국의 나폴리' 장호항. 지난 8월 중순, 코로나19 여파로 고성 통일전망대부터 지나온 해수욕장과 항구들은 대부분 텅 빈 상태였지만 여긴 달랐다. 차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장호해수욕장 남쪽 끝으로 갔을 때 그 이유를 알았다.

에메랄드 빛 물속에서 평평하고 뾰족한 기암괴석이 불쑥불쑥 솟았다. 쪽빛 파도가 그 사이를 밀고 들어오면서 하얀 포말이 일었다. 문득, 추암해변이 떠올랐다. 조선 전기,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던 한명회는 추암의 비경을 '능파대'라 부르면서 물결 위를 걷는 미인의 걸음걸이에 비유했지만 기암괴석 위를 걷는 사람은 없었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장호항 정호어촌체험마을. ⓒ 권우성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장호항 정호어촌체험마을. ⓒ 권우성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장호항 정호어촌체험마을. ⓒ 권우성

장호항 비경 속엔 사람이 있었다. 절벽 위를 걷거나, 뛰어내리는 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바닥이 내비치는 유리알 같은 물속에서 깔깔거리며 자맥질을 했다. 수경을 쓴 채 물속을 들여다보며 스노클링을 즐겼다. 젊은이들은 기암괴석 사이로 들이닥치는 파도를 타며 놀았다. 잠시 별세계에 온 듯했다. 

장호항 옛 지명은 장오리. 마을 지형이 수컷 오리인 장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스노클링, 투명카누, 스쿠버다이빙 등 해양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은 장호해수욕장을 지나 장오리의 머리격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함께 뛰어들고 싶었지만, 오랜 라이딩으로 사타구니가 쓰려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장호항에서 나오자마자 해신당공원으로 가는 길목의 오르막이 시작됐다. 

[임원항] 은빛 항구... 당황스러운 곰치국   

임원항에 도착해 제일 먼저 간 곳은 빨간 등대였다. 멋진 풍경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등대 밑에서 자전거를 세워둔 채 쉬고 싶었다. 

"이놈아, 이젠 편안하게 해줄게."

한 낚시꾼이 등대 앞 방파제에서 잡은 숭어 대가리를 칼등으로 내리쳐 기절시킨 뒤 머리를 자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등대 그늘 시멘트 바닥에 숭어처럼 누워 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웃다가 잠이 들었다. 손두부와 감자전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 뒤에도 피곤이 밀려와서 임원항에 숙소를 잡고 일찍부터 잤다. 

다음날 찾아간 새벽 항구에는 수백 마리의 삼치 더미가 쌓여 있었다. 어부들은 위판장 바닥에 수북하게 놓인 삼치에 물을 뿌렸다. 근해 어장에 쳐 놓은 그물에서 막 꺼내온 녀석들이라는 데 죽어 있었지만, 몸은 은빛으로 빛났다.     
 

임원항 어판장 바닥에 쌓여있는 삼치. ⓒ 김병기

 
"오징어요? 3만 원이에요. 데쳐먹으면 맛이 그만입니다."

상인들은 관광객들과 흥정을 벌였다. 배에서 물고기를 비운 어부들은 아무 말 없이 그물을 내렸고, 한쪽에선 내린 그물이 엉키지 않도록 가지런히 정리했다. 벌써부터 갓 잡은 생선의 살코기만 발라서 물에 씻고 포장하는 상인도 있었다. 임원의 새벽 항은 싱싱한 날생선처럼 모두들 살아서, 살기 위해 뛰고 있었다. 

곰치국을 먹었다. 큰 대접에 담긴 곰치살이 대구 살처럼 큼지막했다. 파를 크게 썰어 넣었고 고춧가루를 뿌려서 해장용으로 안성맞춤인 듯했다. 하지만 살점을 한 입을 넣은 뒤엔 당혹감이 밀려왔다.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녹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고 횟집 주인 최경순씨(50)가 웃으며 말했다. 
 

