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5 11:52최종 업데이트 24.05.1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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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주호영 위원장과 여야 간사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금개혁안 여야 합의가 최종 불발됐다고 설명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21대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의 개혁안 협상이 실패로 끝났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인상을 두고 여야는 공청회, 자문위원회, 재정추계, 시민참여형 숙의공론화 등 다양한 논의 과정을 거쳤다.

모집된 시민대표단 500명이 참여한 공론화위원회는 두 개의 안을 토론에 부쳤다. 1안인 '소득보장론'은 보험료율을 지금의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도 40%에서 50%로 올리자는 안이었고, 2안인 '재정안정론'은 보험료율을 12%까지만 올리되 소득대체율은 40% 그대로 두자는 안이었다. 총선 직후 짧은 기간 급박하게 이뤄진 토론을 거쳐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 56.0%는 '소득보장론'에 표를 던졌다. 다수가 '소득보장론'을 선택한 것을 두고 시민들이 '세대 간 연대'를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라는 평가가 나왔다.


연금 문제에 있어서 비전문가라 할 수 있는 필자는 소득보장론과 재정안정론 중 어느 쪽이 맞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양측 전문가가 각자 강조하고 서로를 비판하는 지점은 그들이 제시한 추계 자료가 정확하다면 양자 모두 논리적으로 타당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재정안정론 측 주장대로 국민연금 말고도 기초연금, 퇴직연금이 있어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만으로 노인 빈곤을 해결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소득대체율을 올릴 때 그 혜택은 소득과 가입 기간에서 유리한 고소득 안정적 일자리 근로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출산율과 경제성장률 회복이 불투명할 때 소득대체율 향상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가중할 수밖에 없다.

소득보장론 측 주장대로 심각한 노인 빈곤 대응에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뼈대가 되어야 한다. 국가가 저출산 고령화에 적극 대응하면 기금이 소진되지 않을 수 있고, 생산성 향상과 국가 재정 투입으로 미래세대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갑론을박 속에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양측 주장의 어떤 측면에 동의해서 표를 던졌을지 궁금했다. 특히 다른 연령대와 달리 연금개혁에 대해 성별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20대의 입장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득과 가입 기간에 따라 연금액이 결정되는 국민연금 설계에서 경력단절과 저임금 일자리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여성은 소득대체율 인상에서 큰 득을 보지 못할 것 같은데 왜 소득보장론에 더 지지를 보냈을까. 부산·울산·경남이 39.5% 대 59.3%로 재정안정론을 더 지지했다는데, 20대 남녀의 연금개혁 투표가 정치적 성향과 궤를 같이 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소득보장론 지지가 '세대 간 연대'의 지지라는데, 20대 여성은 20대 남성보다, 그리고 다른 연령대 여성보다 더 이타적이란 의미인가. 아니면 결혼과 출산보다는 노동시장 참여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앞 세대 여성보다 더 강해 자신의 노후소득 수단으로서 국민연금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더 큰 것일까. 20대 여성의 투표 결과는 소득보장론이 세대 간 연대의 증거라는 평가를 반신반의하게 만들었다.

노인 부양할 자식세대 어떻게 키울 것인가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가 3월 8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의제숙의단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 국회연금특위

 
'세대 간 연대'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와 현재 투표권이 없는 세대는 빠져 있다. 더 내고 더 받겠다는 소득보장론을 지지한 현재 세대는 자신의 노후소득 안정에 더 주목하고, 더 내되 지금처럼 받겠다는 재정안정론을 지지한 현재 세대는 노후는 각자도생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어 걱정스럽다.

국민연금은 노인에 대한 사회적 부양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노인을 부양할 자식 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를 제도의 설계와 담론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지금 청년 세대는 출산과 양육 의향이 낮다.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올 세대도 그러하다. 2023년 청소년 종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61.0%의 청소년이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꼭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2017년에 비해 14%p 급증한 수치다.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연금개혁 논의에서 연기금의 공공 사회서비스 인프라 투자나 출산과 돌봄크레디트 등 출산과 양육 노동을 연금제도에 반영하는 방안 등은 충분히 공론화하지 못했다. 공론화위원회는 국민연금 기금을 공공 사회서비스 인프라 투자전략에 활용하는 방안, 즉 청년 주택, 공공어린이집 및 노인시설에 연기금을 투자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대표단의 57.5%만이 찬성했다.

저출산 고령화에 적극 대응하면 출산율이 올라갈 수 있다고 안이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심각한 저출산 해결을 위해 정부는 우리 사회의 모든 제도와 구조에 내재한 불평등과 불안에 전방위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국민연금도 예외가 아니다. 노동시장에서 오래 일해서 많이 벌어야 국민연금으로 노후를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데 누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힘과 시간을 쓰겠는가. 22대 국회의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노후소득 보장뿐만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부양하는 데 국민연금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공론화하기를 기대한다.
 

윤자영 /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소셜 코리아 자문위원) ⓒ 윤자영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는 노동경제학과 젠더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시장과 비시장 영역의 돌봄과 젠더·계층·세대 질서 및 불평등의 상호관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회보장위원회 등에서 공익위원과 민간위원으로 참여했고, 학계에서는 한국노동경제학회 이사와 한국사회정책학회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젠더와 기본소득, 노동시장 성차별과 불평등, 돌봄서비스 일자리 근로조건 등 논문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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