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들 중 유독 사회의 이면을 고발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꽤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한 <변호인>은 지난해 12월 개봉 이후 올해들어 천만관객을 동원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윤미사건을 그린 <또 하나의 약속>은 지난 6일 개봉해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북한의 지하 기독교인 탄압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신이 보낸 사람>은 오는 13일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 <변호인>의 스틸컷

영화 <변호인>의 스틸컷 ⓒ 위더스 필름


권력 비판하는 영화, 제작도 상영도 안돼는 건가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또 하나의 약속>과 <신이 보낸 사람>. 두 영화는 제작 자체가 불확실 했다. '국내 대기업'과 '북한'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전면에서 다루고 있기에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작진들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방향을 틀었다. 크라우드 펀딩은 대중들의 자발적 자금 투자로 영화를 제작하는 형식이다.

<또 하나의 약속>에서 윤미 역을 맡은 박희정은 <오마이스타>와 인터뷰 자리에서 "돈으로 주시지 않더라도 시민들이 슈퍼에서 과자를 가져다 주시는 등 여타 도움도 많이 주셨다"며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로 제작 되었음을 밝혔다.

참고로 <또 하나의 약속>과 <신이 보낸 사람>에서 사용한 크라우드 펀딩은 'All or Nothing' 방식으로, 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하면 전액이 모금자에게 환불된다. (다른 방법은 목표액 달성여부와 관계없이 모인 금액만큼을 가져가는 'Keep it All' 방식이 있다.) 우선, 크라우드 펀딩을 성공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대중들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라는 뜻이다.

이런 시민들의 소액을 투자받는 방식은 영화 <26년>을 시작으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부러진 화살>도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된 영화다. 현재 촬영 중인 비정규직 부당해고 관련 영화  <카트>도 오는 9일까지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중이다.

 <신이 보낸 사람>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유캔펀딩' 사이트

<신이 보낸 사람>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유캔펀딩' 사이트 ⓒ 유캔펀딩


당국의 압박에도 의미 있는 흥행 보인 작품들 있다

<또 하나의 약속>과 <신이 보낸 사람>은 곧 '현실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에 만들어 졌다 볼 수 있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또 하나의 가족'으로 상영된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매우 높다는 게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드러났다. 하지만 제작진의 노력과 시민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개봉 2일전까지도 개봉관이 확정되지 않고, 갑작스레 상영관을 축소하는 등 난항을 겪어야 했다.

롯데시네마 측은 총 19개의 상영관을 내줬는데, 그마저도 위탁관이거나 예술영화 전용관에 영화를 배정했다. 사실상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로 분류했다. 상영시간도 일정하지 않고, 상영관이 작아 수용할 수 있는 관객도 적었다. 개봉 첫날 '300개의 상영관'을 바라고 배급 전략을 잤지만, 개봉은 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10개 규모로 하게 됐다.

<또 하나의 약속>처럼 상영과정에서 압박을 받았지만 관객의 힘으로 극복한 전례가 있다. 1990년에 제작된 영화 <파업전야>는 정부로부터 '상영금지'명령을 받았고, 사복경찰이 상영관 앞을 막아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대학교 강의실과 집회 현장 등에서 상영되며 3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이 백령도에서 침몰한 사건에 대한 의혹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2013)도 상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롯데시네마와 CGV는 상영관을 애초에 내주지 않았으며 메가박스도 개봉 이틀 만에 상영중단 통보를 내리고 예매된 좌석을 환불조치했다. 이에 대항해 배급사 측은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규모 야외시사를 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약속'의 스틸컷

'또 하나의 약속'의 스틸컷 ⓒ OAL


'또 하나의 약속' 관객들이 지켜내고 있다

<또 하나의 약속>에는 "정치는 표면이고 경제가 본질이죠"라는 대사가 나온다. 자본에 눈치보며 영화를 만들어야 상영관에 걸릴 수 있는 현실이 가혹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 첫날 159개의 스크린으로 2만 7203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5위를 차지했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또 하나의 약속>의 선전은 관객들이 없었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 1만 명의 제작두레 참가자가 버티고 있었다. 영화가 개봉한 후에는 조달환, 컬투, 이경영 등 연예인들도 관심을 갖고 극장을 빌려 관객들과 함께 작품을 보고 있다. 상영관을 늘리려면 개봉 1주차 예매율이 높아야 한다는 말에 시민들의 단체 관람 움직임도 늘고 있다.

앞으로 <신이 보낸 사람> <카트>등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얘기하는 영화들이 순차적으로 개봉될 예정이다. 이 작품들이 다른 상업영화처럼 무사히 개봉해 합리적인 조건에서 상영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또 하나의 약속> 등의 사례는 영화가 단순히 자본 논리에 휩쓸리지만은 않는다를 증명하고 있다. 자본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힘은 곧 대중들의 사회적 관심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약속 변호인 신이 내린 사람 카트 클라우드 펀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