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2023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 MBC

 
올해 MBC 방송연예대상은 말그대로 인플루언서들의 잔치였다. 기안84(김희민)는 예상대로 대상을 석권하며 '비연예인으로서는 최초의 연예대상 수상자'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수립했다.
 
12월 29일 열린 <2023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기안84는 대상, 올해의 예능인상,베스트커플상, 올해의 프로그램상까지 주요 4관왕을 휩쓸며 대세로 등극했다. 웹툰작가 출신인 기안84는 몇 년째 고정출연인 <나 혼자 산다>와 여행예능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리즈에서 활약했다. 1984년 전신인 <MBC 연기대상-코미디부문>부터 시작된 연예대상의 역사에서 전문 연예인-코미디언이 아닌 인물이 대상을 수상한 것은 기안84가 40년 만에 처음이다.
 
긴장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 기안84는 "어릴때부터 TV에서 이영자 누나, 유재석 형님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면서 자랐다. 하루는 집안 분위기가 안좋았는데 TV를 트니까 예능에서는 웃고 있는 모습들이 나오니까 집안과 대비가 되더라. 아빠한테 '나도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재미있게 할 수 있어'라고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운명처럼 예능인의 길에 서게 된 계기를 돌아봤다.
 
이어 "아버지께 용돈 한 번 못 드렸다. 마지막까지 생활비만 받다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 생각이 난다. 제가 잘 된 걸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효도 한 번 못한 것 같아서 너무 아쉽다"고 세상을 떠난 부친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을 드러내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한 기안84는"유재석 형님, 전현무 형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꿈나라에 온 것 같았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외동아들이라서 좀 이기적인 편이었다. 이제부터는 좀 베풀고 살다가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하며 "내년 2024년에는 네잎클로버와 같은 행운이 함께 하시길 바란다. 언제까지 방송을 할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즐거워해주신다면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비연예인 최초' 기념비적 기록 수립한 기안84

기안84는 '패션왕' '복학왕' 등의 작품을 통하여 웹툰 작가로 처음 명성을 얻었다. 이전에도 게스트로 간간이 방송에 출연한 경험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방송활동은 2016년부터 MBC 관찰예능 <나 혼자 산다>에 고정출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기안84는 <나 혼자 산다>에서 집에서 홀로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편의점 도시락과 깡소주로 혼자만의 만찬을 즐기는가 하면, 웹툰 마감시간을 지키기 위하여 전전긍긍하는 등, 엉뚱하면서도 친근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미지 관리에 신경쓸 수밖에 없는 연예인 출연자들과 달리 흔한 30대 남성의 싱글라이프와 가치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리얼리티는, 오히려 기안84가 방송문법에 얽매이지않는 비연예인 출신이었기에 가능했던 자연스러움이었다.
 
<나 혼자 산다>가 정체성 변질과 시청률 하락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던 시절에도 기안84는 전현무와 함께 프로그램을 부활시킨 일등공신으로 꼽혔다. <나 혼자 산다>의 인기를 바탕으로 기안84는 이후 여러 방송 프로그램을 누비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고, 연말 연예대상에서도 버라이어티부문 남자 우수상(2018년), 최우수상(2021년)을 수상하는 등 한 해도 빠짐없이 초청받는 'MBC의 아들'이 됐다.
 
하지만 비연예인 출신의 약점이기도 한 정제되지 않은 언행과 스타일은 위기를 불러오기도 했다. 2020~2021년 사이 기안84는 웹툰 작품 내용에서 불거진 여혐-장애인 비하 논란, 방송내에서 상대 출연자들에 의한 따돌림 의혹 등으로 곤욕을 치러야했다. 기안84를 향한 비판과 동정론이 극과 극을 오가며 하차 요구가 빗발치기도 했다.
 
기안84는 부적절한 작품 묘사에 대하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했고, 근거없는 왕따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연출에 대하여 사과했다. 거듭된 논란에 한때 방송에서 눈에 띄게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기안84는 잠시 자숙의 시기를 거치며 재기에 성공했다.
 
장거리 달리기 도전, 혼자 놀기, 먹방, 해외 배낭 여행 등 기안 84는 자신의 가장 잘할 수 있고 진정성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콘셉트에서 가장 빛을 발했다. 방송경험이 늘어나면서 불필요한 언행이나 실수는 줄었지만, 자유분방하고 꾸밈없는 캐릭터 본연의 정체성은 유효했다.
 
대표작이 된 <나 혼자 산다>와 <태계일주>에서 이제 기안84가 없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엿한 프로그램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2023년 연예대상을 앞두고 현재 최고의 예능MC인 유재석과 전현무가 함께 대상후보로 있었음에도 대다수가 '기안84 대세론'을 예상했던 것은 그의 높아진 방송계 위상을 증명한다.
 
 2023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2023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 MBC

 
한편으로 기안84의 대상 수상은 현재 방송가를 휩쓸고 있는 '인플루언서 전성시대'의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이날 연예대상에서는 기안84 외에도 덱스, 빠니보틀, 오은영, 김대호.풍자 등이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모두 연예인이라는 전통적인 구분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다.
 
대표적으로 유튜버 출신 방송인 덱스(김진영)는 이날 전현무-이세영과 함께 MC를 맡은 데 이어 예능 남자 신인상까지 수상했다, 특수부대 UDT 출신의 덱스는 밀리터리와 서바이벌, 연예와 여행 예능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강인한 상남자와 귀여운 애교남을 오가는 매력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덱스와 함께 신인상을 공동수상한 김대호는 현직 MBC 아나운서로  자체 아나운서 유튜브 채널 <사춘기>와 <나 혼자 산다> 출연을 통하여 '근엄한 아나운서와 자연인'을 오가는 독특한 반전매력으로 뒤늦게 주목을 받으며 방송인생의 전성기를 열었다. 여자 신인상을 수상한 인터넷 방송인 출신 풍자는 걸쭉한 사이다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대변해주는 이야기꾼으로 활약했다. 시사교양 MC상을 수상한 오은영은 MBC <결혼지옥> 등 여러 방송의 상담-솔루션 프로그램을 오가며 국민 멘토로 활약중이다.

과거에는 연예인(演藝人, Entertainer)이 전문적으로 연예 산업에 종사하는 가수나 배우, 코미디언 등을 지칭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유튜브, SNS 등 대안 미디어들의 등장과 함께 온라인에서의 유명인을 뜻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들의 영향력이 높아졌고 이를 바탕으로 주류 방송계까지 진출하여 자리를 잡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기안84와 덱스, 곽튜브 등 연예산업 구조 내에서 학습된 기존 연예인-방송인들이 보여줄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매력'은 비연예인 출신 방송인들의 강점이다. 또한 백종원(요식업)이나 오은영(정신건강, 육아), 강형욱(반려견 훈련)처럼 특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역량을 인정받은 '전문가'들이 멘토로 나서는 솔루션 프로그램도 방송가의 인기 장르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제 앞으로는 방송가에서 연예인과 비연예인, 방송인과 인플루언서의 구분이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3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2023 MBC 방송연예대상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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