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 즐거운 인생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 cj엔터테인먼트


추석연휴를 맞이하여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을 가족들과 함께 관람을 했다.

영화가 끝난 후 나를 제외한 가족들의 평은 "재미있었다!" 일색이었으나 평소에 "가을을 탄다"는 남자들에게 "못났다"고 폄하하던 내가 졸지에 가을을 타버렸다.

'소시민적인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던 그들, 그러나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들이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활화산'이라는 밴드를 결성한 것은 1984년이다. 그러니 386세대인 셈이다.

영화에는 그 당시 시대상황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그것이 오히려 이 영화를 식상하게 만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비슷한 세대가 지켜보기에는 불편한감이 없지 않았다.

84학번이었다면 1987년 6월 항쟁까지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가장 치열했던 학번이 아니던가!

그러나 어쩌면 그런 시대상황에서 밴드를 결성해서 대학가요제에 나가고자 했던 그들은 당시 대학가의 분위기에서 배척(?) 혹은 설익은 비판으로 인해 소외된 삶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시대가 주는 아픔과 자신들이 이루고 싶은 꿈 사이의 갈등이 없었을 리 없다. 어쩌면 대다수가 운동권(?)이었던 386세대에서 그들은 변방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이 된 현실에서도 여전히 소외된 삶을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인생은 참으로 '아픈 인생'이다.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버렸다. 중고차 가계를 하며 기러기 아빠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몸부림이나 낮에는 퀵서비스에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까지라도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려는 몸부림은 눈물이 난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가장은 무능한 가장이다.

시대에 맞춰 살아가는 여성들을 모두 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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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를 묻기에는 시간이 짧았던 탓일까? 이 영화에서는 이 시대에 맞춰 살아가는 여성들을 모두 악처로 만들어버렸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서야 부인들이 남편들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듯 환하게 웃는 모습을 클로즈업시켜 주었지만 그 약발이 얼마나 갈 것인가?

'불놀이야'라는 노래를 부를 때 처음으로 그 노래로 인해 눈물을 흘렸다. 나는 왜 눈물을 흘린 것일까? 그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과 몇 가지 공통점들 때문이었다.

그 몇 가지 공통점은 나도 84학번이라는 점, 대학가요제를 나가고 싶었다는 점, 절친하던 친구들을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 보낸 일들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경험을 했다는 점, 주변에 그 등장인물들과 같은 친구들이 있다는 점….

그러고 보니 그것은 나만의 공통점이 아니라 이준익 감독의 의도였다. 지금 중년을 살아가는 386세대 누가 보아도 주인공들에게서 어떤 공통점들을 발견하게 하는 치밀한 각본이 <즐거운 인생>이라는 영화가 노린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우울해지기 시작한 마음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 더 많이 우울해졌다. 영화를 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민수야. 뭐하냐. 너 <즐거운 인생>이라는 영화 봐라, 거기 네 이야기 나온다."
"지금 막 보고 나오는 중이거든, '즐거운 인생'은 개뿔…. 나 가을 타게 생겼다."

"우리도 밴드 하나 결성할까?"
"돌았니? 그건 영화고 우린 현실이야. 꿈께."


나는 바로 고등학교 때 밴드결성까지는 아니지만 대학가요제를 꿈꾸며 지하를 얻어 기타치고, 노래부르고, 드럼을 치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야, 너 <즐거운 인생>이라는 영화 아냐? 그 영화는 절대로 보지 마라."
"영화 볼 시간이 어딨냐? 나 영화 본 지 오래됐다."
"바쁘냐?"
"안 바쁘면 우리 식당에 와서 설거지나 해라."
"됐다 임마, 아무튼 시간 나도 그 영화는 보지 마라."


아내는 조금 당황스러워 한다. 그날 밤 한숨을 푹푹 쉬는 나를 보면서 "자기도 즐거운 인생 살고 싶어?"라고 묻는다.

"나? 지금도 즐거워, 조금 버겁긴 하지만."

가을에 이런 영화를 내놓다니 이준익 감독은 나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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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나쁜 영화다. 그러나 한번쯤 내가 꿈꿔왔던 삶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영화기도 하다.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하지 말고 가볍게 보면 좋을 것 같다.

조금 심각하게 보면 나처럼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아도 가을 타는 남자들이 많은데 가을에 이런 영화를 내놓다니 이준익 감독 나쁜 사람이다.

그날, 아이들과 아내의 눈빛이 다른 때보다 따스해졌다. 그리고 사흘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약발이 살아있다. 고마운 영화다.

영화관을 나올 때 막내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 고마워."

그 한 마디에 나는 바빠서 영화도 볼 시간이 없다던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너 아무리 바빠도 <즐거운 인생> 꼭 봐라. 그런데 혼자는 절대로 보지 말고, 가족들과 함께 봐라."

덧붙이는 글 <우리 가족의 특별한 추석 풍경> 응모글
즐거운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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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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