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15 13:37최종 업데이트 22.12.1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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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본부 이봉주 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화물연대본부 농성장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2022.12.12 ⓒ 연합뉴스

  
지난 12일, 이봉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이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파업을 종료했음에도 정부·국민의힘이 기존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 약속마저 파기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아마 그는 단식 외에 별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절박함과 적대감

난 단식이라는 방법이 지독하게 싫다. 투쟁한다는 사람이, 거대한 무언가와 싸운다는 사람이 천천히 기력이 고갈되어가는 무력해지는 날들을 겪어야하기 때문이다. 그걸 잊으라며 무관심을 조장하는 세상과 정말로 소름끼치게 무관심해 지는 사람들, 잊히는 싸움. 후퇴하는 전선. 한 동안, 아니 어쩌면 영영 다시 싸울 엄두가 안 나게 망가져버리는 몸. 그도 앞으로 펼쳐질 일 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절박했겠지.


아마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보고 이 때다 싶었을 것이다. 지난 10월 15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책임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피할까 골머리를 앓던 차에 화물연대 총파업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이태원 참사 수습한다던 중앙재난안전본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두고 코로나19 같은 '사회적 재난'이라며 참사 수습 대신 화물연대 파업 대응에 매달렸다.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국토교통부장관이 파업이 전 국가적 재난이라며 누런 민방위 재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서 브리핑을 하는 모습은 아무리 다시 봐도 이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조와 파업에 대한 적대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불법이니 폭력이니 하는 말은 예사고 "법치주의에 대한 위협",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 등 파업이 무슨 나라 망할 테러나 전쟁 같은 재앙이라도 되는 듯 대했다. 지지율 20~30% 짜리 대통령이라 파업이라도 잘 때려잡는다는 칭찬이 절실했던 걸까?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 관련해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에 나섰다. 2022.11.29 ⓒ 대통령실 제공

 
아니면 역시 경제가 문제였을까. 수출 저하와 고금리로 유동성이 쪼그라들고 부동산 시장마저 얼어붙은 마당에 시멘트·자재·연료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기업들이 생산을 못하고 건설사가 건물을 못 지어 위태로워지고, 기업들이 위태로워지면 이내 국가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노동자들 파업 앞에서 이놈의 나라 경제는 도무지 괜찮았던 적이 없다. 이 나라 경제의 안전을 위해서 화물 노동자들은 생명을 담보하고 위태로운 운전을 해도 괜찮은 걸까. 

화물연대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곡물사료 화물 노동자들은 하루 14시간 꼬박 1000km씩을 달려 주 92시간, 월 366시간을 일하면 400만원 남짓을 손에 쥔다. 과로로 얼룩진 하루 일상의 시급이 1만 2천원이 못된다. 화물연대는 정부가 말하는 귀족 노조도 아니고, 이번 파업은 이기적으로 운임을 올려달라는 요구도 아니었다. 현행 안전운임제를 지속하고 적용 화물을 확대해 과로·과적·과속을 줄이면서도 최소한의 적정 운임을 보장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런 삶을 사는 노동자들은 자기가 돌봐야할 국민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화물연대는 지난 9일 조합원 투표로 총파업 종료를 결정했다. 투표 참여 조합원 중 파업 종료 '찬성' 조합원은 약 61%였다. 파업 기간 정부의 프레임 씌우기와 업무개시명령 등 탄압 속에도 16일간 파업을 유지했지만 안전운임제 일몰기한을 앞두고 안전운임제 확대 없이 3년 연장하는 정부안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조합원들의 마음이 기울었던 듯하다.

판 뒤집은 정부

그런데 종료된 파업을 두고 정부는 한 번 결렬된 제안은 무효라며 아예 판을 뒤집었다. 뿐만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의 화물연대 조사를 지속하고 파업에 따른 기업들의 손해배상 소송도 지원한다고 약속했다. 징벌의 시간을 예고한 셈이다. 일부 운송사들은 파업을 종료한 화물 노동자에게 화물연대를 탈퇴해야 일감을 주겠다며 부당노동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정부가 나서서 공공연하게 노동자들을 적대시 하니 기업들도 최소한의 선을 지키지 않는다. 이제 강호의 도의가 사라졌다지만 중립적이고 공정해야할 정부가 먼저 나서서 불한당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관계부처 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화물연대 파업 관련해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 추가 업무개시명령 발동’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기자들과 일문일답 중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추경호 부총리에게 귀엣말을 전하고 있다. 2022.12.8 ⓒ 권우성

 
화물연대 파업 종료 조합원 투표가 있었던 12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 경제5단체장과 비공개 만찬을 가졌다. 당선 직후인 3월에 회동을 하고 9개월 만에 다시 만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경제단체장들은 화물연대 파업 종료를 이끈 정부 대처에 감사를 표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중대재해법 완화와 3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주 8시간 특별연장근로제 일몰 연장에 정부도 힘을 보태겠다며 호응했다고 한다.

파업을 종료하면 대화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화물연대가 아닌 애먼 곳에서 화기애애하게 지켜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에게 가난하고 힘없는 화물 노동자들은 애초에 대화 상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정한 청와대 상춘재와 국회 앞 천막농성장, 정갈했을 만찬과 야윈 이봉주 위원장의 얼굴은 2022년 12월 우리가 마주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제 안전운임제 일몰까지 보름 남짓. 날카로운 겨울바람이 살을 쥐어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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