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2 11:38최종 업데이트 22.12.2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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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친구들 소식보다는 "OO한 가수가 OO하면 벌어지는 일" 이나 "XX한 배우가 XX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같은 제목의 광고 게시물이 더 많이 보인다. 정체는 연예 가십이나 소위 '썰'이라고 불리는 사연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들의 게시글이고,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광고의 일종이기도 하다.

자극적인 섬네일이나 제목에 낚여 클릭해보면 여지없이 나타나는 메시지는 '쿠팡 방문하고 계속보기'다. 쿠팡이 2018년부터 실행하고 있는 쿠팡 파트너스 마케팅이다.


쿠팡 파트너스는 쿠팡의 파트너라고 불리는 게시자가 쿠팡 상품 구매 링크를 온라인에 공유하고, 이 링크를 통해 실제 구매가 발생하면 매출액의 평균 3%를 정산받는 마케팅 프로그램이다. (쿠팡의 대부분의 사업모델이 그러하듯) 아마존의 '어필리에이트'를 벤치마킹한 마케팅이다.

포털에서 쿠팡 파트너스를 검색하면 꽤 짭짤한 부업으로 소개하는 글이 많다. 실제로 적게는 한 달에 수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짭짤한' 돈벌이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이 짭짤한 부업에 뛰어들었고 어쩌다가는 이 '낚시'를 '조직화'되고 '기업화'된 사업 모델로 구현하는 이들도 나타난다.

미들 미디어라고 불리는

문제는 이런 미들 미디어의 넓은 (실은 모호한) 개념은 아무것이나 갖다 붙이기 너무 용이하다는 데 있다. 미디어의 존재 의의가 가치있는 정보와 논의라고 한다면 '무엇이 가치있는 정보인지'를 따지는 것은 독자의 영역이다.

어떤 명문화 된 규정으로 가치의 유무를 따질 수는 없는 일. 어떤 정보가 가치 있고, 어떤 정보는 정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혐오의 언어고, 어떤 기사는 기사로서 의미 있고, 어떤 기사는 단지 광고이거나 거짓일 뿐이라고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다.

미디어 규정의 틈새, 가치 있는 정보라는 판단의 경계를 독자 개인이 혹은 매체가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어떤 기사는 가치 있는 정보나 시각이고, 어떤 매체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섭스레기를 양산하는 곳이 된다. 

앞서 얘기했던 쿠팡 파트너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뉴진스가 아이브보다 매력적인 이유"라는 (나로서는 돼먹지 않은) 제목을 지어서 (나로서는 정말 돼먹지 않은 문장으로) 관심을 끌지만 이걸 'SNS에 떠도는 파편적인 정보를 취합해 새로운 가치의 정보 값을 창출해 낸 미들 미디어'라고 부른다면 딱히 반박할 말도 없는 것이다. 도식적으로 보자면 그렇다.

중간 어디쯤이라는 모호한 개념, '가치'라는 더 건드리기 어려운 관념을 무기 삼아 마구마구 쓰레기를 뿌리며 돈을 벌고 있으면서 미디어를 자처하는 일에 대해 우리는 "당신은 미디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모호한 미디어의 개념이 사회에 스며들게 되었을 때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것은 독자로 하여금 어떤 허섭스레기를 가치 있는 정보라고 '여기게 하거나' 불편하지만 실체에 가까운 진실을 허섭스레기로 '여기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 ⓒ pixabay

 
그래서 이쯤에서 늘 나오는 말이 '미디어 리터러시'다. 미디어를 수용하는 일엔 언제나 걸러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때로는 수긍하고 때로는 맞서 대적해야 할 순간이 있다. 그 모든 것은 언제나 매 순간, 모든 장면에서, 모든 글자에서 이뤄진다. 어떤 특정 매체에만, 어느 기자에게만, 어떤 소재와 뉴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판단하고 익히고 확인하는 개인의 주체적 역량, 그것을 우리는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키우는 일이란, 뉴진스와 아이브 중에 누가 더 예쁜지를 궁금히 여기게 하면서 클릭을 유도하는 일을 두고 '누구는 궁금해할 정보일 수도 있잖아'에서 사유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외모를 절대 기준으로 여성 아이돌을 대상화하는 일'임을 인식하는 일이다.

