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30 11:57최종 업데이트 21.12.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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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포 광장에 전시된 포경선 '제6진양' ⓒ 김병기

 

울산 남구 매암동 장생포 해양공원의 고래 조각상 앞에서 만난 황선구(62)씨 ⓒ 김병기

 
"여긴 개도 돈을 안 물고 다녔어. 그 정도로 돈이 흔했지."

피식, 웃음부터 나왔다. 개도 만 원짜리를 입에 물고 다녔다는 소리는 들어봤는데, 이런 말은 처음이었다. 울산 남구 매암동 장생포 해양공원의 고래 조각상 앞에서 만난 황선구(62)씨. 1986년 상업 포경이 전면 금지되기 전, 풍요로웠던 어촌 풍경이다. 가위질을 하며 굵은 로프에서 폐그물을 떼어내던 그는 한참동안 말을 이었다. 장생포의 과거와 현재였다.


잠깐 머무는 여행자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이 이런 말 속에 들어 있었다. 여행이 낯선 것들과의 만남인 까닭은 그들에겐 익숙하지만 나에게는 새롭기 때문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 위에 서서 이색적인 풍경을 만나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이질적인 문명과 대화하기도 한다. 그래서다. <잃어버린 시간>을 쓴 프랑스 작가 마르쉘 푸르스트(Marcel Proust)는 말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하지만 시속 20~30km의 자전거 속도로 달리면서 새로운 눈을 장착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 머릿속을 비운 채 산책을 하거나 한 곳에 머무르면서 새로운 것들을 응시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낯선 거리 한복판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그와 마주 앉은 이유이기도 했다. 여행은 떠나는 게 아니다. 다른 시공간에 잠시 머무는 것이다. 

[장생포] "난 고래를 잡았지" 
 

울산 장생포고래생태체험관. ⓒ 권우성

 
지금은 가자미를 잡고 있지만, 그도 한때는 고래 잡는 포경선 선원이었단다.   

"5년 정도 탔어. 고래잡이배는 군대 계급처럼 꽉 짜여 있지. 처음 1년 동안은 무조건 배 위에서 밥만 짓는데, 그 뒤에는 배를 지키는 일을 하고, 갑판으로 올라가지. 포수가 대가리, 대장이야. 선장도 힘을 못 써. 그런데 포수는 잘 쏘는 게 아니라 잘 보는 사람이야. 쏘는 기술보다 망망한 바다를 끈질기게 바라보면서 고래를 잘 찾는 사람, 그게 최고의 포수지."

기계를 다루는 기술보다 일을 대하는 삶의 태도가 포수의 자질을 결정한다는 말이 흥미로웠다. 그는 "열서너댓명이 타는 700~800 마력 포경선의 속도는 해경도 따라잡지 못했다"면서 "1년에 배 한 척에 많게는 수백 마리씩 잡기도 했고 90% 일본에 수출했다"고 말을 이었다.

당시 선주들은 재벌이었다. 아침마다 장생포 앞에는 왁자지껄한 고래 시장도 섰다. 또 80년대 이전에는 고래를 살살 달래서 잡았는데, 그 뒤부터 물속에 전파를 쏘는 장비를 들여왔단다. 놀라서 물속에서 튀어 오르는 고래를 잡았기에 백발백중이었다는 등의 고래잡이 기술 변천사도 전해줬다. 술집과 다방도 문전성시를 이뤘고, 시내보다 집값이 2배 이상 비쌌단다.

"하지만 지금은 고래잡이가 금지돼 있어. 간혹 우연하게 통발 줄에 걸리는 고래가 전부지. 전국에서 그렇게 잡힌 몇 백 마리의 고래가 장생포나 포항 지역으로 와서 팔려. 킬로그램당 13~14만 원 정도 하니까, 큰 놈은 한 마리에 1억 원 정도는 해. 과거에는 이 동네 사람 20% 이상이 고래잡이 선원들이었는데, 다 떠나갔지. 저 위쪽으로 가면 폐가도 많아."

장생포 타령 "새끼고래 수백 마리 펄떡 뛰고 춤추면"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영화 < In the Heart of the Sea >에서 나오는 1등 항해사 오웬 체이스와 신출내기 선장 조지 폴라드가 떠올랐다. 1800년대, 고래잡이는 기름을 짜내는 거대 산업, 돈밖에 모르는 자본가들의 투기판이었다. 흰 고래 모비딕이 난파한 포경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선원들은 고래가 아니라 사람을 잡았다. 생존을 위해 집단 광기를 부렸다.
   

울산 장생포고래생태체험관. ⓒ 권우성

 

울산 장생포고래생태체험관. ⓒ 권우성

 
이런 광기까지는 아니지만,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에도 일제 때 시작된 고래 산업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1899년 러시아 태평양 포경회사에 고래 해체 부지를 제공한 장생포. 러일전쟁 때 러시아가 패배한 뒤 일본이 포경업을 독점했다. 생태체험관에는 당시 고래를 해체하는 마을 풍경과 고래 기름을 짜는 착유장 등이 재현돼 있었다.

