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3 13:45최종 업데이트 22.09.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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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기 교육정책의 방향을 정할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가 이달 27일 지각 출범하게 된다. 출범을 앞둔 22일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에는 현판이 제작 되고 막바지 사무실 설치 작업이 한창이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출범하는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에 이배용 전 국정교과서 편찬심의회 부위원장을 임명했다. 박근혜 정권 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참여한 인물을 국가 백년대계를 책임질 장관급 자리에 앉힌 것이다.

1947년생으로 올해 75세인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은 이화여대 사학과 학·석사와 서강대 박사를 거쳐 이대 사학과 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 3월 24일 그를 특별고문으로 임명했고 7월 25일에는 청와대관리활용자문단장으로 임명했다. 이번에는 국가교육위원장에 임명했으니, 이배용 위원장에 대한 신임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교육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가교육위원회법) 제2조 제1항은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교육 비전, 중장기 정책 방향 및 교육제도 개선 등에 관한 국민의견 수렴·조정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으로 국가교육위원회를 둔다"고 규정했다.

중장기 교육정책에 관한 업무라고 했다. 말 그대로 국가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기관인 것이다. 이배용 위원장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가 그런 소임을 맡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제 부역한 인물 치켜세운 역사학자
   
이배용 위원장은 2008년 <한국사 시민강좌>에 실린 '김활란, 여성교육·여성활동에 새 지평을 열다'라는 논문에서 친일파 김활란을 지나치게 미화했다. 이 위원장은 김활란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국민총력조선연맹·임전대책협의회·흥아보국단·조선보국단 등에 참여해 일제 침략전쟁을 돕고 조선청년단에 가담해 한국 청년들을 대일본제국 전사로 만든 사실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부분에 대한 언급 없이 김활란의 일제강점기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논문에서 이 위원장은 "민족교육의 실행과 한국 여성의 인간화라는 소명 의식"이 있었다는 말로 김활란을 칭송했다.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부역한 인물을 '민족교육의 실행자'로 치켜세운 것이다.

논문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법통과 정통성이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에 있다는 현행 헌법 전문과 배치되는 의식도 드러냈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됐다는 서술을 두드러지게 강조했다.

대한민국이 1919년에 출발했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1919년부터 한반도를 실효적으로 이끌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1919년에 있다는 헌법 전문의 선언은 일제 식민지배를 불법·무효화하는 동시에 친일파들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데 유용하다.

어느 나라든 독립을 선포한 시점과 실제로 독립한 시점 사이에 시간 간격이 있기 마련이다. 그 중간에 독립을 방해한 세력을 처벌하려면 독립을 선포한 시점부터 국가 주권이 있었다고 법적으로 의제할 수밖에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적으로 이렇게 처리하지 않는 건국 세력을 찾기 힘들다.

1945년 이전에도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 형태로 존재했다고 법적으로 간주해야만, 대한민국 주권을 무시하고 활동한 조선총독부와 친일파들을 불법화하기가 법률적으로 용이해진다. 1948년 건국을 강조하면 식민지배 청산에 난점이 생긴다는 점을 모를 리 없는 역사학자가 굳이 그렇게 서술했던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의 실태
 

2015년 10월 12일 당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올바른 교과서'라고 표현을 바꿔 행정예고를 발표하고 있다. 가장 왼쪽이 이배용 편찬심의회 부위원장. ⓒ 이희훈


이배용 위원장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가 편찬심의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의 실태를 들여다보면, 여기 연루된 인물이 미래세대의 교육을 책임지는 것이 과연 안전한가 하는 우려를 품게 된다.

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단순히 과거사를 왜곡하거나 미화하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역사교과서에 어떤 내용을 담으려 했는가는 차치하고, 어떤 방식으로 교과서를 개조하려 했는가를 보면 국정화 추진 세력이 국가교육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가 2018년에 펴낸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이 조직한 국정화 비밀 테스크포스(TF)팀은 학부모들을 진보와 보수로 가르고 보수 성향 학부모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비밀 TF팀이 당정청 회의자료로 작성한 2015년 10월 26일자 '올바른 역사교과서 추진 상황 및 향후 대책' 문건에 이런 부분이 있다.
 
"(보수단체 집단행동) 대회 현장에서 교과서 정책에 지지하는 보수 학부모 단체를 통한 대응, 집단행동 추진"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에 소개된 문건. ⓒ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교과서 집필에 관여하는 사람들도 크게 보면 교육자다. 그런 사람들이 학부모들을 진보와 보수로 가르고 어느 한 편을 이용했다는 것은 교육 관련자의 기본 자질을 의심케 하는 문제다.

위 문건은 거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국정화에 찬성하지 않은 '난국'을 타개하려는 의도에서 작성됐다. 그런 '난국'을 타개하고자 보수 학부모들을 동원하려 했던 것이다. 2015년 10월 30일부터 이틀간으로 예정된 전국역사학대회에서 국정화 반대 성명이 발표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정화 추진 세력은 보수 학부모들을 내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학술대회를 훼방하고자 민간단체를 내세우는 맞불집회까지 기획했다. 백서는 "전국역사학대회 당일 오전 서울대 정문 앞에서 어버이연합, 고엽제전우회,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은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학계를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라며 이들이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리는 전국역사학대회장에 난입"했고 "욕설을 했다"고 설명한다. 동원된 단체 회원들이 역사학자들을 상대로 몸싸움까지 벌였다고 백서는 말한다.

국정화 추진 세력이 벌인 과오
 

2012년 11월 19일 당시 이배용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의장이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또한, 백서에 따르면 2015년 9월 30일 작성된 '여론조사 실시 계획(안)'에는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확정 발표를 앞두고 발행체제 개선에 대한 우호적 여론 조성 및 공감대 형성을 위한 여론조사 실시 필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국민 여론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호적 여론 조성"을 하기 위해서 여론조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여론 조작 의도를 의심케 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국정화에 참여하는 집필진을 비판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댓글을 경찰청에 제보하기도 했다. 백서는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 관련 온라인 동향(SNS상 집필진 관련 비판 내용)을 수합하여 2~3일 간격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찰청에 송부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힌다.

이 같은 실상은 국정화 추진 세력이 역사교과서에 담고자 했던 내용 못지않게 그들이 국정화를 추진한 방식 자체에도 심각한 결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불법이 자행됐다. 그런 자세로 역사교과서를 개조하려 했기 때문에 그들의 계획이 틀어진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정화 추진 세력의 일원인 이배용 위원장이 보수 학부모들을 직접 섭외하고 경찰청에 동향을 직접 제공하는 일까지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불법적으로 진행된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이배용 위원장이 비중 있게 참여했다. 편찬심의회 부위원장으로 가담했으니 국정화 추진 세력이 벌인 과오에 대해 그 역시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배용을 국가교육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윤석열 정권하의 학교 역사교육은 물론이고 학교 교육 자체를 어둡게 전망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친일파 김활란을 미화하고 대한민국 법통과 정통성에 개의치 않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참여한 인물에게 국가 백년대계를 맡기는 것이 과연 이치에 맞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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