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이 지난해 11월 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주최 수요정책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이 지난해 11월 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주최 수요정책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대체 : 29일 오후 6시 40분]

임기를 1년 반이나 남겨둔 채 돌연 사의를 표명한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장이 이임사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완화 등 금융규제 완화 정책을 맹렬히 성토했다.

이 원장은 29일 금융연구원 홈페이지에 "한국금융연구원을 떠나면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글 상단에 '이임사를 대신하여'라는 설명을 달았지만, 사실상 그의 이임사인 셈이다.

이 원장은 이 글에서 "이제 여러분을 더 이상 지켜드리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었다"며 사의를 표명한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한갓 쓸데없는 사치품 정도로 생각하는 왜곡된 '실용' 정신, 그러한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이제는 제가 더 이상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것.

"금산분리 완화 합리화 논거 만들 수 없었다"

이 원장은 이어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다"고 탄식했다.

"정책실패의 원인을 정책의 오류에서 찾기보다는 홍보와 IR에서 찾는 현 정부의 상황 판단 앞에서, 잘된 것은 모두 내 탓이요 잘못된 것은 모두 네 탓이라고 보는 현 정부의 인식 앞에서, 결정은 내가 할 테니 너희들은 그저 일사불란하게 따라오기만 하라는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 사고방식 앞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비판의 잘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이 현 정부의 갈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에 불과할 것이다."

그는 특히 "정부의 정책을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연구원이나 연구원장은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마 제거되어야 할 존재인 것 같다"며 "경제성장률 예측치마저도 정치 변수화한 이 마당에 그것은 아마 당연한 일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돌이켜보면 정부의 정책이 지금처럼 이념화된 적도 흔치는 않았던 것 같다"며 "적어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 정책의 논의 과정이 생략되고 사고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 이처럼 철저히 무시된 적도, 아니 봉쇄된 적도 흔치는 않았던 것 같다"고 비판했다.

"경제적 논리와 경험적 증거보다는 주의와 주장만 난무하는 무리한 정책,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정책,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기보다는 특정 집단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 그 앞에서 사고와 아이디어의 다양성이 인정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에 근거한 활발한 정책 토론 또한 불편할 것이다."

이 원장은 외국 금융기관 사례를 들어가며 현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금산분리 완화 정책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뒤, "저희 연구원으로서는, 그리고 저 개인으로서도 정부의 적지 않은 압력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합리화할 수 있는 논거를 도저히 만들 재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의 사의 표명이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압력에 의한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 이 원장은 "'법에 규정'된 원장의 임기를 부정하는 '법치' 정부의 이중 잣대 앞에서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달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희생하는 대가로 연구원의 원장직을 더 연명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자조했다.

그는 또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개정안은 금융 분야의 대운하 정책과 다르지 않다"며 "한번 국토를 파헤치고 나면 파괴된 환경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일단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면 이를 되돌릴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운하 정책이나 금산분리 완화정책이 쉽게 포기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기 때문인 것 같다. 특정집단의 이익이 상식을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밖에 달리 결론지을 수 없는 것 같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4대강 정비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삽질을 하다가 나중에 슬쩍 연결하면 대운하가 된다고들 한다. 재벌의 은행소유한도를 4%에서 10%로 올려 일단 발을 들여놓고 나서 나중에 슬쩍 조금만 더 풀어주면 되니까 이것도 닮은꼴이다."

이 원장은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처에 대해서도 "거듭된 오판과 실정으로 경제위기를 키우고 있다"고 성토했다.

"좌-우, 진보-보수, 네 편-내 편, 네 탓-내 탓 가르기에 집착하다 보니 정부의 관심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정부는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표출과 논의를 막고 싶은 것 같다. 위기상황에 대한 판단마저도 정책적으로 왜곡되고 수시로 번복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정책대응에도 실기를 하는 것 같다."

그는 "서로 상충되는 정책이 남발되고, 위기는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며 "그러니 국민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커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끝으로 연구원들에게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정부의 요구에 맹목적으로 따라서는 안 된다"며 "금융연구원의 품격을 유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동걸 원장의 갑작스런 사의 표명으로 금융연구원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한 상태다. 연구원 소속 한 박사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줄곧 이동걸 원장에 대한 직간접적인 사퇴 압박이 있었던 데에 큰 부담을 느낀 것 같다"며 "연구원이 생긴 이래 원장의 중도하차가 처음이라 다들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급작스런 사임... 이명박식 코드인사 재현되나

이동걸 금융연구원장
 이동걸 금융연구원장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동걸 원장은 3년 임기 가운데 절반을 남겨놓고 지난 28일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이 원장의 사퇴로 후임 원장이 선임되기 전까지는 금융연구원은 박재하 부원장 직무대행 체계로 운영된다. 1991년 금융연구원이 설립된 이래 금융연구원장이 임기를 마치지 않고 도중에 사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원장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 대통령 경제비서실 행정관으로 일한 이후 10여 년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금융정책 입안에 관여해왔고, 2007년 7월 금융연구원장에 취임했다.

금융연구원은 은행들의 출자로 설립된 민간 연구기관이지만 정부가 금융감독 정책을 고리로 은행들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그러나 이 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완화 등 주요 이슈가 나올 때마다 토론회나 강연 등을 통해 현 정부의 정책기조와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특히 대표적인 '금산분리 완화론자'인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된 것이 그의 사의 표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앞서 지난 2004년 9월 금감위 부위원장이었던 이 원장은 당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취임한 뒤 1개월 만에 석연찮은 이유로 물러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1·19 개각' 이후 이동걸 원장을 필두로 또다시 이명박식 코드인사가 재현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임사 전문] "더 이상 여러분을 지켜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으로..."

덧붙이는 글 | 이동걸 원장이 올린 글 "한국금융연구원을 떠나면서"는 한국금융연구원 홈페이지(http://www.kif.re.kr/) '공지사항'의 '일반공지'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