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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은 올해 중학교 2학년이다. 아이가 중1이던 지난해 봄과 여름, 이성 친구 문제로 딸과 어지간히 싸웠다. 부모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남자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난 단 한 번도 내 아이들에게 "공부 잘하는 친구하고만 놀아라"라거나 아이가 어울리는 친구들의 단점을 먼저 말한 적이 없다. 때문에 사귄다는 남자 아이도 그저 평범한 아이려니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년 선배라는 그 아이는 무단결석에 흡연까지, 패거리를 짜 패싸움을 벌여 청소년 감호소(?) 같은 곳까지 이미 경험한 아이였다. 퇴학을 위해 무단결석을 한다는 그 아이는 한참 공부할 시간인 한낮에 동네에 미리 와 죽치고 있다가 아이를 낚아가기도 했다. 어떤 부모가 내 딸의 남자친구로 이런 아이를 용납할 수 있으랴.

딸 아이 '남친'의 문자 메시지 "너 생리는 언제 하니?"

아이의 남자친구 문제로 집안이 날마다 발칵 뒤집혔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헤어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거짓말. 거짓말이 들통 나 다시 집안이 뒤집히고 딸은 다시 약속을 했다. "며칠만 시간을 주면 이번에는 정말 어떻게든 끊겠다"고. 그러나 다시 거짓말 일뿐.

타이르고 설득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함께 쇼핑도 해봤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결국 회초리를 드는 날까지 많아졌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는 그 아이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스무 대도 넘게 여러 차례 맞아 멍투성이가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간섭하고 야비할 정도로 감시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날이 생기자 휴대폰이 더욱 몸살을 앓았다. 심지어는 새벽 1시에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괘씸하고 어이가 없었다. 휴대폰을 압수했다. 휴대폰 비밀번호를 캐물어 전화를 낱낱이 뒤졌다. 하루 수십 건도 넘는 전화 통화와 주고받은 수많은 메시지들.

"너 생리는 언제 하니?"

이 메시지를 보는 순간 눈앞이 노래졌다. 워낙 소문도 안 좋은 아이였다. 때문에 난 온갖 걱정, 온갖 의심을 했다. 이젠 단지 그 아이가 불량해 반대한다는 것의 차원을 넘어 부모로서 참으로 불행한 그런 불안한 의심(진한 스킨십)과 내 딸을 데리고 사라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까지,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내가 의심하는 그런 일은 없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의심과 고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확실하지도 않은 추측만으로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도 안 되고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을 들켜서도 절대 안 될 것이기에.

그리하여 난 촉수를 모두 세워 아이를 낱낱이 탐색하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 미혼모가 나오면 아이를 드라마로 끌어들여 이야기를 나누며 눈치를 살피거나 의견을 묻기도 했다. 심지어는 아이의 생리날짜를 계산해보기도 했다.

딸 아이의 성교육은 항상 난감하다. 사진은 최연소 엄마, 아빠 탄생이라는 화두로 많은 논란이 됐던 영화 <제니 주노>의 한 장면.
 딸 아이의 성교육은 항상 난감하다. 사진은 최연소 엄마, 아빠 탄생이라는 화두로 많은 논란이 됐던 영화 <제니 주노>의 한 장면.
ⓒ (주)컬처캡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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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의 이런 고민은 얼마 후 쉽게 사라졌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아이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으며 내 마지막 조치에 속은 아이는 늦여름 어느 날 그 아이와 헤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그때는 날마다 엄청난 지옥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그때 내게 지옥만 안겨준 것이 아니다. 아이의 몸에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한 상황'을 고민하면서 난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딸의 성교육에 너무 무관심하고 무지하다는 것을. 학교의 성교육에만 너무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깊은 반성을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아이가 여성의 몸이나 이성친구 등 성에 대한 것을 물어오면 가장 살갑고 솔직한 대답을 해주는 엄마가 돼야지'라고.

난 이때부터 아이와 의도적으로 여성의 몸과 성에 관한 이야기들을 자주 나누곤 했다. 아이에게 우선 필요한 것들을 위주로 정보를 찾아보는 등 나름대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어쨌건 1년이나 지난 현재, 아이는 내게 성에 관한 것들을 수시로 묻는다. 제 몸의 작은 변화들을 시시콜콜 들려 줄 때도 많다.

"아줌마는 말이야, 남자가 옆에서 자기만 해도 임신 되는 줄..."

며칠 전 아이가 단짝 친구 둘을 집으로 데리고 와 공포 영화를 보고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 딸에게 정말 필요한 성교육은 무엇일까? 내 딸의 또래들은 어떤 고민을 할까?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성문제는?

그래서 난 아이들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며 간식을 조금 마련해 공포영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마침 공포영화가 끝났다. 하지만 '성에 대한 고민'을 묻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쳐다보면서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난 궁여지책으로 아이들이 쉽게 대답해 줄 것 같은 학교 성교육에 대해 물었다.

"재미없어요. 듣는 애들 거의 없어요. 우리들도 알 건 다 아는데, 숨기고 알려주는 것 같아요. 만날 같은 내용만 틀어줘요. 그리고 궁금해도 물어볼 수도 없잖아요. 한 교실에서 성교육을 하고 그것을 다른 반도 함께 보거든요. 어떤 것은 남학생들이 있어 쑥스럽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애들 대부분 성교육을 별로 관심 없어 하는데요."