임원항 횟집 주인 최경순 씨는 곰치국의 유래와 재료 등에 대해 설명해줬다. ⓒ 김병기

 

임원항 한 횟집에서 먹은 곰치국. ⓒ 김병기

 
"처음 먹어 보나요? 물이 많은 생선이에요. 육질 자체가 흐물거립니다. 열흘 정도 말리면 종이처럼 쪼그라들죠. 어부들은 그걸 찢어서 구워먹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원체 흔해서 먹지 않았는데, 지금은 귀한 생선이죠. 임원항에서는 한 집만 곰치를 잡는데, 홍게 잡는 배의 그물에 몇 마리씩 걸려 나옵니다." 

곰치의 표준어는 꼼치이다. 과거에는 살이 물러서 버렸지만, 임원항에서만도 곰치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는 횟집이 많았다. 국물이 담백하고 비린내가 없어서 해장국으로 인기가 높다고 했다.

[왕피천&행곡교회] 솔향기와 역사의 향기

삼척로를 따라 계속 달렸는데, 좀처럼 해안선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특히 울진쪽으로 도경계를 넘어서면서 대형 탱크들이 해변을 점령했다. 삼척종합발전 일반산업단지에 막혀 내륙으로 우회했고, 봉화산 기슭으로 돌아 고개를 내려왔더니 울진한울원자력본부 사무실이 나왔다. 원전을 피해 울진북로로 한참 돌아서 죽변항에 도착했다.
 

경북 울진군 죽변항 대게 식당. ⓒ 권우성

 
울진이 대게의 고장이라는 것은 죽변항에 즐비한 횟집 간판을 보고 알았다. 횟집 어항의 물속에는 대게들이 몸을 움직일 틈도 없이 가득 쟁여져 있었다. 대게 철은 아니었기에 아마도 러시아 등 해외의 바다에서 잡혀왔을 것이다. 한 식당에서 러시아산 대구탕으로 요기를 하고 다시 페달을 돌렸다.  

봉평 해수욕장을 지나, 골장항, 양정항, 대나리항에 이르기까지 죽변항 이후부터는 해변도로가 이어졌다. 울진 도심으로 들어섰다가 수산교를 넘지 않고 왕피천을 따라 올라갔다.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과 울진군에 걸쳐 있는 금장산에서 시작해 동해로 흐르는 하천이다. 과거 실직국 왕이 피난 왔다고 해서 마을을 왕피리(王避), 하천을 왕피천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골이 깊다는 반증이다. 
 

경북 울진군 근남면 왕피천생태공원. 케이블카에서 생태공원과 왕피천, 동해바다가 한 눈에 펼쳐보인다. ⓒ 권우성

 
천변 자전거 도로 위에 있는 왕피천 공원의 솔밭을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둘러봤다. 소나무가 빽빽한 오솔길에는 공연장과 문화관, 놀이기구 등 다양한 시설물들이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이곳도 텅 비어 있었다. 솔밭 한가운데 벤치에 자전거를 기울여두고 누워 솔향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왕피천을 타고 오르면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마을 입구에 아담하게 서 있는 '행곡교회'가 나온다. 조선시대 울진읍성 병사 숙소로 쓰이다가 1917년경부터 종교 건물로 사용된 한옥형 기독교회인 행곡침례교회이다. 울진군에서 최초로 건립된 교회인데, 모진 풍상을 겪었다. 
 

경북 울진군 근남면 한옥형 기독교회인 행곡교회.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 권우성

 

조선시대 울진읍성 병사 숙소로 쓰이다가 1917년경부터 종교 건물로 사용된 한옥형 기독교회인 행곡침례교회이다. ⓒ 김병기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 반대로 교회가 폐쇄되고 재산을 몰수당했다고 한다. 또 6.25 당시에는 공산당 이념교육 장소였고, 수복 후에는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조선시대 때 만든 나무 골조는 건재했다. 흰색으로 칠해진 벽면에 드러난 황토색 나무 기둥이 묘한 조화를 이뤘다. 조선시대에 성을 지켰던 병사들이 이 공간에 머물렀을 것이다. 잠시 앉아 쉬면서 닳고 닳은 마룻바닥을 손으로 한번 쓸었다.  

