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3 11:47최종 업데이트 22.10.1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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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으로부터 부천국제만화축제 수상작인 '윤석열차' 관련한 질의를 받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언제나 그렇듯 사건은 항상 별것 아닌 사소한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고등학생이 그린 '윤석열차'라는 카툰 한 점이 불러온 소동이 잠잠해질 법도 한데 이제 소동을 넘어 국민적 공분으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우리가 지난 정권들이 마주한 운명에서 보아왔듯이 제어를 잃은 일부 사건들은 '사태'가 되고 어떤 사태들은 정치적 지형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는 점에서 카툰 '윤석열차'라는 사건은 흥미롭다.

'윤석열차'는 지난 7월과 8월에 걸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카툰 부문 금상을 수상했고 그런 이유로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개최된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전시되었다. '윤석열차'는 고등학생이 카툰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정권을 풍자한 점, 그리고 그러한 작품이 입상까지 한 점이 주목받아 잠시 화제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평화로운 대한민국에서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였다.

문체부는 왜 '윤석열차'에 급발진했나
 

문화체육관광부가 '윤석열차'에 대해 지난 4일 두 차례에 걸쳐 낸 보도자료. ⓒ 문화체육관광부


일이 잘못되어 꼬이기 시작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지난 4일 '윤석열차'에 금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을 경고조치한다는 등의 나름 근엄·진지한(물론 대부분 국민들에게는 황당한) 언론해명자료를 내면서부터다.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는 일부 중대한 사안 외에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이 하루에 두 차례나 언론보도에 관한 보도자료(해명자료)를 배포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작은 소동으로 여겨졌었던 '윤석열차'에 관한 보도자료가 같은 날 두 차례나 급하게 배포되었다.


보도자료들이 급하게 작성된 만큼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최초 오후 1시 30분경에 작성된 보도자료의 제목은 무려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행사 취지에 어긋나게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선정·전시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히 경고하며, 신속히 관련 조치를 하겠습니다"이다.

그리고 같은 날 밤 9시 30분경 작성된 두 번째 보도자료의 제목은 "문체부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승인사항을 위반했음을 확인했고, 이에 따른 엄격한 책임을 묻겠습니다"이다.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제목이 긴 보도자료' 항목이 있다면 등재될 법한 이상하리만큼 긴 제목들이다.

보도자료 제목이 이렇게 해괴하게 된 이유는 보도자료 제목 자체가 누군가에게 문제의 처리를 '보고하는 형식'의 문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의 언론보도 해명자료는 '○○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 설명드립니다' 또는 '○○ 관련 문화체육관광부의 입장'과 같은 간결한 제목을 사용한다. 이런 제목 형식이 갑자기 바뀌기 시작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첫 해명자료인 7월 22일자 보도자료부터다.

단지 제목만 수상한 것은 아니다. 첫 보도자료 내용은 문체부 후원 명칭을 사용한 행사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승인 사항 취소를 고지했기 때문에 신속한 조치를 취하겠다는게 전부다.

언론보도에 대한 해명 보도자료인데도 문제가 되었던 '윤석열차'의 작품 제목이나 문제가 된 언론보도에 대한 언급이 없다. 또 정부 기관들은 대개 조치에 대한 검토를 한 뒤 사실관계와 조치에 대한 예고를 보도자료로 내기 마련인데 왜 행정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보도자료를 '누구' 보라고 성급하게 냈는지 의뭉스럽다.

늦은 밤 배포된 두 번째 보도자료는 처음 나갔던 내용 없는 보도자료를 보완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최초 제출한 공모전 개최 계획에 '정치적 의도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작품'은 결격 사항으로 정했는데 실제 공모 요강에서는 이를 누락했으며 심사위원들에게 공지되지 않았다는 것을 찾아 확인했다는 것이다.

사건의 소관 부서인 문체부 콘텐츠정책국·대중문화산업과·홍보담당관실은 야근을 무릅쓰고 첫 보도자료의 약속대로 공모전 심사기준과 선정과정을 엄정하게 살펴보고 신속한 조치를 한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그리 급해서 그 늦은 밤에 누구 보라고 보도자료를 냈는지는 역시 의뭉스러울 따름이다.

윤석열 정부 스스로 소동에서 사태로 키워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를 비롯한 문화연대, 한국민예총, 우리만화연대 등 문화예술계, 시민사회 단체 관계자들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가 한 고등학생이 정권을 풍자해 그린 ‘윤석열차’에 대해 경고 조치한 것에 항의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 유성호

 
문체부의 이런 과잉 충성과 급발진은 안타깝게도 역효과만 톡톡히 불러내고 있다. 문체부가 '윤석열차'에 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경고'한 것이 언론에 오르내리자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차' 관련 조치들이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튿날인 7일에는 대표적인 만화 관련 단체인 ㈔우리만화연대, ㈔웹툰협회, ㈔한국카툰협회, ㈔한국웹툰산업협회, ㈔한국출판만화가협회, ㈔한국만화웹툰학회, 지역만화웹툰협단체 대표자 모임이 '만화공모전 수상 학생과 기관에 가해진 부당한 압력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11일에는 무려 문화연대·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한국민예총 등 257개 단체와 시민 1310명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 부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윤석열차' 관련 예술 검열을 규탄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실상 문화예술계 전반이 문체부 조치에 대해 들고 일어난 셈이다.

일이 이 정도쯤 되니 문체부가 윤석열 정부의 지능적인 안티가 아닌지 의심마저 드는 상황이다. 또 여론이 완전히 돌아선 상황에서도 문체부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공모전에 대한 후원 및 '윤석열차'의 수상 취소를 실제로 이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5월 출범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집무실 이전과 신축에서 시작해 대통령실 리모델링 관련 수의계약 비리 의혹과 대통령실 직원 사적 채용 의혹, 교육부의 만 5세 초등입학 추진과 철회, 윤 대통령의 미국 순방 도중 불거졌던 비속어 사용 논란까지 연이어 터졌다.

그 결과 모든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2개월 차 이후 20~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했던 시기의 지지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실 카툰 '윤석열차'가 불러온 문체부의 예술검열 사태는 현재 '신경쇠약 직전'인 윤석열 정부 상태의 방증이다. 그리고 문화·예술을 통제하려고 했던 모든 정부의 말로가 비참했던 것을 돌이켜본다면 앞으로 벌어지게 될 사건들의 불길한 징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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