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라이스〉 표지그림

▲ 〈스플라이스〉 표지그림 ⓒ GAUMONT


황우석 박사가 주도하던 생명공학이 한때 세계적인 흐름을 이끌었다. 그것이 한낮 쇼였다는 것을 안 뒤 모든 열풍은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그와 관련된 팀들이 또 다른 성과물들을 내고 있다는 걸 언론을 통해 듣고 있다. 도무지 그들은 그 길을 멈출 수 없는 걸까?

명분은 그에 있을 것이다. 동물 복제기술이 인간 복제기술로 환치되면 더 많은 난치병과 불치병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 인간의 선천적 질병을 미리부터 차단할 수 있다는 것. 인간에게 더욱더 오랜 건강과 행복한 삶을 영위 시킬 수 있다는 것. 아마 그것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육신의 건강만으로 되는 일인가? 예전엔 못 먹고 못 살아 더 많은 병에 걸리고 더 일찍 죽었다. 오늘날은 그에 비해 훨씬 더 잘 살고 더 건강하다. 그렇다고 행복이나 행복지수가 더 높아지고 있는가? 자살율과 이혼률과 가정 해체율은 더 늘어만 가고 있다. 결코 그것이 정비례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생명공학의 명분, 복제인간의 명분, 난치병과 불치병의 해소에 대한 명분, 그것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게 결코 아닌 것이다. 오히려 과학자들의 명성과 부, 그리고 제약회사들의 막대한 이득을 올리는 길 뿐이다. 결국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의 무모함이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지 그들 스스로 보여주게 될 것이다.

엘사의 연구집중 생명공학계의 여과학자 엘사

▲ 엘사의 연구집중 생명공학계의 여과학자 엘사 ⓒ GAUMONT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스플라이스>는 비록 배아복제나 줄기세포 개발이 아닌 DNA 결합으로 인한 생명체의 탄생을 보여준다. 인간 여성의 DNA와 조류, 어류, 파충류, 갑각류의 유전자를 결합하여 세포분열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다리와 발은 조류의 기능,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은 어류의 기능, 그리고 머리카락만 빼면 모두 사람에 가까운 '드렌'이란 짐승이다. 

그것을 개발해 낸 사람들은 생명공학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올리고 있는 클리브와 엘사 부부다. 그들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필요성을 감안하지만 정작 더 큰 집과 더 많은 부에 쏠려 개발에 열을 내고 있었다. 그것이 제약회사의 큰 손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요, 불철주야 불나방처럼 뛰어들게 한 몫이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최초 암컷이던 드렌이 성장하면서 완벽한 여성의 면모를 갖춘다. 이른바 제 2의 엘사가 된 것이다. 그것이 클리브를 유혹하게 만들었고, 결국 둘은 성관계까지 벌이게 된다. 이른바 짐승과 수간(獸姦)한 것인데, 정말로 역겹고 찝찝한 장면이었다. 놀라운 건 그것이 돌연변이 과정에 의해 수컷으로 변하여 엘사까지 성폭행할 뿐만 아니라 클리브를 독침으로 쏴 죽이고, 결국 엘사는 임신한 것으로 종결을 맺게 된다.

무엇을 보여 주는가? 빈센조 나탈리 감독은 <큐브>에서 독특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유명세를 날렸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상황 설정도 그렇고, 멜로와 공포를 동반하지만 그만큼 쇼크는 주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윤리적인 큰 울림과 교훈은 안겨주는 것 같다. 인간인 것 같지만 인간이지 아니한 짐승을 만든 인간세계는 결국 그 짐승으로 인해 큰 파멸을 당하고 만다는 교훈이다.

〈스플라이스〉영화 속 장면 영화 속 드렌과 클리브의 사랑 나눔.

▲ 〈스플라이스〉영화 속 장면 영화 속 드렌과 클리브의 사랑 나눔. ⓒ GAUMONT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무엇을 느낄 수 있나? 어쩌면 지금도 세계 어느 한 모퉁이에선 배아복제나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온 정열을 쏟아 붓고 있는 과학자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이 불치병과 난치병 개발을 핑계 삼아 세계적인 명성을 구가하고 있고, 세계 유수한 제약회사로부터 막대한 후원금을 거머쥐기 위해 불철주야 애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와 같이 성경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들은 그에 단호할 것이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자신들만의 바벨탑을 쌓는다면 그것은 결국 혼돈과 두려움만 양산한다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차치하고서라도 가정과 사회의 윤리와 도덕은 더할나위 없이 파괴될 것이다. 그 정점엔 돈과 짐승만 남게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는가. 인간인 것 같지만 인간이지 아니한 짐승 같은 인간이 온 세계를 장악하게 된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놀랍게도 성경의 요한 묵시록엔 짐승이 주도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언한 바 있다. 예전엔 컴퓨터의 바코드니, 사람의 이마에 넣는 칩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과학자들에 의해 짐승이 설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니, 얼마나 섬뜩한가.

제발 그것이 상상의 세계로 그쳤으면 한다. 최초 엘사는 '드렌'을 만드는 데 무게를 두지만 클리브는 반대를 천명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끝내 선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그것으로 파멸을 초래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생명공학계에선 인간의 사랑을 통한 성적합일체의 결정체인 인간의 태아 외엔 그 어떤 복제물도 금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 스스로의 존엄과 가치를 영원토록 지키는 아름다운 길이기 때문이다.

생명공학 짐승의 세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