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세상 온갖 중독 중 '나눔 중독'만큼 긍정적인 것도 없을 것 같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타인을 돕는다는 점에서도 훌륭한 일이겠지만, 많은 '나눔 중독자'들은 "뭔가 나누어 주고 왔는데 도리어 내가 무언가를 받는 기분"이라며 나눔이 주는 신기하고 오묘한 기분을 칭송한다. 남과 나에게 '더하기'가 되는 일이 바로 나눔이라는 이야기다.

실제 많은 유명인들이 이 '나눔'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 어려워한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 때문일까, '좋은 일이니 한 번 공개하자'는 이야기에도 그들은 손을 내젓는다. 이미지 관리용 선행이라는 구설수에 오르기 싫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그러던 중 4명의 SBS 아나운서들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는 첩보를 전해 들었다. 조심스레 공개 의사를 물었고, 다행히 네 사람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정석문·최기환·유혜영·이윤아 아나운서가 그 주인공. "어떻게 나눔을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 아나운서들이 '견적서' 들고 다니며 '영업' 중인 이유

 최기환 SBS 아나운서

최기환 SBS 아나운서 ⓒ SBS


최기환 아나운서와 유혜영 아나운서는 최근 아프리카 부룬디의 산모들을 위한 병원 건립비용을 쾌척했다. 최 아나운서가 국민연금 홍보대사 활동비로 받은 1000만 원을 내놨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유 아나운서가 적금으로 받은 300만 원을 보탰다.

정작 최 아나운서는 "사실 최근에 기부한 것인 데다가, 액수가 커서 그렇지 가장 '가짜'"라며 "좀 창피하다"고 털어놨다. 최근 SBS의 사회공헌프로그램 <희망TV>를 통해 부룬디에 다녀온 그는 아이를 낳기 위해 꼬박 이틀을 걸어 온 산모가 병실이 없어 세 시간을 기다리다가 결국 목숨을 잃는 광경을 지켜보고, 산모를 위한 병동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산모 병동을 지을 자리는 마련되어 있더라고요. 병원 원장님께 '건물을 지으려면 얼마가 필요하냐'고 여쭸더니 우리 돈으로 1500만 원이면 지을 수 있다고 하셨고요. 그리고 귀국했는데 지난해부터 했던 국민연금 홍보대사가 딱 연장이 된 거예요. (웃음) 그렇게 병동 건축 사업이 시작됐는데…. 제대로 견적을 뽑아 보니 수도 시설에, 의료 기기까지 해서 지으려면 2억 원이 넘는 돈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계속 모금 활동을 하고 있어요." (최기환)

 유혜영 SBS 아나운서

유혜영 SBS 아나운서 ⓒ SBS


'2억 원'이라는 견적서를 받기 전, <접속 무비월드> 녹화장에서 최기환 아나운서로부터 부룬디의 상황을 전해들은 유혜영 아나운서는 그동안 부어 왔던 적금이 생각났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적금을 깨기로 했다. 최기환 아나운서는 "나야 홍보대사 활동비로 받은 돈이니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상황이었는데 유혜영 아나운서가 적금을 깨서 함께 하겠다고 하더라"고 당시의 상황을 돌이켰다.

"그리고 견적서를 받아보니 (건설비용이) 2억 원이 넘더라고요. 최기환 아나운서가 시멘트 비용을 댄 셈이고, 저는 뭐…창틀 정도? (웃음) 제 다음 타자로 철근 비용을 맡아 주실 분이 나타나 주셨으면 좋겠어요. 요즘 아예 이 견적서를 들고 다녀요. 예전에 누군가가 이런 저에게 '가식 떠는 거 아니야?' 그런 말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욕을 먹어도, 이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유혜영)

이에 더해 유혜영 아나운서는 8월에 <희망TV> 프로그램 촬영차 탄자니아로 향한다. 최기환 아나운서의 뒤를 이어 희망원정대에 참여하는 것. "2년 전에 말라위에 간 적이 있는데, 그 때엔 멋모르고 가서 내 안위가 가장 중요했다"고 회상한 유 아나운서는 "이번엔 부끄럽지 않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갈 생각"이라며 "이번엔 좀 달라질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철근'과 '시멘트'가 두 사람의 마음에 기분 좋은 변화를 일으킨 셈이다.

