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8 20:05최종 업데이트 22.08.0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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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그런 얘기 하면 교육부를 없애버리겠다.'

지난 6월 7일,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 방안을 두고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등 어려움을 토로하는 교육부 차관의 발언에 윤 대통령은 교육부 폐지까지 거론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한 <중앙일보> 6월 18일 자 기사는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호랑이 리더십'이라고 부르며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장점과 소통 부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있다고 진단했다¹.

그러나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군사 행동하듯 획일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고 하기는 어렵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일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당·정 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전문인력 15만 명 육성계획. 반도체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일방적 계획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적지 않다. 수도권 대학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지방 대학 소멸 위기가 심화되는 시점에서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수도권 대학 정원 증원을 허가하겠다는 것은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 지방 대학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지방 경제 생태계가 바뀔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방 대학의 반발이나 교육부 차관의 토로를 충분히 반영해서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도 교육부를 없애버리겠다는 대통령의 불호령에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안은 일사천리로 추진되었다.

소통이 아니라 호통

"국민과 소통 잘하고, 의회 지도자들과 소통 잘하고, 언론과 소통 잘하고, 내각이나 함께 일하는 참모들과 소통 잘하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


지난 2월 7일 윤석열 후보 직속의 정권교체동행위원회 유튜브에서 '어떤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당시 윤 후보는 정직한 대통령이라고 대답하며 국민과 의회, 언론, 일하는 참모들과도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인터뷰했다.

그러나 후보 때 한 소통의 약속은 취임 후 찾아보기 어렵다. 출근길에 기자들 앞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소통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대통령이 안 해본 소통 방식이라 남달라 보인 것도 있었지만 내용의 진부함, 방식의 일방성은 갈수록 실망만 안긴다. 인사 검증을 묻는 기자들에게 "전 정권 장관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라는 식의 발언은 소통보다는 호통이다.

교육을 두고 백년대계라 한다. 개인의 장래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에 의해 일방적으로 나온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학제 개편안은 백년대계를 뒤흔드는 혼란이다. 대통령 선거 과정이나 120대 국정 과제 발표 때도 언급조차 되지 않은 내용이다.

필요하다면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만 6세 입학, 6-3-3-4 학제는 오랫동안 국가 백년대계를 받쳐온 근간이다. 역사와 국민적 합의를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마주 앉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왕정이나 독재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로, 국민에게 모든 권력이 있는 민주공화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폭염에 학부모들이 거리로 나오고 국민의 반대 여론이 급등하자 교육부는 사과나 철회 대신 공론화 작업을 검토하고 있다. 앞뒤가 뒤바뀐 발상이자 여론에 밀리지 않겠다는 아집을 내보인 셈이다. 만 5세로 입학 연령을 낮추어야 하는 이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대응 방안, 어느 것 하나 분명한 것도 합리적인 것도 없다. 

이런 가운데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8일 전격 사퇴했다. 만 5세 학제 개편안 등 모든 혼란이 본인에게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교육부 장관만의 책임도 아니고, 학제 개편안 취소나 사과도 없었다. 학제 개편안 논란이 장관의 사퇴로 일단락 되었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국가공무원노조 경찰청지부, 경찰청주무관노조 조합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역 앞에서 경찰국 반대 대국민 홍보 기자 회견을 마치고 선전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22.7.27 ⓒ 이희훈

 
지난 8월 2일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이 신설됐다. 경찰들의 집단 반발, 국민 절반이 넘는 반대 여론과는 등진 결론이다. 행정안전부가 경찰을 직접 통제하면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에 '기우일 뿐'이라는 답변이 전부였다. 법적으로 경찰행정의 최고 심의·의결기관인 국가경찰위원회가 장관의 자문기구에 불과하다는 장관의 발언은 무지나 억지 둘 중 하나다.

행정안전부가 경찰을 통제하려면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시행령 개정만으로 경찰국 신설을 강행했다. 위헌 소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한 검찰 수사권 조정을 독립권 훼손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경찰의 정치적 중립은 왜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민, 의회, 언론, 내각 참모들과도 소통을 잘하겠다던 6개월 전의 약속, 아무리 되짚어 봐도 소통을 잘한 장면이 없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만5세 하향 학제 개편안. 하나같이 국민이 우려하고 반대하는 일이었다.

국민과의 소통을 넓히겠다고 수백억 혈세를 쓰며 청와대를 나왔지만, 사적 채용과 측근 인사로 얼룩진 대통령 집무실은 오히려 더 범접할 수 없는 사람 장막 구중궁궐이 되었다. 소통하는 대통령은 간데없고 호통치는 제왕적 대통령만 국민 눈에 들어온다. 측근에 둘러싸인 제왕적 대통령. 지지율 추락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시 읽는 대통령 취임사

취임 후 첫 여론조사에서 52%이던 대통령 지지율(한국갤럽이 5.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이 8월 24%로 내려앉았다.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66%에 달했다(한국갤럽이 8.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석 달 만의 일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 당시 지지율이라는 분석도 있다.

휴가를 마치고 대통령이 업무에 복귀한 날 교육부 장관이 사퇴했다. 그러나 이로써 지지율 회복의 반전이 생길 것이라 장담하기에는 이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구중궁궐의 제왕적 이미지를 벗어야 하는 대통령 자신의 변화다. 지지율 하락은 야당의 악의적 프레임 탓이라고만 여기고, 김건희 여사 등 측근들의 의혹을 덮고 검찰을 이용해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는 지지율 회복의 열쇠가 아니라 국정 동력에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것이다.

전 정부와 비교해 우위를 드러내려는 발언도 국민에게는 짜증을 안겨주는 일이다. 선거야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당선되는 상대 평가지만 지금은 윤석열 정부 국정 수행 능력이 지지율로 반영되는 집권기다. 전 정권보다 별로 나은 구석도 보이지 않는다.
 

여름휴가를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022.8.8 ⓒ 연합뉴스

 
대통령 지지율 24%는 야당의 탓도 아니고 전 정권 잘못을 끄집어내 합리화할 수도 없다. 대통령 지지율 24%는 누구 탓도 아니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을 비롯한 측근들이 만들어낸 취임 100일의 낙제 점수다.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 일부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과정에서 숱한 반대를 외면하고 구중궁궐이라며 청와대에 손가락질했던 일부 민심만을 선택했던 대통령의 고집이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한 것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경찰국 신설,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학제 개편안을 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것이 반지성주의가 아닌지도 궁금하다.

취임 100일을 앞둔 윤석열 정부의 성적표가 초라하다. 국민 회초리의 무서움을 알고 낙제점을 벗어날 혜안에 눈 떴으면 하는 게 많은 국민의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1. 중앙일보, "난 尹한테 이렇게 깨졌다"…호랑이 대통령, 그래서 주목받는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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