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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노래하는 시인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방랑시인들의 노래를 '랩소디'라고 불렸는데, 이들은 그리스 방방곡곡을 방랑하며 영웅들의 이야기를 우리나라 판소리처럼 랩소디로 읊조리며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이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이것이 그리스 전설과 신화의 뿌리가 된다. 입으로 전해 오는 역사, 신의 이야기, 영웅들의 무용담은 서로 뒤섞여 차츰 역사성이 흐려지고 환상적인 이야기로 변해갔다.

이를 전하는 수많은 방랑 시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가 '호메로스'이다.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원전 800년경에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지었다.

<일리아드>는 아가멤논이 지휘하는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공격하는 이야기이다.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했던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함락 후 고향에 돌아가기까지의 10년간의 긴 방랑 생활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진진하여 당시의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도 세상 사람들이 즐겨 읽는다. 특히 알렉산더는 <일리아드>를 굉장히 좋아하여 이 서사시의 1만5693행의 문구를 모두 암송하였다고 한다.

<일리아드>는 '일리오의 노래'라는 뜻이며 '일리오'는 트로이의 옛 이름이다. <일리아드>는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의 공방전이 종말에 가까울 무렵 약 50일간에 생긴 일을 다룬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이다.

 트로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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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배경은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는데 독일에서 태어난 하인리히 술래만은 소년 시절에 아버지가 준 선물 <일리아드>를 읽고 너무나 감동하여 자신이 트로이의 유적을 꼭 찾아내리라 결심하였다. 수많은 노력 끝에 그는 다르다넬스 해협 부근인 터키의 히사르리크 언덕에서 마침내 트로이의 유적을 발견하였다. 전설이 아니라 실화였다.

"아들이 죽는 걸 안 봤으니 복이 많은 분이지"

 트로이 들판. 지평선 너머가 다르다넬스 해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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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영화 <트로이>의 한 장면이다. 야심한 밤, 아킬레스와의 결투로 죽은 트로이의 왕자 '헥토로'의 시체를 찾으러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은 적진 깊숙이 있는 아킬레스의 집으로 살며시 찾아왔다. 그는 그리스의 전쟁 영웅 아킬레스의 손을 꼭 잡고 간곡히 부탁한다.

"차마 하기 힘든 일을 난 방금했네. 아들을 죽인 자의 손에 입을 맞췄어."
"난 장남이 죽어 전차에 끌려가는 걸 보았네."
"시신을 돌려주게. 합당한 장례는 치려야 되잖겠나!"

"난 자네 부친을 알아. 젊을 때 요절하셨지."
"아들이 죽는 걸 안 봤으니 복이 많은 분이지."

"허나 어쩌겠나. 다 신의 뜻인 걸. 작은 자비만은 베풀어 주게."
"그 앨 위해 기도하고 저승 노잣돈을 개 눈에 얹게 해 주게."

이처럼 부모의 마음을 애달프게 나타나는 글이 어디 그리 많을까? 이와 같은 명문을 수없이 반복하는 <일리아드>는 세상 최고의 이야기꾼의 이야기답게 처음부터 흥미롭다.

뮈르미돈의 왕 펠레우스는 바다의 요정 테티스를 아내로 맞이한다. 이들의 혼인 잔치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고, 저 높은 올림포스 산의 신들도 초대되었다.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 가는 참인데 초대되지 않은 손님 하나가 불쑥 그 자리에 나타났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였다.

에리스는 어디에서든 불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 혼인 잔치에도 초대되지 않았는데 그런 에리스가 그 자리에 나타나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선 자기가 당한 모욕을 복수하겠다고 벼르는 것이었다.

복수하겠다고 하고서 돌아선 에리스가 한 일은 잔칫상을 향해 황금 사과 한 개를 던진 것밖에는 없었다. 에리스가 던진 사과는 과일 접시와 포도주 잔 사이에 놓여 있었다. 손님 중 하나가 허리를 구부리고 그 사과를 집어 올렸다.

사과의 한 귀퉁이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 기막힌 문구가 '뉴욕을 태풍으로 강타하는 북경의 나비 짓'이 된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메넬라오스 왕의 아내 '헬레네'를 유혹해 달아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트로이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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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로이>는 원정을 위해 군사는 모으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히 먼 3200년 전의 이야기이다. 절세미인의 아내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에게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심한 모욕감을 느껴 형인 강력한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에게 트로이에서 헬레네를 되찾아 동생의 명예를 지켜줄 걸 부탁한다.

이를 수락한 아가멤논 왕은 또 하나의 목적인 자신이 지배하는 거대한 왕국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맹국들의 군사를 모아 트로이를 공격한다. '프리아모스' 왕이 통치하고 용맹스러운 '헥토르' 왕자가 지키고 있는 도시 트로이는 이전에 그 어떤 군대도 정복한 적이 없는 철통의 요새였다. 트로이 정복의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인간인 펠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불세출의 영웅, 위대한 전사 '아킬레스' 뿐이다.

아킬레스는 어린 시절, 어머니 테티스가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강에 담갔을 때 손으로 붙잡고 있던 발뒤꿈치에는 강물이 묻질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되었지만 인간 중에는 당할 자가 없을 만큼 초인적인 힘과 무예를 가져 모든 적국 병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아킬레스는 전리품으로 얻은 트로이의 여사제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 왕이 빼앗아가자 몹시 분노해 더 이상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칩거해버린다. 아킬레스가 전의를 상실하자 연합군은 힘을 잃고 계속 패하게 되고 트로이의 굳게 닫힌 성문은 열릴 줄을 모른다.

결말이 나지 않는 지루한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양쪽 병사들이 점차 지쳐갈 때쯤, 이타카의 왕인 꾀주머니 오디세우스가 절묘한 계략을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목마를 이용하여 트로이 성을 공략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트로이 목마는 성으로 들어가고 마침내 성은 함락된다.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건 명예가 아닌 사랑이었다

 트로이 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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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사랑이 한 나라의 문명을 파괴시킬 만큼 거대한 전쟁을 일으키고, 자존심을 건 양국의 싸움은 피바람 날리는 전쟁터에 불멸의 신화를 탄생시킨다. 그가 아가멤논이 이끄는 군대와 함께 트로이 공격에 나선 것도 그의 그칠 줄 모르는 명예욕 때문이었지만 결국 그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건 명예가 아닌 사랑이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오늘날 시각으로 관찰해보면 트로이는 전략적 요충지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지중해와 흑해 사이에는 마르마라해가 있다, 사탕을 싼 듯한 이곳은 몹시 좁은 해협이 2곳 있는데 위쪽은 보스포러스 해협이고 아래는 다르나넬스 해협이다. 위의 도시는 훨씬 후에 생긴 이스탐불이고 아래의 대표 도시는 트로이이다.

 보스포러스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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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적인 역사도 세월이 흐르면 전혀 다른 전설이 된다. 오늘날 치르고 있는 이 숱한 전쟁들은 역사가 전설이 되는 먼 세월 뒤에는 무엇으로 이름이 남을까? 돈, 명예, 사랑, 석유. 아마 먼 훗날 역사가들은 '인간의 탐욕'이라고 기록하지 않을까?

트로이 아킬레스 일리아드 호메로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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