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임신한다면?", "나하고 외모만이 아니라 기억마저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든다면?", "온갖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다면?" 황당무계한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몇 가지 질문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는 이런 질문들을 현실의 스크린으로 재현해 냈습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쥬니어>는 난자 저온학을 통해 남자가 임신하고 출산하는 쇼킹한 장면을 코믹하게 보여줍니다. '인간의 영혼에 유전자는 없다'는 의미심장한 헤드카피로 시선을 끌었던 영화 <가타카>는 태어날 때부터 유전인자의 우열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미래사회를 그렸습니다.

최근작은 <아일랜드>입니다. 물건을 찍어내듯이 인간이 생산되어 장기를 제공하는 임무를 마치고 나면 죽어야 하는 복제인간 '클론'의 슬픈 종말을 통해 영화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관한 한 편의 차가운 보고서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런 인간 복제 즉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대한 찬반여부를 떠나 분명한 것은 제1의 물결 농업혁명과 제2의 물결 산업혁명 그리고 제3의 물결인 정보혁명을 지나 제4의 물결로 '유전자 혁명'을 꼽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을 터. 이런 최첨단 유전자 혁명에 기발한 SF적 상상력이 입혀져 돋보이는 영화가 바로 <스플라이스>입니다.

금기의 영역에서 갈등하는 도전과 욕망

 다종 간 유전자 합성과 배양으로 탄생한 드렌이 엘사의 말을 듣고 있다. 드렌은 인간과 흡사한 얼굴에 날카로운 독침을 숨긴 꼬리와 새의 다리와 날개를 가졌다.

다종 간 유전자 합성과 배양으로 탄생한 드렌이 엘사의 말을 듣고 있다. 드렌은 인간과 흡사한 얼굴에 날카로운 독침을 숨긴 꼬리와 새의 다리와 날개를 가졌다. ⓒ (주)미로비젼



영화는 난치병 치료용 단백질을 개발하는 제약회사 뉴스테드에서 유전공학자로 일하는 클라이브(애드리안 브로디)와 엘사(사라 폴리) 커플에 초점을 맞춥니다. 둘은 동물의 유전자를 합성해 프레드와 진저라는 새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뉴스테드사는 단백질 양산체제를 준비합니다.

그러나 엘사는 예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클라이브를 설득해 인간의 DNA에 조류와 어류 그리고 파충류의 DNA를 합성하고 배양해 새로운 종을 창조하는 실험을 감행합니다. 실험 결과 인간의 얼굴에 조류의 발과 파충류의 꼬리를 단 '드렌'(델핀 샤네끄)이 탄생합니다.

클라이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엘사는 드렌과 남다른 교감을 하고, 드렌은 빠른 속도로 성장합니다. 엘사의 교육으로 드렌은 인간다운 감정과 지성을 표출하지만 동물적인 욕구와 공격성 또한 공존합니다. 그런 어느 날, 엘사의 딸 같은 존재였던 드렌이 통제 불능의 몬스터로 탈태하면서 영화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급전직하합니다.

두 가닥 끈의 올을 풀어 꼬아 잇댄다는 뜻의 <스플라이스>처럼 서로 다른 DNA의 조합으로 탄생한 드렌은 많은 것을 상징하고 의미합니다. 드렌이 애완동물 같은 존재에서 딸로 그리고 클라이브의 성적 대상에서 다시 공포의 대상으로 돌연변이하는 과정은 클라이브와 엘사의 도전과 욕망과 혼란의 투사이자 드렌의 자기 정체성 찾기나 진배없습니다.

인간 본성과 욕망의 관계론을 성찰케 하다

 드렌이 자의식을 가지면서 클라이브를 남자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클라이브 역시 드렌에게서 엘사의 모습을 보고 둘은 금기를 깨트리고 만다.

드렌이 자의식을 가지면서 클라이브를 남자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클라이브 역시 드렌에게서 엘사의 모습을 보고 둘은 금기를 깨트리고 만다. ⓒ (주)미로비젼



드렌의 이런 유전자 변이와 적대는 창조의 카오스를 상징합니다. 그와 함께 드렌은 인간성에 대한 성찰과 욕망의 충족 사이에서 갈등하고 비틀어지는 클라이브와 엘사의 모습을 연계해 주는 고리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영화는 SF적 상상을 넘어서는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관계론'으로 응축시킨 다음 생명공학기술에 빗대어 천착케 합니다.

영화는 관계의 모티브를 엘사의 과거와 현재에서 찾습니다. 클라이브가 그토록 원하건만 엘사는 임신을 한사코 거부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받은 학대가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드렌의 탄생은 엘사로 하여금 회피하기만 했던 과거와 조우하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드렌은 과학자로서 엘사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력한 코드로 작동합니다. 결국 엘사와 드렌의 이 관계는 엘사 안에 드렌이 똬리를 틀고 있었고, 드렌 안에 엘사의 과거가 투영되어 있음을 암시하며 이른바 '관계론'에 대해 성찰케 합니다. 

