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들의 히치하이킹> 포스터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포스터 ⓒ 서플렉스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TV 프로그램 <무한도전>과 닮아 있다. 스스로 '잉여'라고 부르는 청년들이 달랑 현금 80만 원 들고 1년 동안 유럽배낭여행에 나섰으니, <무한도전>과 형태가 비슷하다. 게다가 제2의 비틀즈가 될 만한 뮤지션을 찾아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함께 뜨자는 생각을 꿈꿨으니, '무한도전'만큼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하지만 <잉여들의 히치하이킹>(11월 28일 개봉)은 <무한도전>과 비슷한 만큼 많이 다르다. '무한도전'엔 출연진보다 훨씬 많은 제작진이 있고, 또 도전하는 분야의 정상급 전문가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의 분투는 낱낱이 기록되어 수백만의 시청자들에게 선보인다.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만큼 충분한 보상이 뒤따른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엔 이 모든 지원과 보장이 없었다. 배낭여행을 함께 떠난 네 명의 친구들이 출연진이자 제작진 전부다. 누군가 한 명은 카메라를 들어야 하니 화면엔 늘 한 명이 비고 달랑 두 대의 카메라로 찍으니 화면은 단조롭고 때로는 심하게 흔들린다. 이렇게 찍어도 영화가 되는구나 하는 감탄마저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여기엔 방송사의 화려한 프로그램들이 자랑거리로 삼고 싶어 하는 진정한 '리얼'이 있다. 유럽을 좌충우돌하며 떠돈 1년의 기록이 과장 없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선 진짜 실제가 주는 울림을 느낄 수 있다.

네 명의 청춘, 80만원 들고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의 한 장면.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의 한 장면. ⓒ 서플렉스


2009년 9월, 서울종합예술학교 영화과에 다니는 네 명의 학생은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영상제작 아르바이트를 해서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그러지 못했다. 차라리 조금 모은 돈으로 유럽배낭여행이나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숙박업소의 홍보 동영상을 찍어주고 숙식을 해결하며 여행을 하고, 마지막엔 영국으로 가서 제2의 비틀즈가 될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찍는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여 영화로 만들자는, 스스로 재밌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2주 만에 계획을 얼렁뚱땅 만들고 학교까지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

당연히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파리에서 로마까지, 히치하이킹과 노숙을 반복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46일째, 돈은 2만 원 남았고 로마의 허름한 공터에서 하던 텐트 노숙에도 한계가 왔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돌아가려는 순간, 한 호스텔에서 홍보 영상을 찍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찍은 홍보 영상이 인기를 끌고 다른 숙박업소에서도 요청이 잇따르고... 애초에 목표한 계획을 이루게 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열정을 가지고 꿈을 위해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면 '성공스토리'형 영화는 아니다. 숙박업소 홍보 영상이 인기를 끌었다고는 하지만 최종 목표인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간 영국에선 다시 접시닦기 등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또 영화감독이 그토록 좋아했던 아르코의 뮤직비디오를 찍게 되었지만 오히려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완성을 못했다. 영화를 만든다는 일도 이루었지만 속된 말도 '흥행 대박'을 친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스스로 잉여라고 부르는 이들이 스스로의 길을 찾는 성장 영화고 그래서 볼 만한 영화다. 주인공들은 영화과를 다니면서 동기들에게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재능도 부족한 것 같고 또 워낙 게으르기도 하고. 쟁쟁한 인재들이 넘쳐나는 영화판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살아남기 힘들었다고 여겼을 만하다. 그랬기에 학교도 미련 없이 관둔 것이고, 실제로도 영화 개봉 후 이뤄진 '감독과 대화의 시간'에 자퇴해서 오히려 홀가분했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이라는 정규코스를 가는 대신에 그들만의 길을 갔다. 그것도 죽기살기로가 아니라 이 길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 갔고 '개'고생도 했지만 소중한 삶의 지혜도 얻었다. 이호재 감독은 "여행을 통해 이제는 결과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과정이 중요하고 과정이 좋으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는 어떤 길도 망설임 없이 갈 수 있게 된 셈이다.

공부 대신 하던 게임이 창의성의 원천이 되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의 한 장면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의 한 장면 ⓒ 서플렉스


그들이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여겼지만 유럽에서 만든 숙박업소 홍보영상을 보면 꽤 재기발랄하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들이 평소하던 게임 영상에서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게임은 학교수업은 불성실하게 하면서 편집실에서 틀어박혀 하던 것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감독은 "교육만이 다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창의적 상상력의 결과물인 게임이 창의적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음은 당연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했던 분들은 창조경제라는 국정지표에 반하는 일을 한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숙박업소 홍보영상을 만드는 일은 그들이 그들 스스로를 다시 인식하는 계기도 되었다. 뒤쳐진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영상들을 만들면서 다른 환경에서는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우리도 나름 쌓아온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길을 묻는 또래 친구들에게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답이 아닌가"라고 이야기한다.

<무한도전>은 방송사라는 거대한 배경의 지원이 있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도 그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아니 그보다 소중한 도움이 있었다. 그들을 딱히 여겨 목적지까지 차를 태워준 버스 운전사가 있었고, 배낭 하나 가득 먹을 것을 챙겨준 서양 청년이 있었고, 햄버거를 사준 한인 아줌마가 있었다. 특히나 터키의 숙박업소에서 현지인들과 진한 정을 나누는 장면을 보다 보면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고 그래서 살 만하고 또 그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잉여라고 생각한다면 아니 길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면 보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느껴 볼 만한 영화다.

잉여 유럽배낭여행 히치하이킹 이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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