"이제 밥을 먹을 때 얼마가 나왔다 하면 '문고리 값이 나왔구나' 하고 저절로 생각하게 돼요. 사실, 이런 일을 한 번 했다고 봉사정신이 투철해지거나 성스러워지지는 않아요. 하지만 관심이 생기죠. 관심을 갖는 만큼 보이니까요." (최기환)

"나눔, 어떤 펀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 있다"

 정석문 SBS 아나운서

정석문 SBS 아나운서 ⓒ SBS


그런가 하면 정석문 아나운서와 이윤아 아나운서는 '행동파'에 속한다. 이들을 두고 최기환 아나운서는 "우리가 하는 기부가 '가짜'라면, 진짜 원조는 정석문 아나운서"라며 "이윤아 아나운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캐릭터다. 알리지도 않고 열심히 하는지 몰랐다"고 평하기도 했다.

정석문 아나운서가 나눔과 인연을 맺은 건 2005년. 우연히 한비야의 책을 읽고 '우리가 경험한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다'는 생각에 국제 구호단체 월드비전을 통해 스와질란드의 한 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한 것이 처음이다. 그리고 3년 뒤, 정석문 아나운서는 스와질란드 땅을 밟게 됐다. <희망TV>의 전신인 <기아체험 24시> 촬영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전후 한국의 이야기와 같은 상황이었어요. 더 심각한 상황도 있었죠. 스와질란드는 에이즈 발병률이 높아 평균 수명이 40세가 안 된대요. 내버려두면 사라지는 나라가 되는 거죠. 한창 일할 나이인 40세가 되기 전에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어떻게 경제를 일으키겠어요. 어느새 '내가 아프리카에 또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석문)

그 후로 정석문 아나운서는 틈틈이 휴가를 내고 에티오피아와 몽골 등 해외로 향했다. 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당장 눈앞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능력만 된다면 구하려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 정 아나운서는 "내가 남들보다 선한 게 아니라, 그저 가까이에서 그 상황을 봤을 뿐"이라며 "결국 관심의 문제다. 누구든 (상황을) 보면 그렇게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눔은 최고의 가치가 있는 일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2~3만 원이면 조금 좋은 저녁 한 끼 값, 몇 명의 점심값이나 커피 값 정도겠죠. 하지만 저개발 국가에서 그 돈은 한 명의 목숨 이상의 가치가 있어요. 같은 돈을 최고로 가치 있게 쓸 수 있다는 거죠. 단지 돈으로만 계산되지 않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어떤 펀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투자라고 생각해요. 기회가 있으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또 부담스러워 할까봐 딜레마에요. (웃음)" (정석문)

 이윤아 SBS 아나운서

이윤아 SBS 아나운서 ⓒ SBS


<동물농장>의 안방마님 이윤아 아나운서는 '파지·공병 줍는 여자'다. 매일 보도국에서 읽고 버린 신문이며 회식 자리에서 생긴 술병까지, 모두 이 아나운서의 핸드백에 들어간다. "집 앞에 파지를 줍는 할머님이 계시는데, 돈을 드리면 안 받으셔서 생각해 낸 방법"이란다. 이 외에도 이 아나운서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짓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책을 읽는다. 일종의 '생활밀착형' 나눔이다. 그가 SBS에 입사한 2007년부터 시작된 일이다.

