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5 16:30최종 업데이트 22.06.0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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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면서 강간 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

미국 미주리주 에빙 마을, 인적이 드문 도로에 설치된 대형 광고판에 세 줄 광고가 실린다. 광고를 실은 사람은 7개월 전 살인 사건으로 딸을 잃은 엄마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 "죽어가면서 강간 당"한 사람은 밀드레드의 딸 안젤라이고, 윌러비(우디 해럴슨)는 안젤라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서의 서장이다.

단 세 줄의 광고로 작은 마을은 발칵 뒤집힌다. 밀드레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은 흑인들 고문하느라 바빠서 수사할 시간도 없는 것 같다"면서 경찰의 관심을 끌려고 광고판을 세웠다고 말한다. 


문제는 윌러비 서장이 마을에서 평판이 좋은 경찰이자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췌장암 환자라는 것. 경찰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 밀드레드의 가족조차 밀드레드를 비난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것이다. 

"한 대 치면 세 대 때릴 것 같은 여자"
 

밀드레드는 7개월 전 살인 사건으로 딸을 잃은 엄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밀드레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윌러비가 밀드레드에게 "저 광고판은 도가 지나쳐요"라며 "나 암 걸렸어요"라고 말하자 밀드레드는 건조하게 답한다.   
 
밀드레드 : "알아요."
윌러비 : "네?"
밀드레드 : "마을 사람들도 다 알아요."
윌러비 : "근데도 저 광고판을 세워야겠어요?"
밀드레드 : "당신 죽은 후엔 효과 없잖아요."

"누가 한 대 치면 세 대 때릴 것 같은 여자." <비밀은 없다>를 연출한 이경미 감독은 밀드레드를 이렇게 묘사한다. 누군가는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익숙한 문구를 가져올지 모른다. 하지만 밀드레드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모성애'라는 표현은 너무 빈약하다.

정비공이 입을 것 같은 점프수트, 짧게 묶어 올린 머리, 이마에 두른 두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표정. 밀드레드는 순결하고 무해한 피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여성과 장애인에게 혐오 발언을 하고,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딸 안젤라가 죽던 날, 안젤라는 밀드레드와 크게 말다툼을 하고 집을 나갔다. 밀드레드가 딸 안젤라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그래, (집으로) 오다가 강간이나 당해라"였다. 

'무능한 경찰 vs. 정의로운 어머니'라는 익숙한 구도를 생각하며 영화를 본 사람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질문이 생긴다. 순결하거나 무해하지 않은 피해자라고 해서 그들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피해에도 자격이 있는 걸까. 영화는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악한 우리 모두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피해의 자격이 아니라 피해의 내용과 구제다. 

마을 교회 신부는 밀드레드를 찾아와 말한다. 주민 모두 당신과 안젤라의 편이지만 광고판은 모두 반대한다고. 밀드레드는 신부에게 꺼지라고 말한다. 밀드레드가 바라는 것은 이웃의 동정이나 지지가 아니라 사건 해결이다. 광고판이 세워진 후 경찰과 언론은 다시 안젤라 사건에 관심을 갖는다. 

윌러비 서장이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영화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언론은 윌러비의 죽음이 밀드레드 때문일지 모른다며 분노를 부추긴다. 그때 밀드레드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윌러비가 죽기 전 밀드레드에게 쓴 편지다. 밀드레드가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윌러비는 다음 달 광고판 임대료를 대신 내주겠다며 범인이 잡히길 기도한다고 덧붙인다.   

분노, 증오, 복수 
 

영화는 선악을 가르지도, 내 편과 적을 나누지도 않는다. ⓒ 이십세기폭스코아㈜

 
겉으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밀드레드는 사실 윌러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밀드레드가 윌러비를 옹호하는 치과의사의 손톱에 구멍을 내던 날, 윌러비는 밀드레드를 경찰서에 불러 취조한다. 서로 날선 말이 오가다 윌러비가 각혈을 하고 밀드레드 얼굴에 피가 튄다.

윌러비와 밀드레드는 둘 다 놀라서 서로를 바라본다. 윌러비는 밀드레드에게 미안하다며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말하고, 밀드레드는 알고 있다며 사람을 불러오겠다 말한다. 죽어가는 남자와 죽은 딸을 둔 여자. 분노는 사라지고 사람이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연민이 두 사람 사이에 퍼진다. 영화는 한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얼굴을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선악을 가르지도 내 편과 적을 나누지도 않는다.  

윌러비 서장의 죽음 후, 평소 윌러비 서장을 존경했던 후배 경찰 딕슨(샘 록웰)은 허리춤에 곤봉을 차고 경찰서 맞은편 광고 회사로 향한다. 광고판 때문에 윌러비가 죽었으니 광고를 실어준 놈에게 복수하려는 것이다. 구금 중인 흑인을 고문한 전력이 있는 인종차별주의자 딕슨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다. 딕슨은 광고 담당자 웰비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창문 밖으로 던져버린다. 딕슨은 해고된다.  

얼마 후, 도로를 지나던 밀드레드는 광고판이 불타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밀드레드는 소화기를 들고 광고판을 향해 돌진한다. 밀드레드는 투사, 아니 전사 같다. 불타는 광고판이 마치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밀드레드는 필사적이다(실제로 안젤라는 불에 타서 숯덩이가 된 채 발견되었다). 광고판을 불태운 "개자식"들에게 복수하겠다고 결심한 밀드레드는 깜깜한 밤 경찰서 맞은편 광고 회사로 향한다. 광고 회사에는 아무도 없다.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분노는 분노를, 증오는 증오를,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밀드레드는 경찰서에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경찰서를 향해 화염병을 던진다. 하지만 그 시각, 경찰서에서는 윌러비의 편지를 가지러 경찰서에 들른 딕슨이 이어폰을 낀 채 편지를 읽고 있다. 경찰서는 불바다가 된다. 

