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9 10:55최종 업데이트 22.09.19 10:59
  • 본문듣기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편(http://omn.kr/20r93)에서 이어집니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서 건물 부문에서 직접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유럽의 각국 정부들은 건물부터 천연가스 소비를 줄일 정책들을 마련해왔다. 영국 정부는 2025년부터는 신축 건물의 경우 외기(外氣) 온도로 난방을 하는 시스템인 공기식 히트펌프 설치를 의무화했고 2035년부터는 모든 건물에 히트펌프 설치를 의무화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공기식 히트펌프는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냉동사이클 원리를 적용한 냉·난방 겸용 가능 건물 에너지 공급 시스템으로 비주거용에서 많은 보급이 이루어진 기술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영국 가정에서 수용될지는 불확실하다. 가격이 비싸고(현재 설치비 1500만 원에 보조금 750만 원. 일반보일러 대비 2~3배 가격) 겨울에 외기 온도가 영하로 내려갈 경우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며 단열이 잘 안 된 건물에서는 난방 부하가 높아 히트펌프로 감당이 안 될 수 있다.

정책의 로드맵과 달리 실제에서는 영국의 건물 에너지 효율화 개선을 위한 정책으로 진행되었던 그린 딜(Green Deal) 정책은 2년 반 만에 실효성이 떨어져 폐지되었다.

영국보다 겨울이 더 추운 한국의 경우 건물의 난방용 열에너지를 전기로 대체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특히 한국 가정의 경우 온돌이라는 바닥 복사 난방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서 히트펌프의 냉·난방 겸용 활용이 쉽지 않다.
 

천연가스를 둘러싼 악재가 겹겹이 쌓이며 올겨울 가스 대란 우려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움직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한국의 최대 가스 수입국인 호주는 수출 제한을 검토 중이다. 사진은 13일 서울 시내 주택가의 가스계량기 모습. 2022.9.13 ⓒ 연합뉴스

 
일본의 경우 가정에서 히트펌프가 설치되어 운영되는 사례가 많으나 일본은 주거 건물에서는 전통적으로 겨울 난방은 거의 하지 않으며 여름의 고온 다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했던 기후 문화적 배경이 있다. 한국의 경우 건물 난방 에너지 연료로 천연가스를 전기식 히트펌프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건물의 단열성과 기밀성을 높이고 외기 온도와 실내 온도의 차이에도 성능 계수(Coefficient Of Performance)가 떨어지지 않는 기술개발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전까지 천연가스는 건물의 주 난방 에너지 연료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건물 열에너지 수용에 대응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기술로 태양열 시스템이 있으나 에너지 수요 시간과 생산 가능 시간대의 차이, 난방용으로 쓰기에는 공급량에서 불안정한 측면, 설치 위치의 한계, 건물 미관적 측면에서 오랜 기간 수용성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주로 급탕용으로 사용하는 정도이다. 겨울이 중유럽 국가보다 더 추운 북유럽 국가들은 열에너지 공급을 위해 지역난방이나 열병합발전을 장려하며 그 연료로 가장 많이 쓰는 것은 바이오매스와 천연가스이다.

현실적으로 천연가스 기반 에너지 시스템이 효율성과 수용성이 다른 에너지 시스템에 비해 높은 것과 함께 장기적으로도 탄소중립 기술로 잠재성이 높은 면이 있다.
천연가스는 CH4로 수소 원소를 포함한 물질로 그레이 수소의 매개체로서 활용이 가능하며 궁극적으로 탄소 물질은 광물화를 통해 별도로 분리 저장할 수 있다.

이 광물화 기술은 현재에도 수산화나트륨(가성소다)과 이산화탄소(천연가스에서 개질되어 뽑은)를 반응시켜서 중탄산나트륨(베이킹 소다)을 제조하는 공법과 기술로 이미 상업화되어 있다. 천연가스 기반 연료전지 발전기기는 열병합 분산 에너지원으로 수요에 바로 대응 가능하며 현 에너지 인프라의 큰 변화없이 바로 설치 운영 가능하다. 고효율성으로 탄소배출량을 현격히 줄이면서 궁극적으로 탄소제로형(그린 수소화)으로 개선이 가능하다.

에너지 안보의 핵심은 없는 자원의 안정적 확보

기후변화 대응 정책과 제도는 지난 수십 년간 각국에서 구축이 된 것으로 지금의 러시아 유럽 간의 에너지 위기에도 크게 바뀔 가능성은 없다. 기후변화는 현실이고 국제적인 협력 토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자리까지 전진해 왔기 때문이다. 탄소배출 감축은 법적으로 의무화됐고 실행계획도 수립되고 있다.

탄소배출 감축을 단계적으로 하면서 궁극적인 탄소중립을 이루는 길에서 천연가스는 필수적 연료이다. 각국은 안정적 공급을 위한 국가들 간의 안정적 공급 사슬을 구축하기 위해 블록화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러한 천연가스 공급 사슬 블록화에 가속도를 붙인 사건일 뿐이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국제적 공동목표를 좌우파 국가들이 모두 승인하면서 이제는 누가 이 경쟁의 주도권을 잡느냐가 관건인 상황이다. 주도권을 잡기 위한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 나라에 있는 자연 자원(태양, 바람, 물 등)이 아니라 없는 자원의 안정적 확보가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유럽의 가스 공급 경색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에너지 문제로서 경제적 문제로 영향을 받게 된다. 한국도 전쟁을 대비하는 비장한 자세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다가오는 겨울철 천연가스 소비를 줄이기 위한 방안부터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패권 경쟁 시대를 준비하는 전략적 인프라 구축 계획까지 종합적인 정책 수립이 요구된다.

