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7 15:27최종 업데이트 22.10.0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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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 오리지널 탭7 ⓒ 윤한샘

   
"포도를 구경할 수 없는 토이토니아의 인간들은 보리죽이나 마신다면서, 보리죽 따위가 그리도 좋더냐."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는 야만족이 마시는 맥주를 보리죽으로 조롱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가 쓴 <게르마니아>에서도 맥주는 게르만족의 보리 발효주 따위로 묘사된다. 그리스 로마시대 와인은 신이 하사한 고매한 술이었던 반면 맥주는 가축이나 노예 그리고 야만인을 위한 음료였다.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은 보리죽이나 마시던 게르만족에게 멸망한다. 이 혼란한 시기 민중에게 영양분을 보충해주고 그들의 갈증을 해소시킨 건 와인이 아닌 맥주였다. 성별, 나이, 계급에 상관없이 맥주를 마실 수 있었으며 누구나 맥주를 만들 수 있었다.

17세기 독일 바이에른 공국, 와인과 달리 누구에게나 평등했던 맥주 세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불경하게도 맥주에 계급이 생긴 것이다. 특권층만 향유할 수 있었던 이 맥주는 당시 어떤 맥주보다 밝았으며 부드러웠고 멋진 향을 지니고 있었다. 양조권(Weissbierregal)이 있어야 만들 수 있었고 귀족과 상류층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맥주, 주인공은 바로 바이에른 밀맥주 바이스비어(weissbier)였다.

밀맥주, 귀족 맥주가 되다
 

뮌헨 슈나이더 바이세 브로이하우스 ⓒ 윤한샘

   
밀은 맥주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핵심 재료였다. 독일 전역은 물론 남부 바이에른에서도 밀맥주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1516년 바이에른 영주 빌헬름 4세가 보리, 물, 홉으로만 맥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맥주 순수령'을 제정할 때도 밀은 예외였다. 심지어 1548년 데겐베르거 가문이 가업으로 삼기 위해 밀 맥주 독점권을 요구했을 때, 큰 대가 없이 이를 허가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데겐베르거 밀 맥주의 인기가 높아지고 큰 수익을 얻으면서 상황이 변했다. 빌헬름 4세의 뒤를 이어 바이에른 영주가 된 알브레히트 5세는 데겐베르거 가문의 한스 지그문트가 후세 없이 사망하자 밀맥주 양조권을 되찾은 뒤 독점했다. 

알브레히트 5세의 뒤를 이은 빌헬름 5세는 유난히 맥주를 사랑했다. 그는 1589년 호프브로이 하우스를 세워 맥주의 맛과 품질을 높였고 바이에른 맥주에 정체성을 부여했다.

그의 아들인 막시밀리언 1세는 한술 더 떠 1607년 켈하임에 밀맥주만 양조하는 바이스 브로이하우스(weisses bräuhaus)를 건설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밀맥주는 높은 가격으로 상류층들에게 판매되었고 이 돈으로 바이에른 공국은 30년 전쟁을 버틸 수 있었다. 허나 일반 민중들은 밀맥주를 만들 수도 없었고 마실 기회도 갖지 못했다. 

밀로 인해 상대적으로 밝은색을 띠는 밀맥주는 바이스비어(weissbier), 즉 화이트 비어(white beer)로 불렸다. 풍성한 거품, 섬세한 과일 향 그리고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바이스비어는 어두운색을 가진 당시 맥주와 확연히 구분되었을 것이다.

당시 독일의 펍인 가스트호프는 돈만 있으면 계급에 상관없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 밝은색 밀맥주를 마시기 위해서는 돈이 아닌 계급이 필요했다. 분명 귀족들은 이를 통해 신분적 우위를 즐겼을 것이다. 맥주에 계급이 생기다니, 확실히 맥주 세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었다.

바이스비어의 몰락과 슈나이더 바이세의 탄생
 

게오르그 슈나이더 1세 ⓒ 슈나이더 바이세 홈페이지

 
19세기는 많은 맥주에 시련의 시기였다. 단 한 맥주, 라거만 제외였다. 기세등등했던 바이스비어도 라거의 습격에 힘을 잃기 시작했다. 공국에서 왕국이 된 바이에른도 마찬가지였다.

호프브로이 하우스는 라거를 양조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반면 바이스 브로이하우스의 수익은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이스비어로 돈을 벌지 못하자 바이에른 황제 루트비히 2세는 밀 맥주를 더 이상 만들지 않기로 결정한다. 한때 귀족의 맥주였던 바이스비어가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여전히 바이스비어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 게오르그 슈나이더였다. 그는 1855년 거의 수명을 다한 왕실의 바이스 브로이하우스를 임대 운영하며 기본기를 닦았다. 그리고 1872년 루트비히 2세로부터 밀 맥주 양조권을 양도받자 뮌헨의 마데브로이(Maderbräu)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바이스비어 양조에 돌입한다.