영국인 감독이 미국에서 촬영한 영화를 보면서 지난 3월 한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떠올랐다. 0.73%p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 지난 대선에서 영호남은 말할 것도 없고 여와 남, 2030과 60대 이상의 표심이 선명하게 나뉘었다. 이를 두고 "반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진보 언론이라 불리는 곳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자괴감을 느낀 순간 중 하나는 좌우 진영 논리를 마주할 때였다. 우리 편은 좋은 놈, 저쪽 편은 나쁜 놈, 진영 논리에는 오직 피아만 존재했다. '이것이 잘못됐다'는 비판에 어김없이 '저쪽이 더 잘못했는데 왜 우리한테만 그러냐'는 반발이 돌아왔다. 반성없는 내로남불이 반복됐다. 표가 되지 않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거악과의 싸움'이라는 대의에 밀렸고, 거대 양강 구도 속에 다양한 가치를 말하는 소수 정당은 점점 존재감을 잃어갔다.

기자를 그만둔 후 뉴스를 거의 보지 않았다. 이쪽도 싫고 저쪽도 싫었다. 마음 한편에 나 역시 진영 논리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을지 모른다는 죄의식을 안고 살았다. 지난 대선 투표 결과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 얼마나 분노와 증오가 팽배해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분노와 증오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냉소와 무관심이 남았다. 이번 6.1 지방 선거에서 절반의 국민은 아예 투표를 하지 않았다.

이쪽과 저쪽으로 나뉜 증오가 커질수록 정파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 이들의 권리는 보장받기 어렵다. 단적인 예가 차별금지법 제정 무산이다. 지난 5월, 2017년 첫 발의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차별금지법(평등법)에 대한 국회 공청회가 열렸지만 국민의힘은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차별금지법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해 달라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46일간 단식 농성을 했던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임집행위원의 지적이 뼈아프다. 그는 "우리가 목도한 것은 이 땅의 정치의 실패"라면서 "우리의 삶을 불평등과 부정의로부터 변화시킬 능력이 지금의 정치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증오로는 아무것도 해결 못해" 
 

윌러비(좌)와 딕슨(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다시 영화로 돌아가, 윌러비가 딕슨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살아서 못한 말을 해주고 싶어서. 자넨 좋은 경찰이 될 자질이 있다고 봐. 자네도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화가 너무 많아. 그렇게 증오심이 크면 자네가 꿈꾸는 자리에 올라갈 수 없어. 형사가 꿈이잖아. 형사가 되려면 뭐가 필요한지 알아? 형사가 되려면 사랑이 필요해. 사랑에서 침착함이 나오고 침착함에서 생각이 나오지. 뭔가를 알아내려면 생각이 필요해. 총도 필요 없고 증오도 필요 없어. 증오로는 아무것도 해결 못해. 침착함과 생각이 해결하지. 일단 시도라도 해봐."

불이 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딕슨은 윌러비의 말처럼 "침착하자"고 되뇌며 경찰서 밖으로 뛰쳐나온다. 땅바닥에 쓰러진 딕슨의 손에는 안젤라 사건 파일이 들려 있다. 

심각한 화상을 입고 입원한 병원에서 딕슨은 자신이 창문 밖으로 집어던졌던 웰비와 같은 병실을 쓰게 된다. 웰비를 발견한 딕슨은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딕슨의 존재를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웰비는 얼굴에 붕대를 친친 감은 딕슨에게 오렌지 주스를 건넨다. 컵에 빨대를 꽂아서. 윌러비 서장의 말이 맞다. 사랑은 힘이 세다. 분노와 증오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이다. 

병원에서 나온 딕슨은 우연히 술집에서 안젤라 사건의 용의자로 보이는 남자의 대화를 듣게 된다. 딕슨은 침착하게 생각하고 침착하게 행동해 용의자의 차 번호와 DNA를 확보해 경찰에 넘긴다. 처음으로 딕슨이 경찰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딕슨은 밀드레드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한다. 딕슨은 경찰서에 불을 지른 사람이 밀드레드라는 것을 알면서도 밀드레드를 진심으로 돕는다. 밀드레드의 얼굴에 미안함과 고마움,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딕슨은 밀드레드에게 말한다. 
 
딕슨 : "말하러 온 거예요. 희망 잃지 말라고."
밀드레드 : "나도 노력 중이야."
딕슨 : "뭐 할 수 있는 건 노력뿐이니까. 엄마도 희망보단 노력이 중요하댔죠."

선악을 가르고 분노하고 증오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쉽다. 하지만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구호가 아닌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에 대한 연민이 필요하다. 자신만이 옳다는 확신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을 바라봤을 때 밀드레드도 딕슨도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영화 초반, 광고판을 내리라는 신부에게 밀드레드는 LA 갱 이야기를 꺼낸다. 1980년대에 갱을 소탕하기 위해 만든 법이 있었는데 법의 요지는 갱단의 일원이거나 갱단과 관계가 있을 경우 내가 모르는 사이 갱의 다른 일원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내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밀드레드는 교회 성직자들도 갱과 비슷한 것 아니냐며, 그런데 신부들은 다른 성직자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모른 척한다고 말한다. 선문답처럼 들리는 이 말을 나는 한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공통의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반으로 갈라진 사회에 내 책임은 없을까? 관중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저 분노와 상관 없다'고 팔짱을 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방선거 직후, 선거에서 참패한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선거 패배 책임을 놓고 계파 간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반성과 혁신은 어디로 간 걸까. 민주당에게 윌러비의 편지를 꼭 전해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hongmilmil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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