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회 골른글로브 시상식에 도착한 조 코이.

제 81회 골른글로브 진행자 조 코이. ⓒ AP Photo/연합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한 721쪽 분량의 퓰리처 수상작을 토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바비>는 큰 가슴이 달린 플라스틱 인형으로 만든 영화죠."

여성 차별을 풀어낸 영화가 시상식에서 차별적인 언행과 부딪힌, 그야말로 영화적 순간이다. 아카데미와 함께 미국 최고 권위 시상식으로 꼽히는 제81회 골든글로브에서 튀어나온 진행자 조 코이의 말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시상식 오프닝에서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화제를 일으킨 영화라며 함께 언급하였지만, <오펜하이머>와 상반된 어감으로 <바비>를 소개한 것이다.

그의 농담은 <바비>가 탈피한 '바비'의 차별적인 전형성을 다시 끄집으며 시상식 현장과 시청자를 얼어붙게 했다. <미국 타임지>는 "성가시고, 논쟁적이며, 굉장히 불편하게 만드는 농담"이라 칭했고, <더 가디언지>는 "호스트가 아주 형편없는 공연을 제공했다"고 혹평했다. 그가 말한 '큰 가슴이 달린 플라스틱 인형'이야말로 작품이 상영 시간 114분 동안 극복하려 애쓴 바비 인형을 둘러싼 차별이었다.
 
모두가 아는 노래 '아임어 바비 걸'이 소송당한 이유
 
I'm a blonde bimbo girl in a fantasy world.
(나는 환상적인 세계에서 사는 머리가 텅 빈 금발 머리야)
Dress me up, make it tight, I'm your dolly.
(나를 달라붙게 입혀 줘, 나는 너의 인형이야)

조 코이의 발언처럼 바비 인형은 '아름다운 플라스틱 인형'의 대명사였다. 특히 1997년 발매된 아쿠아의 히트곡이자 '아임어 바비 걸, 인 더 바비 월드'하는 후렴구가 특징인 노래 <바비 걸>에서 알 수 있다. 노래 속 바비는 자신을 '머리가 텅 빈 금발 머리'라 칭하며 원하는 대로 자기 머리를 빗기거나 옷을 입히라는 가사가 담겨있다.

즉, 바비 인형을 통해 수동적인 여성상에 대한 성적 은유와 차별적인 인식을 노래한 것이다. 이후 제작업체 매텔사는 해당 곡이 '바비의 명성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소송한 바 있다. 더불어 여성 신체를 지나치게 마르게 표현한 바비 인형의 모양이 여성에게 이상적인 몸에 대한 왜곡된 우려를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시대가 변화할수록 바비 인형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자 동시에 정형화된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 <바비> 스틸컷

영화 <바비>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영화 <바비>는 바비 인형의 전형성에 의문을 가지며 출발한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주인공 '바비'는 노래 <바비걸>처럼 파티만 즐기다가 불현듯 "죽음이란 뭘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머리가 텅 빈 줄 알았던 바비가 드디어 인생이란 파티가 끝나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진실을 찾기 위해 현실 세상에 나서지만, 불완전한 바비 옆에 완벽한 조력자는 없다.

자신을 갖고 놀았던 여자아이들은 어느덧 자라 바비 인형의 차별적인 면모를 폭로하기 바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바비를 향해 성희롱하기 바쁘다. 게다가 바비가 현실 세계를 탐험하는 동안 켄이 바비랜드를 점령하고 만다. 바비의 액세서리였던 켄이 이젠 바비에게 행동과 말투를 지적하고 있다.

영화 속 바비는 바비 인형처럼 밝은 미소만 띠지 않는다. 켄에게 빼앗긴 바비랜드를 보며 좌절하다 못해 우울증에 걸리고 '내가 아닌 다른 바비가 되찾아줄 것'이라며 문제를 회피하기도 한다. 완벽한 바비 인형은 사라지고 차별적인 세상에 주눅 든 바비가 등장한 순간, 그는 영화 속 현실 세계의 여성들, 그리리고 영화를 관람하는 진짜 여성들과 공명하기 시작한다.

결국, 바비들과 현실 속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바비랜드를 되찾게 되고 마침내 완벽한 바비랜드를 떠나 하이힐 대신 편한 샌들을 신고 여성의학과를 방문하는 인간 바비의 삶을 택한다. 인형일 때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부르던 그가 검진을 위해 병원으로 향하는 엔딩은 완벽하되, 인위적인 플라스틱 인형의 삶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현실을 택한 바비 자신에 대한 은유이자 현실 속 여성들을 향한 살아있음의 예찬이기도 하다.
 
언제나 여성의 삶에는 바비가 있다

영화 <바비>의 도입부는 1968년 개봉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헌정한다. 아기 인형만 가득하던 완구 시장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여자 인형 '바비'가 등장한 것이 얼마나 센세이셔널했는지 들려준다. "어린 소녀들에겐 꿈을 투영할 수 있는 인형이 필요하다"는 바비 인형의 창시자 루스 핸들러의 말처럼 소녀들은 바비를 갖고 놀며 엄마 역할 말고 다양한 삶과 직업군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여자아이들의 놀이를 넓혀주었던 바비 인형이 정형화된 미의 상징이 되고, 다시 여성 차별을 유쾌하게 풀어낸 시대적 아이콘으로 탈바꿈한 것. 그 중심에는 영화 <바비>가 있다. 특히 영화 <바비>는 바비처럼 분홍색 옷과 핑크 음료를 마시거나 바비처럼 입은 채 함께 영화 관람하는 '바비 챌린지'로 이어지며 미디어를 향유하고 즐기는 관람객의 패러다임마저 변화시켰다.

지난해 박스오피스에서 13억4200만 달러(약 1조7731억원)의 수익을 기록하며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 2부>를 제치고 워너 브라더스의 최고 흥행작이 된 <바비>. 전 지구적 '바비'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가 여전히 시상식에선 '큰 가슴이 달린 플라스틱 인형이 나오는 영화'라 불리는 현실. 영화 대사처럼 현실 세계는 여성에게 완벽하지 않지만, <바비> 같은 영감을 주는 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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