어떤 음모론이 정말 합리적 의심인지,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체가 있는지, 다소 불편한 사실도 진실로서 이해할 수 있는지, 이 같은 음모론이 발생하고 있는 연유와 맥락은 무엇인지까지. 모든 맥락과 관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다. 

문제는 기레기가 아니다

미디어를 가장한 광고 글에서 시작해 미디어 리터러시까지 이야기를 넓힌 까닭은 이 말을 하고 싶어서다.

"문제는 기레기가 아니다. 어쩌면 문제는 당신이 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의 기사조차 제대로 읽지 않는 것이다." 

자칭 미디어들이 올려놓은 허섭스레기같은 콘텐츠에는 이런 댓글이 왕왕 달린다. "이것도 기사라고 쓰고 앉아있냐" 라는. 허섭스레기 같은 글을 욕했으니 비판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으냐고 묻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그 허섭스레기를 '기사'라고 인식했다는 데 있다.

문제는 이 지점이다. '무엇이 언론이고, 미디어인가'라는 지점부터 우리는 고민하고 사유해야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시작은 '무엇이 미디어인가'부터다. 다시 말하지만 총체적이고 주체적인 사유.

자칭 미디어들이 싸지르는 콘텐츠나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싸잡아 '기레기'라고 부르는 순간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사고인 미디어 리터러시는 사라진다. 앞서 말했듯 그것이 미들 미디어(사실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미들  미디어라고 불러주고 있는 그것)의 무서운 점이다.

미디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들마저 미디어로 포괄하는 일이란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메시지를 다 그 규정 안으로 쏟아 넣고 한 번에 묶어 싸잡아 비판할 수 있는 손쉬운 길을 열어놓는 일이다. 이해와 비판을 포기한 채 손쉬운 비난과 정념만을 남기는 일.

그래서 어쩌면 가장 앞에 있는 문제는 기레기의 쓰레기 같은 기사가 아니라,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쓰레기,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좋은 기사라고 칭하며 규범과 규정의 경계를 멋대로 무너뜨리는 독자들의 무비판적 태도에 있을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없는 미디어 읽기. 비판적인 이해가 없이 읽어낸 것은 '미디어'일 수 없다. 이런 무지성은 사실 게으름에 기인한다. 이런 게으른 태도가 기레기를 잉태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쿠팡을 스킵하는 것이나 SNS의 광고, 바이럴 페이지를 차단하거나 삭제하는 일이 아니다. SNS를 멀리하는 일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그저 사유하는 일이다. 맥락을 따져 묻는 일이고, 나의 감정이나 견해를 넘어서는 실체적 진실이 언제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것이 언론의 본질이고 언론 소비자의 본령이다.

아마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언론인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지 왜 그런 고달픈 일을 독자에게 떠넘기느냐'라고. 그러나 언론은 기구나 조직이 아니다. 언론은 그보다는 사회적 기능이다. 언론이라는 기능을 수행하는 주체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이고.

그러니 쿠팡 파트너스의 낚시질에 속으며 "기사가 뭐 이따위야"라고 말하지 말고, 쿠팡 파트너스의 낚시질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왜 이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지에 대한 맥락과 과정을 사유해야 한다. 그래야 낚시질을 양산하는 저질 마케팅 기법이 사라질 수 있을테니까. 

마찬가지로 조·중·동은은 다 쓰레기라고 말하거나 한·경·오는 다 좌빨이야라고 말하며 서로 기레기라는 멸칭을 덮어씌우는 대신 무엇이 실체적 진실인지 사유하는 일, 그 진실이란 진영을 넘나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 (쟤네 편) 기레기가 나타나는 것은 내가 (우리 편) 기레기를 키워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 하여 문제는 기레기가 아니라 언론 소비자 바로 나와 당신, 우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분리 수거를 잘하면 쓰레기 배출량은 줄어드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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