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으로 안무가 데뷔하는 스웨덴 왕립발레단 출신 안무가 전은선

▲ 벽 으로 안무가 데뷔하는 스웨덴 왕립발레단 출신 안무가 전은선 ⓒ 박정환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다가 국제무대로 영역을 넓힌 무용가가 있다. 전은선은 스웨덴 왕립발레단에서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무용수 출신 안무가다. 18년 동안 국내 무대와 해외 무대를 오가며 활동하던 그가 이번에는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벽>으로 안무가 데뷔를 한다.

전은선은 <벽> 다음에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발레로 만들고 싶어 하는 당찬 포부를 가진 안무가다. 우리가 잘 아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발레로 만든다면 <댄싱9>에 이어 발레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현역 스웨덴 왕립발레단 솔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국내에는 안무가로 첫 데뷔하는 전은선을 만났다.

- 무용가로만 있다가 이번에 안무가로 처음 데뷔한다.
"막이 오르는 그 순간까지 제가 가진 모든 걸 최선을 다해 보여드리고자 하는 심정 하나밖에 없다. 작품 만드는 걸 일찍 시작했다. 외국 안무가의 작품을 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수정하며 작업하는 중이다.

무용수 활동을 오래 했기에 안무가와 괴리감이 없다. 안무가의 입장에서 동작을 제시하면 무용수는 자신의 동작이 아니기에 물과 기름처럼 어긋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번에 작업할 때는 동작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걸러내는 식으로 안무 지도를 하는 중이다. 이는 제가 무용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벽>에서 관객이 벽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오브제가 있는가.
"벽이라는 건 상징성을 갖는다. 살면서 맞닥뜨릴 수 있는 억압을 벽으로 표현하기 위해 관처럼 생긴 네 개의 오브제를 들고 다니거나 세우는 식으로 벽을 상징한다."

-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안무가로 데뷔하는 작품으로 억압을 상징하는 <벽>을 택한 이유는.
"한국은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반면에 유럽은 진지한 작품이 많다. 안무 스타일이나, 무용수가 안무가를 대하는 스타일 모두 유럽이 진지하다. 유럽에서 무용수로 많이 활동했다. 유럽에서 활동하다 보니 유럽 스타일이 익숙했다. 유럽에 익숙한 소재를 끄집어낸 게 벽이다. 사실 벽은 살면서 누구나 겪는 문제다. 대중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려워 보일 수 있는 주제를 꺼냈다."

- 만일 남유럽에서 무용수 생활을 했다면 이번 안무 작품의 주제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북유럽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남유럽보다 진지하다. 일상생활을 할 때 FM대로 생활하는 부분이 많다. 북유럽에서 십 년 넘게 활동했다. 북유럽의 영향을 받아 진지한 면이 많다. 그래서 <벽>을 택했다."

- 작품 속 벽은 무언가를 가로막는 의미 외에도 뛰어넘어야 하는 초월의 의미도 있는가.
"작품을 준비하며 여러 가지 의미의 벽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억압하는 벽이 있는가 하면, 벽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욕망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벽은 보호의 기능도 한다. 예를 들어 집에 들어가면 집의 벽을 통해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다양한 벽의 느낌을 무용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무용 중에 벽이 무너지는 장면도 있다. 상징적으로 벽이 무너지면 무너진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와서 벽과 인간은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해외 진출로 부족한 부분 채워 왔다"
벽 으로 안무가 데뷔하는 스웨덴 왕립발레단 출신 안무가 전은선

▲ 벽 으로 안무가 데뷔하는 스웨덴 왕립발레단 출신 안무가 전은선 ⓒ 박정환


- 무용수로 활동하며 벽을 느낀 때가 있다면.
"한국에서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니버설발레단에 들어가고 1년 있다가 솔리스트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주역 무용수가 되었다. 한국에서 활동할 때에는 장벽을 몰랐다. 그런데 해외로 진출하고 보니 생각보다 장벽이 많았다.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인 차이, 한국에서 쌓아온 무용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부족한 부분을 해외 활동을 통해 알 수 있었다."

- 스웨덴 왕립발레단에서 활동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발레단이 스웨덴 왕립발레단이다. 스웨덴은 사회보장이 잘 된 나라다. 저처럼 외국에서 온 무용수도 안정적인 사회보장을 받을 수 있다. 무용수가 입는 의상 하나에도 몇 백만 원을 지출한다. 가발도 가모가 아닌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든 인모 가발이라 몇 백만 원 한다. 그런 가발과 의상이 몇 백 개가 있었다.

제 머리 사이즈를 재더니 제 머리에 맞는 가발을 제작하더라. 매 작품을 할 때 무용수 각각에 맞는 가발을 맞춘다. 만일 무대 의상에 모피가 들어가는 장면이 있으면 인조 모피가 아닌 진짜 모피를 제작한다. 왕립발레단이라는 건 공무원이라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무용수가 스웨덴의 보장을 받는 공무원이라는 의미도 있다."

- 한국에서 어떻게 스웨덴으로 건너갔나.
"발레는 스카우트가 거의 없다. 유럽에서 활동하고 싶어서 오디션을 보았다. 오디션을 볼 때도 비는 자리가 있어야 오디션을 볼 수 있지 내가 가고 싶다고 오디션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웨덴이 비는 자리가 없어서 맨 처음에는 독일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

독일 발레 오디션에 합격해서 독일에서 활동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스웨덴에서 콜이 왔다. 스웨덴 왕립발레단은 전통이 깊은 발레단이라 꼭 가고 싶던 발레단이었다. 스웨덴에서 오디션을 보고 입단했다."

- 스웨덴 있을 때 많은 경험을 했다.
"스웨덴 왕립발레단은 클래식 발레부터 모던 발레까지 폭넓게 소화한다. 그래서 무용수의 기량도 폭넓다. 무용수가 토우 슈즈를 신고 클래식 발레 <지젤>을 연습하다가 하다가 아침에는 모던 발레로 넘어간다. 한 무용수가 모던 발레와 클래식 발레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게 가능하다. 미국만 해도 모던 발레를 전문으로 하는 발레단, 클래식을 전문으로 하는 발레단이 나뉘어 있다. 클래식 발레 뿐만 아니라 모던 발레도 소화할 수 있는 스웨덴 왕립발레단 무용수의 폭넓은 역량을 높이 산다."

- <벽>을 끝내면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갈 예정인가.
"스웨덴 왕립발레단을 사임한 게 아니라 휴직한 상태라 스웨덴은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가능하면 한국에서 안무가로 정착하고 싶다. 한국에서 에너지를 쏟아 붓고 싶고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안무 기회가 많이 주어지면 해외에서 갈고 닦은 기량을 맘껏 보여주고 싶다.

안무가로서 이제 막 시작했다. 아이디어가 많다. <벽>을 마치면 한국 드라마나 유명한 한국 영화를 발레로 만들고 싶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발레로 만들면 노래만 들어도 어떤 장면인가를 관객이 알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전은선 스웨덴 왕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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