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항저우'입니다. 9월 23일부터 10월 8일까지, 5년 만에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장소입니다. 기다림 자체가 길었던 탓인지 선수들에게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어떤 때보다도 많이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런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현장을 더욱 깊고 진중하게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편집자말]
 28일 저녁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플뢰레 단체전?결승에서 홍세나 선수(왼쪽)가 중국과의 경기에 나서고 있다.

28일 저녁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플뢰레 단체전?결승에서 홍세나 선수(왼쪽)가 중국과의 경기에 나서고 있다. ⓒ 박장식


펜싱 플뢰레 여자 대표팀이 단체전에서 아시안게임 결승까지 진출, 은메달을 획득하는 이변을 써냈다. 펜싱 플뢰레 여자 단체전은 주축 선수들이 뛰던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도 동메달을 만들었는데, 이번에 메달 색을 한 단계 높였다.

28일 저녁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플뢰레 단체전 결승에 나선 대한민국의 홍세나, 홍효진, 채송오, 홍서인은 상대 팀인 중국을 상대로 앞서나가는 등 선전했지만, 막판 역전을 허용하며 은메달을 만들었다.

하지만 플뢰레 여자 대표팀은 주축 선수들의 은퇴에도 불구하고 '원 팀'이 되어 경기를 펼쳤다. 특히 선수들은 "은메달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며 이번 대회 결과를 아쉬움 반, 후련함 반으로 드러냈다.

중국 응원에도... 마지막까지 버텼던 선수들

앞서 남자 펜싱 대표팀 '어펜져스'가 금메달을 따낸 직후 펼쳐진 경기. 공교롭게도 앞선 경기도 한중전으로 펼쳐졌기에, 이어지는 플뢰레 경기에서 중국 관중들은 더욱 거센 응원전을 펼쳤다. 경기 시작 전부터 '중국 힘내!'라는 응원이 곳곳에서, 심지어 기자석에서도 크게 들렸다.

그렇게 시작된 경기. 대한민국은 홍세나가 처음으로 피스트 위에 서 열전을 펼쳤다. 이어지는 탐색전 끝에 한국은 중국에 1점만을 내준 채 선수를 교대했다. 이어 피스트에 선 채송아 선수는 공격적으로 상대와 맞서 싸웠다. 중국에 선취점을 내줬지만, 이어 채송아도 득점에 성공, 6대 6으로 두 번째 릴레이를 마쳤다.

세 번째 라운드에서는 홍효진이 균형을 유지했고,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여섯 번째로 피스트에 선 홍세나와 홍서인, 채송아는 계속해서 중국과 동점을 이어간 채 호각세를 이어나갔다.

한국은 일곱 번째 라운드에서 피스트에 오른 홍서인이 연속 득점을 바탕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중국의 왕이퉁에게 초반 두 점을 허용했던 홍서인은 강력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넉 점을 연달아 획득, 점수를 19대 17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막판 역전을 내주고 말았다. 여덟 번째 라운드에서 다섯 점 차이로 역전을 허용한 한국은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점수 차이를 좁히지 못하며 최종 점수 31대 34로 패배했다. 한국 선수들은 아쉬운 패배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메달권 후보에도 들지 않았던 평가를 이겨내고 은메달의 이변을 써내는 주인공이 되었다.

"5년 동안 준비한 노력... 한 단계 올라가 성장했다"
 
 28일 저녁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플뢰레 단체전?결승전이 마무리된 후 선수들이 믹스드존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다.

28일 저녁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플뢰레 단체전?결승전이 마무리된 후 선수들이 믹스드존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다. ⓒ 박장식

 
대표팀의 맏언니 채송오 선수는 "저희가 그 동안 같이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는 만족하지만, 5년 동안 준비한 노력이 하루에 끝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조금 더 좋은 결과가 있었다면 아마 어린 친구들이 더욱 시너지를 받아 좋게 나아가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 아쉬움에 눈물을 많이 흘린 것 같다"며 중국과의 패배를 아쉬워했다.

이어 채송오 선수는 "그 때는 베테랑 언니들이랑 같이 나갔었지만, 주축이었던 언니들이 빠진 지금은 우리가 최약체, 메달권이 아닌 선수들로 여겨졌다"며, "그래서 메달을 바라고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뤄낸 것이 언니들보다 한 단계 올라가 성장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이번 대회를 단평했다.

채송오 선수는 "운동하는 선수들은 다 안다. 지고 싶어서 지는 것이 아니다. 이긴다면 정말 좋겠지만, 모든 경기를 잘 뛸 수 없기 때문에 누구 하나가 못 하면 다른 누구 하나가 채워주는 것이 단체전이라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서로 더 보듬어주지 못한 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땄던 홍세나 선수 역시 "개인전 끝나고 단체전은 금메달을 따 보겠다고 언니들과 포부를 밝혔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그래도 홀가분하다. 몇 년 동안 언니들과 준비해온 것을 좋게 끝냈기 때문에 좋게 생각하려 한다. 오늘 모두 수고했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채송오 선수는 다음 대회 목표에 대해 "파리 올림픽은 지금 상황에서 출전을 목표로 준비했다"면서도, "3년 뒤 나고야 아시안게임은 내가 노장이라 기량이 괜찮다면 도전해보고 싶지만, 사실 조금 힘들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자카르타 동메달, 항저우 은메달에 이어 나고야에서는 후배들이 금메달을 딸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선수들은 시상대 위에서 <무한도전>의 정형돈이 했던 춤을 추며 올라갔다. 춤은 '무도 팬'인 채송오 선수의 제안이었다. 경기장에서의 노고, 그리고 한 점 남아있던 은메달의 아쉬움을 모두 벗어던진 선수들의 춤사위에 현장에서 지켜보던 한국 관중들에게도 웃음꽃이 피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펜싱 항저우 아시안게임 플뢰레 채송오 은메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