17세기 이후 바이스비어를 만든 첫 평민인 게오르그 슈나이더에 의해 귀족 맥주였던 밀맥주가 다시 민중의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슈나이더는 마데브로이를 슈나이더 바이세(Schneider weisse)로 이름을 바꾼 후 자신의 오리지널 레시피로 만든 첫 맥주를 출시한다. 바로 이 맥주가 지금 모든 바이스비어의 뿌리이자 기준이다. 
     
야심 차게 바이스비어 양조장을 시작했지만 세상은 라거의 것이 되고 있었다. 특히 바이에른은 라거 혁명의 핵심 지역이었다. 호프브로이 하우스는 물론 슈파텐, 파울라너, 프란치스카너 등 내놓으라 하는 양조장들이 앞다투어 좋은 라거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런 라거의 거친 파고에도 슈나이더 바이세는 빛을 잃지 않았다. 1907년 높은 도수의 바이스비어인 아벤티누스를 출시했고 꾸준히 성장하며 1928년에는 켈하임으로 확장하기도 했다. 이 지역은 400년 전 막시밀리언 1시가 바이스 브로이하우스를 설립했던 곳으로 켈하임 양조장은 1922년 세계 대전 중 뮌헨 양조장이 파괴되자 슈나이더 바이세의 메인 양조장이 된다. 파괴됐던 뮌헨 양조장은 복원을 거쳐 현재 뮌헨에서 가장 유명한 슈나이더 바이세 전용 펍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곳은 뮌헨 시청이 있는 마리엔 플라츠에서 동쪽으로 가면 볼 수 있다. 슈나이더 바이세의 모든 맥주와 바이에른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이스비어 스페셜리스트'답게 밀맥주만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전통에서 혁신을 찾는 민중 밀맥주
 

뮌헨에서 마신 탭7 ⓒ 윤한샘


슈나이더 바이세 맥주는 스타일에 따라 숫자를 가지고 있는데 그 수가 10개가 넘어간다. 예를 들어 바이스비어의 원조인 마인 오리지널은 7을 갖고 있다. 보통 탭(Tap)을 숫자 앞에 붙여 이름대신 탭7이라고 부른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바이스비어 아벤티누스는 탭6이며 미국 크래프트 양조장인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협업해서 만든 호펜 바이세는 탭5다. 무알콜 바이스비어에는 탭3가 달려있다. 탭10은 탭X라고 되어 있는데 10의 로마자 표기와 가장 실험적(experimental)인 바이스비어라는 의미에서 'X'를 붙였다.

다양한 스타일이 유혹하더라도 가장 우선적으로 마셔야 할 맥주는 탭7이다. 여전히 1872년 레시피로 양조되며 마인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처럼 라벨에 '오리지널'이 붙는 몇 안 되는 맥주다. 색이 밝아 바이스비어로 불렸지만 사실 이 맥주는 꽤 어두운 갈색을 띠고 있다. 19세기 이전 만해도 이런 갈색조차 밝은색으로 여겨졌다. 탭7은 반드시 바이스비어 전용 잔으로 즐겨야 한다. 위는 볼록하고 아래는 잘록한 이 기다란 잔과 함께해야만 바이스비어의 모든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빛이 살짝 투과되는 탁한 투명도는 필터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잔의 볼록한 부분을 꽉 채우는 풍성한 거품은 밀의 단백질에서 나왔고 폭발적인 탄산은 병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잔을 들어 맥주를 입에 대면 거품이 사라짐과 동시에 우아하고 신선한 바나나와 정향의 아로마가 비강을 꽉 채운다. 이 아로마는 바이스비어의 영혼으로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여기에 낮은 쓴맛과 부드러운 질감이 더해져 이 맥주를 마시는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140년 넘게 다양한 바이스비어를 내놓고 있는 슈나이더 바이세가 바꾸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오픈 발효 방식이다. 대부분 양조장은 밀폐된 발효조를 이용해 맥주를 만드는 반면 슈나이더 바이세는 독일 전통 방식 그대로 오픈된 통에서 발효를 진행하고 있다. 이 방법은 오랜 기술적 노하우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발효 시 발생되는 거품을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제거해야 하며 불필요한 미생물이 관여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더 험난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오픈 발효를 고수하는 이유는 '오리지널'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함이다. 왕이 되고 싶은 자가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듯 전통의 무게를 견디고 이어가는 것은 바이스비어의 수호자가 짊어져야 할 운명과 같다. 아마 이는 게오르그 슈나이더가 바이스비어를 귀족에서 민중에게 돌려줄 때부터 따라온 훈장과 같은 것일 테다. 어쩌면 마인 오리지널 한 잔은 우리에게 전통과 혁신 방정식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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