천장과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수조에서 돌고래들이 공놀이를 했다. 체험관 수족관 터널을 빠져나오니 '제6 진양'이라고 적힌 실제 포경선이 광장에 전시돼 있다. 1986년 상업포경이 금지될 때까지 태평양을 누볐던 87톤급 포경선이다. 갑판 위에서 포수가 작살을 겨누는 모습도 생생하게 재현했다. 장생포에 마지막으로 남은 포경선은 이제 고래를 잡지 않는다. 

'장생포 마을 이야기길'로 들어갔다. 줄지어 늘어선 고래 고기 음식점의 뒷골목, 낡은 단층 집 담에는 벽화로 도배됐다. 줄넘기 하는 아이들, 아빠 무동을 타고 감 따는 아이, 바다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돌고래와 귀신고래 등에 올라탄 아이들... 기억의 공간이다. 광장에 서 있는 노영수 시인의 '장생포 타령' 시비에도 오래된 기억이 담겨 있었다.
 
장생포 곤여는 오행이 골고루
곤궁하지 않고 정재가 있는 곳
앞산은 치마산 고향 마을 보살피고
새끼고래 수백 마리 펄떡 뛰고 춤추면
다칠까 돌고래 휩싸서 들이고
파도는 해안 따라 삥 둘러 에워싸고
나팔소리 오색 끈을 허리에 매고
작은 배 큰 배 고기 잡아 돌아오면
당산 할머님 좋아하는 곡차도 올리고
밤새도록 포경선 지켜주는
골메기 신장님
- 노영수, 장생포 타령

국보 제285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신석기 시대 고래 그림처럼, 고래와의 상생을 꿈꾸는 시비 위로 모노레일이 지나갔다. 대형 유류비축 기지가 들어선 장생포 맞은 편 앞바다로 유조선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고래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장생포에서 하루 밤을 묶었다. 아주 오랫동안 고래 꿈을 꾼 것 같았다.
    
[간절곶] 여기서 해가 떠야 한반도 아침이 온다  
 

울산공업단지를 통과했다. 기계 골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거리에서의 라이딩은 고역이었다. ⓒ 김병기

 
간절곶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포항은 포스코 공장들로 들어차 있었는데, 울산은 현대 중공업이 점령했다. 현대 간판이 즐비한 울산공업단지를 통과했다. 기계 골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거리에서의 라이딩은 고역이었다. 나는 거대한 공장 속을 달리는 것 같았다. 매캐한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잠시 눈요기라도 할 겸,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바다 위에서 올라왔다는 처용암에 들렀다. 하지만, 세죽마을 바위섬 앞 선착장은 낚시꾼들이 차지했고, 처용암 뒤쪽, 외항강 맞은편에는 거대한 석유비축 탱크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낀 처용암을 보면서 신라시대, 역신을 물리치며 '처용가'(신라 향가)를 불렀다는 처용의 모습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온산국가산업단지쪽으로 계속 달렸다. 대형 공장이 즐비했고, 도로 위로 대형 관이 가로지르기도 했다. 회양강을 건너는 서생교를 지나자 풍경은 제자리를 찾았다. '대바위공원'에 들어갔더니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북쪽에는 진하 해수욕장의 모래해변이 펼쳐졌다. 남쪽에는 기암괴석들이 불쑥 솟았다. 수상모터사이클 5~6대가 물살을 가르며 튀어 올랐다. 

"저기 진하해수욕장에서는 파도가 좋아서 여름에 세계 윈드서핑 대회도 열려요. 앞쪽에 있는 섬이 명성도입니다. 물이 많이 빠지면 모세의 기적처럼 모래 길이 생깁니다. 사람들이 걸어 들어가죠. 그 안쪽에 있는 다리에서 보는 일몰이 끝내주죠."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찾은 박두석(59)씨의 말이다. 회사 동료 권태국(63)씨와 함께 온 그는 "여기서 10km정도 되는 곳에서 살고 있는데 풍경이 좋아서 자주 대바위공원에 온다"고 말했다. 도심을 통과할 때 뒤집어썼던 매연과 먼지를 씻어내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간절곶 표지석 앞에서 찍은 사진 ⓒ 김병기

울산 간절곶. ⓒ 권우성

 

울산 간절곶. ⓒ 권우성

 
휴일이어서 그런지 왕복 2차선의 해맞이로는 제법 붐볐다. 하지만 대바위공원에서 간절곶까지 3.4km, 호미곶을 오를 때처럼 고개가 많지 않았다. 대형주차장과 회센터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하늘색 지붕의 풍차였다. 몽돌해변 앞 낮은 구릉의 푸른 초원 위에서 돌고 있는 모습이 이국적이었다. 