'우리들도 알 건 다 알고 있다? 글쎄? 정말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이들이 성교를 사실대로 알고 있나?' 참 궁금했다. 그런데 물어보자니 참 난처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난감한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불현듯 나의 사춘기가 떠올랐다.

"아줌마가 웃긴 이야기 해줄까? 아줌마는 말이야. 고2 때까지 남자가 옆에서 자기만 해도 임신이 되는 줄 알았지 뭐니? 우리 집에 잔치가 있었어. 손님이 워낙 많이 왔지. 그런데 오빠가 내 옆에서 자려고 눕는 거야. 그래서 난 깜짝 놀라 도망쳐서 장롱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잤어. 임신이 되면 안 되잖아. 겁이 났거든. 임신을 할까봐. 웃기지 않니? 그런데 너희들은 임신이 어떻게 되는 줄 아니?"

아이들은 이런 나를 어이없어 했다. 난 아이들의 짤막한 대답들과 표정으로 요즘 아이들이 성교에 대한 구체적인 것들까지 모두 알고 있다고 판단했다. 어쨌건 내가 이처럼 먼저 사춘기 때의 '참으로 우스운' 고민을 털어놓자. (내가 파악하기로는) 셋 중 성격이 가장 활달한 Y가 '아기가 어떻게 나오는지' 제일 궁금하단다. 

내가 알고 있는 임신과 출산과정을 모두 알려줬다. 내친김에 여학생들이 알아야 하는 생리주기와 날짜 계산도 아울러 알려줬다. 아이들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애초 예상했던 30분이 이미 훌쩍 지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젠 저들이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이들과 이날 1시간이 넘도록 나눈 이야기들은 남자친구, 성폭행 방지와 대처, 여학생들의 가출과 위험, 남자친구에게 결혼 전까지 절대 허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 미혼모와 매춘, 인스턴트식품과 흡연 때문에 생기는 미혼 여성들의 폐경과 여성의 병 등 여학생들이 꼭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이중 3분의 2는 아이들이 먼저 물어온 것들이었다.

이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이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전혀 모르거나 그냥 지나치고 말 것들이기도 했다(이건 어디까지나 내 판단이고 올해 중2 여학생인 내 딸과 그 친구들 이야기지만).

남학생-여학생이 한 교실에서 성교육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성교육이라고 하면 난자와 정자의 만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 EBS 성교육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우리나라의 성교육이라고 하면 난자와 정자의 만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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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덕분에 요즘 아이들은 성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참 많이 알고 있다. 때문에 생리나 임신 등의 이론은 잘 안다. 그러나 정작 생리가 임신을 하지 않은 난자의 결과물이란 것까지는 모른다. 또한 생리주기는 알지만 계산하는 법은 모른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이날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성에 대한 이론과 관련 사례를 담은 슬라이드나 비디오로 교육을 한단다. 그런데 이런 교육이 아이들에겐 재미가 없다. 좀 더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물어보고 싶지만 대부분 이론 교육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물론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시간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성에 대해 민감한 아이들, 성관련 단어만 나와도 낯이 붉어지는 아이들이라 용감하게 물어보지 못한다. 게다가 남학생과 여학생 한 교실에서 같은 자료로 성교육을 한다? 글쎄, 이 상황에 궁금한 것을 물어볼 여학생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성문제를 남자 앞에서 물어볼 수 있는 성인 여자가 얼마나 될까?

엄마나 언니에게 물어본다? 다행이 엄마나 언니가 성의 있게 제대로 알려준다면, 그리하여 아이의 가장 살가운 상담자가 되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렇게 쓰고 있는 나부터 사실 아이의 성교육이 어렵고 조심스럽고 난감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이들에게 성은 내 몸의 문제가 아니라 또 다른 수업이 되고 이론일 뿐이다. 그러니 성교육 시간은 당연히 따분하다. 또한 궁금하지만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고 자상하게 대답해주는 어른이 없으니 자꾸 은밀한 문제, 민감한 문제로 감추어야 하고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 것이 아닐까?

난감한 성교육, 엄마의 막중한 사명감

성교육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학교에서의 성교육을 지금처럼 남학생과 여학생이 같은 자료로 함께 할 것이 아니라 구분하자는 것이다. 둘 다 모두 알아야 하는 문제와 여학생 관련, 남학생 관련 세분하여 그에 맞게 교육을 하자는 것.

여기에 보충되어야 할 것은 궁금한 것들을 언제나 쉽게 물어볼 수 있는 자상하고 살가운 전문가다. 그리하여 지금처럼 외부에서 온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알려주고 시간에 맞춰 끝낼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질문과 답을 해주는 방식이 좋겠다는 것.

여기에 부모들은 아이의 성교육에 훨씬 용감해지고 적극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아이들이 물어볼 때 터부시하거나 설명을 할 수 없어 어물거리지는 말자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들로서는 상당히 힘든 부분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성교육 전문가와 연계, 뜻있는 엄마들끼리 그룹을 짜 '엄마의 성교육' 등을 하는 것은 어떨까? 

내 경험상 미혼모나 성폭행, 매춘, 부부문제 등과 관련된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을 함께 보면서 가정에서 교육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때 부모의 생각만 일방적으로 고집하기 보다는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정리해 봐도 딸의 성문제는 여전히 힘들고 번번이 난처하다. 하지만 이때마다 나를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내 아이, 특히 내 딸의 문제는 엄마인 내가 가장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어떤 큰 고민과 문제도 엄마가 우선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엄마라는 막중한 사명감이다.


태그:#청소년 성교육, #내딸, #미혼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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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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