[망양정] 산 정상에 날듯이 앉은 누각 기둥에 기대어 서서 

왕피천을 타고 내려와 망양해수욕장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망양정으로 올랐다. 숲길을 10여분 걸어 오르자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선 망양정이 나왔다. 왼쪽으로는 왕피천 하구와 모래사장이 펼쳐졌고, 탁 트인 바다가 보였다. 정자에서 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면서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했던 곳이다.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했던 경북 울진군 근남면 망양정. ⓒ 권우성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했던 경북 울진군 근남면 망양정. ⓒ 권우성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했던 경북 울진군 근남면 망양정. ⓒ 권우성

 
"하늘의 가장 끝을 결국 못 보고서 망양정에 올라서니/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가/ 가득 성난 고래 뉘께서 놀라게 했기에/ 물을 불거니 뿜거니 하면서 어지럽게 구는 것인가/ 은산(파도)을 꺾어내어 온 세상에 뿌리는 듯/ 5월 창공에 백설(파도의 물거품)은 어찌된 일인가"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망양정에서 내려다 본 동해바다의 모습을 형상화한 대목이다. 관동팔경을 유람한 숙종이 망양정에 남긴 어제시도 현판으로 걸려 있었다.
 
"여러 골짜기 겹겹이 구불구불 열리고/놀란 파도 거센 물결은 하늘에 닿아 있네/지금 이 바다를 술로 만들 수 있다면/어찌 단지 삼백 잔만 마실 수 있으리오"

정철이 본 고래는 보이지 않았다. 숙종이 노래한 해변의 파도도 제대로 조망하긴 힘들었다. 안내판을 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고려 말에 지어진 망양정은 이 자리가 아니라 남쪽으로 더 내려가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었단다. 조선 철종 때 이 자리로 이전했고, 2005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동해를 바라보며 산 정상에 날듯이 앉아 있는 누각. 그 기둥에 기대어서 눈을 감고 한동안 서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길을 오를 때 흥건해졌던 온몸의 세포 속으로 갯바람이 침투하는 게 느껴졌다. '업힐'은 계속되겠지만, 지옥은 결코 아니다.
 

기암절벽, 쪽빛 바다... 비경 속에 '폭'박힌 사람들 해안선 1만리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첫 행선지는 강원도 고성통일전망대부터 부산 을숙도 생태공원까지. 이 영상은 7편으로 맹방해수욕장에서 망양정까지 두 바퀴 인문학 여정을 담았다. 이 영상과 관련한 자세한 기사를 보시려면 “기암절벽, 쪽빛 바다... 장호항 비경 속에 박힌 사람들” 기사를 클릭하시면 된다. ⓒ 김병기

 
[내가 간 길]
맹방해수욕장-장호항-임원항-왕피천-행곡교회-망향정

[인문·경관 길]
장호항 : 장호어촌체험마을은 해양레저형 체험마을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곳이다. 기암절벽 사이에서 스노클링, 스쿠버 다이빙 등을 즐길 수 있으며 경관도 수려하다. 

왕피천 : 1급수에만 서식하는 버들치, 연어, 황어 등 어종이 풍부하다. 왕피천 유역은 국내 최대 금강송군락지이며 환경부는 왕피천 유역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행곡교회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 있는 교회 건물. 국가등록문화재 제286호이다. 1917년경에 한옥으로 건립한 울진 지역 최초의 교회 건물이다. 

망양정 : 경북 울진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주춧돌만 남았었는데 2005년 기존 정자를 완전 해체하고 새로 건립했다.

[사진 한 장]
장호항의 기암괴석과 쪽빛 바다

[추천, 두 바퀴 길]
왕피천 강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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