아이들은 제주도의 넓은 풀밭에 방목한 말처럼 뛰어놀았다. 비가 흩뿌리기도 했지만 거칠 것 없는 하늘에 연을 날리면서 뒹굴었다. 간절곶 소망 우체통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높이 5m 넓이 2.4m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우체통이다. 모형이 아니라 실제 우체통처럼 편지를 걷어서 배달까지 한다.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의 아침이 온다. (艮絶旭肇早半島)

울산읍지에 기록돼 있다는 글귀가 우체통 위쪽 간절곶의 커다란 표지석에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호미곶은? 포항시와 울산시가 해돋이 시간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서 계절에 따라 해돋이 시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양이다. 1분 정도 차이지만, 이들에겐 '1등'이 누구냐가 중요했다.  

간절곶은 "먼 바다를 항해하는 어부들이 동북방이나 서남방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지형이 뾰족하고 긴 간짓대(대나무 장대)처럼 바다로 길게 뻗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간절곶 정상에 서 있는 유럽풍 레스토랑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2층 창 밖으로 내다본 넓은 풀밭 풍경은 평화로웠다. 

[달맞이공원] 걸어서 오른 열다섯 구비 고갯길

해맞이로는 도로 양쪽으로 고압 송전탑이 줄지어 선 봉대산을 넘어갔다. 월성원전을 지날 때보다 허공을 가르는 고압 전류, 거미줄은 더 촘촘했다. 해변을 독차지한 고리원자력발전소를 돌아가는 길이다. 칠암항, 동백항, 이동항을 지나면서 울산에서 부산으로 진입했고, 기장군의 대변항에 도착했다. 기장 멸치로 유명한 곳이다.   

멸치 조형물이 선 멸치광장 주변에 '멸치회집' 간판도 눈에 띄었다. 도로 맞은편 노점상들은 멸치와 오징어 등을 그물망에 널어서 말렸다. 조형물 타일에 적힌 '멸치털이 노래' 가사를 보고 웃었다. 아마도 이 고장의 멸치잡이 배에서 그물을 털면서 불렸던 노동요인 듯한데 1절 첫 구절부터 직설적이었다.
 
멸치 니가 죽어야 우리가 산다 어야디야~ / 대멸이 걸렸다 대멸이 걸렸네 어야디야~ / 멸치 잡아 어디다 쓸꼬 어야디야~ / 장가 밑천 하세 장가 밑천 하세 어야디야~

'오시리아 산책로'. 해광사 근처의 오랑대공원쪽, 부산도시공사가 조성한 걷기 코스의 길이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산책하듯이 걸었다. 해안을 따라 그리 높지 않은 절벽길 위로 바람이 불었다. 바람 부는 언덕, 탁 트인 바다뿐만 아니라 화강암 바위 끝에 세워진 용왕단과 거북바위 등 눈요깃거리도 많았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홀로 페달을 밟고 있자니 자연 풍경과 마음의 풍경이 시시각각 변하듯 길도 변했다. 해운대 달맞이공원으로 오르는 길은 험난했다. 왕복 2차선 도로 옆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달맞이길을 소개하는 시와 글귀, 안내판들을 산책로 곳곳에 설치했지만, 지친 여행자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달을 맞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여?"
"아이고~ 아이고~"


달맞이길은 해운대에서 송정까지 해안 절경을 따라 15번이나 굽어지는 고갯길로 '15곡도'(曲道)로도 불린다. 나에겐 고생길이었다. 산책로로 나무들이 치고 들어와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해발 230m 신곡산 고개를 걸어서 넘고 와우산 정상의 달맞이동산에 도착하니 날이 컴컴해졌다. 해월정에 올랐지만 구름에 가려 달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와우산 벼랑에 부딪쳐 솟구쳐 오른 바람을 맞았다. 비를 머금은 바람에선 솔향기가 진했다.   

“난 고래 잡았다”... 장생포에 남은 배는 단 한 척뿐 해안선 1만리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첫 행선지는 동해안 고성부터 부산까지. 이 영상은 12편으로 울산병영성에서 해운대달맞이공원까지 두 바퀴 인문학 여정을 담았다. 관련기사를 보시려면 “"난 고래 잡았다"... 장생포에 남은 배는 단 한 척뿐”(http://omn.kr/1w83p) 기사를 클릭하시면 된다. ⓒ 김병기

 
[내가 간 길]
울산병영성-장생포-간절곶-대변항-해운대 달맞이동산

[인문·경관 길]

장생포 : 울산 남구 매암동에 있는 고래문화특구이다. 장생포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등이 볼거리가 많으며, 바다에 나가 돌고래를 조망할 수 있는 고래바다 여행선도 있다. 

간절곶 : 울산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일원에서 돌출한 곶이다. 해돋이 명소이다. 절벽 해안 위에 넓게 펼쳐진 초원이 일품이다.  

대변항 : 부산 기장군에 있는 항구인데 멸치·장어 등의 해산물로 유명하다. 항구 주변에 횟집들이 즐비하며, 기장대변멸치축제도 개최한다. 

[사진 한 장]
간절곶 표지석

[추천, 두 바퀴 길]
오시리아 해안산책로(자전거에서 내려서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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