영화는 성숙한 드렌이 자아를 찾기 시작하면서 관계의 폭을 엘사와 드렌에서 드렌과 클라이브로 확장시킵니다. 드렌이 클라이브에게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느끼면서 엘사는 자신이 끔찍이도 싫어했던 엄마의 모습으로 '변이'됩니다. 반면 드렌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이시키고, 온순한 양에서 폭력적인 괴수로 돌변시키는 단초는 엘사와 클라이브가 제공합니다.

드렌에게서 엘사의 유전자를 감지한 클라이브가 원초적 욕망에 사로잡혀 윤리적 금기를 깨트리고, 자신의 유전자로 합성한 드렌과 클라이브의 결합에 분기탱천한 엘사가 드렌을 살해하는 대목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의 가슴을 차갑게 파고드는 '드렌의 반전'을 통해 엘사와 클라이브의 욕망이 부서지는 과정을 클라이맥스로 설정해 놓습니다.

'맞춤형 아기' 시대 예고하는 생명공학기술

2년 전 영국에서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손위 형제자매를 위해 치료하기 위해 아픈 아이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배아를 선별해 출생시키는 치료용 맞춤아기 즉, '구세주 형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토끼 등의 동물 난자에서 유전물질을 모두 제거한 뒤 인간의 DNA를 주입해 건강한 배아를 골라 맞춤형 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배아 생성을 연구목적으로 제한하고 생성된 배아는 14일 이내에 폐기 처분토록 했으나 지능이나 체력, 외모 등을 염두에 두고 인간을 생산하는 '맞춤 아기' 시대의 가능성은 커지게 됐습니다. 마치 태어난 아기의 DNA를 유전공학으로 분석하여 질병 유무와 성격, 직업까지 결정짓는 유전자 조작이 낳은 계급사회를 그린 <가타카>가 영화 속 상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스플라이스>에서도 난치병 치료를 위한 단백질 생성을 위해 이종 간 체세포 핵이식인 교잡배아를 하지만 드렌의 출현은 그 단계를 뛰어 넘습니다. 머리는 사자에 몸은 사슴이고 꼬리는 뱀의 형상으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수 '키메라'처럼 종과 종의 총합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공상이 오늘의 현실이 되는 게 생명공학의 현 주소이지만 21세기형 키메라 드렌의 탄생은 현재의 생명공학기술로는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아직 파리 한 마리의 유전자 비밀도 풀지 못한 데다 더욱이 다른 종의 유전자를 배합한다고 유전적 특성이 일어나는 상호작용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 유전자 지도의 밑그림을 그린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유전자들의 기능과 역할을 파악하게 됨에 따라 질병의 치료 및 예방의 획기적인 전기는 마련해 갈 것으로 보입니다. 즉, 맞춤형 아기 전성시대는 머잖아 도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의 <스플라이스>가 내일의 생명공학을 읽게 해 주면서 영화와 과학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생명공학은 다수 대중과 공동체를 위한 국민의 과학이 돼야

 클라이브가 과학자로서의 보편적 윤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며 엘사에게 유전자 합성 실험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지만 엘사는 실험을 강해한다.

클라이브가 과학자로서의 보편적 윤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며 엘사에게 유전자 합성 실험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지만 엘사는 실험을 강해한다. ⓒ (주)미로비젼


<아일랜드>는 물론 <스플라이스> 역시 생명공학과 사회적 윤리의 경계선에 대해 묻습니다. 클라이브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며 인간의 존엄성을 되묻고 엘사에게 드렌의 파기를 요구하는 장면은 과학자로서의 보편적 윤리를 정면에서 응시케 합니다. 반면 과학의 비약적 진보를 주창한 엘사는 엔딩 크레딧에서 임신한 모습으로 2탄을 예고합니다. 그 아기가 클라이브의 아기인지, 남성으로 성 변환을 일으킨 드렌의 아기인지는 밀봉한 채로.  

종교계에서는 단호합니다. 생명공학이나 과학자들은 신의 영역이자 금기의 영역인 창조물의 '선'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고 목청을 돋웁니다. 시민사회에선 상업적 이윤의 극대화와 자본의 통제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럼에도 생명공학기술은 더욱 거침없이 진보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복제든 유전자 합성이든 생명공학을 비롯해 모든 과학이 가진자들이나 소수 특권층 등을 위한 '권력의 과학'이 아니라 다수 대중을 위한 과학, 공동체의 가치와 철학을 지향하는 '국민의 과학'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영화 속 디스토피아는 영화로 끝맺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연과 불가지가 지배하는, 움직이는 물질인 이 세계에서 해방되어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설수 있기까지에는 노동의 역사와 함께 과학의 발전과 진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까요.

따라서 <스플라이스>가 재앙일지 희망일지 또는 탐욕일지 도전일지를 논하기 전에 생명공학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접근하는 한편 찬반 모두를 아우르는 열린 눈으로 다가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전자와 생명공학의 비밀을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인간성과 역사의 합법칙적 발전에 대해 무한한 신뢰와 낙관을 전제한다면 말이지요.

스플라이스 생명공학 유전자 합성 가타카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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