단기적 방안으로는 건물의 난방 에너지 부하를 줄임으로써 보일러의 가동율을 낮추는 것이 있다. 적정기술을 사용하여 큰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 국민의 참여를 유인하면서 건물의 에너지 낭비 요소를 사전에 막는 것이 있다. 건물의 에너지 성능을 개선하는 데는 단열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된다.

단열성을 높이려고 외벽에 단열재를 보강하거나 건물 외벽을 새로 공사하는 것은 투자 비용 대비 절감 효과가 매우 작다. 건물 외벽 단열 공사 개선을 통한 에너지효율화 사업은 정부가 일방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 방법이다.

이는 영국의 그린딜 정책의 실패 과정에서도 시사된 것이다. 건물 난방 부하 중 가장 취약한 곳은 창호 부위이다. 창호의 틈새에서 들어오는 차가운 외기와 유리창의 높은 열관류성이 집의 보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창틀 틈막이 제품, 유리창 단열성 강화 제품 (일명 뽁뽁이 등) 등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쉽게 구매가능하다.

취약 계층에는 지자체가 일괄구매하여 부착을 지원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에너지 빈곤층 대상 주거에 대한 에너지 바우처 사업이 이미 있어서 효과가 높은 아이템에 지원 집중도를 높이면 큰 성과가 기대된다. 공공 기관 건물이나 상업용 건물에 대한 난방 적정 온도 제한을 한시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에너지 민방위 훈련은 이미 한국에서 익숙한 것으로 시민의 정책 저항성은 유럽에 비해 낮을 것이다. 너무 쉬운 정책 수단이어서 어려운 상황이 오면 제일 먼저 활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사업의 기회를 잡고 성장하는 데 적합한 면이 있다.
 

독일 루브민에 있는 노르트스트림1 발트해 천연가스관 육상 인입·중계 시설 뒤편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가스관 운영업체는 10일 동안 공급이 중단된 러시아산 가스가 이날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2022.07.21 ⓒ 연합뉴스

 
이번 겨울이 지난 이후 중장기적으로는 건물의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리모델링 사업에 정부가 제도를 마련하고 지자체가 실행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영국의 그린딜 정책 실패의 교훈을 연구하여 민간 건축물 대상 그린 리모델링 사업에 효과적인 정책 방안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정부의 그린 리모델링 사업과 서울시의 건물 탄소배출량 종량제 등이 있으므로 더 세밀히 다듬어서 정책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방안들은 대부분 천연가스 자원을 갖고 있지 못한 국가로서 가스 소비를 줄이는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대범한 방안은 천연가스의 안정적 공급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해외 천연 가스전을 개발하거나 구매 확보하는 것도 있으나 바다를 건너서 배로 운반하기보다는 파이프라인으로 운반하는 가스가 더 저비용에 안정성이 높다.

러시아로부터 파이프라인 가스를 북한을 통과하여 삼척 LNG기지로 운반하는 구상은 노무현 정부 때도 있었고 현재 강원발전연구원에서도 제안을 한 바 있다. 에너지 안보와 국제 정치적 동맹국들과의 관계 정의가 새롭게 이루어져야 할 문제여서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산림 복원에 성공한 한국, 바이오매스 활용한다면?

이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방안은 한국 내의 나무 자원을 활용한 난방 에너지원과 수소 추출 방안이다. 유럽의 경우 바이오매스에 의한 열과 전력 공급이 10%를 넘어가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산의 면적이 63%나 되고 그곳에 많은 나무를 심어 놨다. 한때 민둥산이 대부분이었지만 전후 산림 복원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이며 산림 비율이 세계 4위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및 세계 주요 20개국(G20) 중에서 임목축적 증가율이 1위이다(산림청 발표).

산림 자원의 잠재성에 비해 활용하는 사업 분야는 아직 초기 수준이다. 육지의 바람 자원은 미약하나 바이오매스 자원은 세계적 수준인데 친환경 에너지 분야의 정책 관점은 유럽의 것을 추종만 했다. 지금은 대범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정리하면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재생에너지 위주의 에너지 전환 정책 수행 과정 중에 실제로는 천연가스의 의존성이 높아졌으며 그 공급원이 러시아에 편중되어 스스로 에너지 안보 측면에 취약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의 도덕적 법률적 옳고 그름과 별개로 에너지 문제를 함께 연계한 유럽 각국들은 스스로 만든 문제에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그 해법은 단기적으로 찾기 어렵다.

기후변화 대응 탄소중립 정책 목표는 국제적 약속이다. 이를 이행하는 데에 현재의 에너지 문제가 일관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은 작다. 한국은 기후와 주거 건물의 특성으로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성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현재의 에너지 위기는 천연가스 수급 문제로 단기에 해결될 것은 아니며 공급 사슬 기반 국제 블록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를 함께 모색해야 한다. 건물 부문의 탄소배출 감축과 천연가스 수급 문제를 연계하는 전략은 향후 사업적 기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 필자 소개: 김재민 박사는 제로탄소 에너지 컨설팅 전문기업 ㈜이젠파트너스 대표, 기초지자체 탄소중립 지원 사업을 하는 비영리 법인인 ㈔지역경제녹색얼라이언스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1998년부터 2020년까지 영국 스트라스클라이드대학(University of Strathclyde)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하였고 한국 해양대학 초빙 교수를 역임하였다. ICT를 활용한 건물 및 도시의 에너지 시뮬레이션 및 모델링 분야를 연구하였다.

사회의 탄소중립 구현에 보다 현실적인 접근을 하는 것을 선호하고 시장 기반의 지속가능한 친환경 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탄소중립 에너지 교육과 컨설팅 사업에 집중하고 있고 마을 단위에서 시민을 탄소중립매니저로 양성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협업할 전문기업과 시군구의 주무관들과 접촉을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로컬에서의 성공이 글로벌 성공이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