"생각보다 일할 수 있는 곳이 곳곳에 있어요. 아이들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제대로 끼니를 못 챙겨 먹는 게 가장 안쓰럽더라고요. 시나 구에서 지원을 하긴 하는데 넉넉하지가 않으니까…. 사실 요리를 잘 못하는데, 아이들이 그걸 먹다가 '주말에 먹을 게 없어서 나중에 먹겠다'면서 안 먹으면 속상하죠. 또 아이들 상담도 많이 해 주려고 해요. 꿈을 설정하는 방법 같은 걸 누구도 얘기해 주지 않았더라고요.

사실 저도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자랐어요. 고등학교 때 형편이 어려웠는데, 선생님들께서 저처럼 어려운 친구들을 모아서 방과 후에도 과외처럼 공부를 시켜 주셨죠. 그렇게 대학교에 가고 아나운서가 됐다는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이나 누리고 있는 게 모두 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있어요. 누군가를 도우면 남에게 또 도움을 받을 거라는 믿음만 있다면 나눔은 자연스러워질 것 같아요. 가깝게는 엄마가 주신 것, 선생님이 주신 것을 당연하게 받는 게 아니라고만 생각한다면요." (이윤아)

"100명 중 99명 욕하더라도…한 명의 관심이라도 불러 일으켰으면"

네 아나운서 모두 지금 필요한 것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라는 데에 동의했다. 그런 점에서 <희망TV>는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기환 아나운서는 "유명한 사람들이 어려운 지역에 다녀오고, 그 실상을 보여줌으로써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하게 하는 게 목적인 것 같다"며 "방송을 통해 '이런 사람도 있다' 는 걸 보여주고, 천 명 중 한두 명이라도 '그래? 그러면 한 번 볼까?'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각자의 방법으로 나눔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SBS 아나운서들. 왼쪽부터 정석문, 이윤아, 유혜영, 최기환 아나운서.

각자의 방법으로 나눔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SBS 아나운서들. 왼쪽부터 정석문, 이윤아, 유혜영, 최기환 아나운서. ⓒ SBS


"맞아요. 현장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는데 사실 '봉사활동'은 아니에요. 제가 집을 지어봤겠어요, 우물을 파 봤겠어요. 오히려 구호단체 직원들만 바빠지는 거지. 실질적으로 현장에 가는 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되진 않아요. 하지만 그 곳에 가서 했던 걸 이 곳에 전할 수 있고, 그러면 또 관심이 커지고. 이런 면들이 강하죠." (정석문)

"실상을 좀 많이 알렸으면 좋겠어요. 저도 선배 아나운서들이 알려주시지 않았더라면 이걸 알 턱이 없었을 거예요. 100명 중 99명이 '가식적'이라고 욕을 해도, 한 명이 마음이 흔들려 '후원전화 한 통 해 볼까?' 하면 그게 할 수 있는 일종의 재능 기부가 아닐까 생각해요. <희망TV>가 좋은 게, 일시적인 후원이 아니라 정기 후원을 받아요. 비록 총 모금액은 적더라도 지속적으로 후원받을 수 있게 도와드리려고 하는 거죠." (유혜영)

네 아나운서는 얼굴을 마주한 시간 내내 서로의 방법이 더 좋은 것 같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눔에 옳은 방법이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기부하는 것도, 실제로 현장에 가 활동하는 것 모두 선한 의지에서 출발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방법으로 돕든,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마음'이 아닐까.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네 아나운서의 모습은 참 뜨거웠다. 이미, 이들은 '진짜'였다.

"나눔은 중독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걸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유혜영)

"사실 누군가 알거나 말거나,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한다는 마음이 커요. 그런 점에서 꾸준히, 조용히 계속 하고 싶고요." (이윤아)

"나눔은 작은 데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최기환)

"처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저, 관심이 조금씩 커졌던 것뿐이었죠. 지금도 그 관심은 계속 커지고 있고요. 다들 직접 가서 볼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시다 보면 관심이 커지지 않을까요." (정석문)

발룬테이너 정석문 최기환 이윤아 유혜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