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포스터

크리스마스 캐럴 포스터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참 진부한 표현이지만 한 겨울에 이파리가 다 지고 떨어져 차갑게 얼어있는 듯 껍데기를 손으로 만지면 부스러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마른 나무 같다


갈 곳 없어 한 겨울에 추위에 떠는 집 잃은 사람들을 위해 기부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시나요? "추운데 수고 많으십니다. 그래야죠, 돕고 살아야죠." 아니면, "좋은 일 하십니다. 하지만 저희도 사정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라서요."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속마음은 어떻든 좋은 일을 하러 온 사람들에게나쁜 말은 하기 힘들지.


이런 상황을 한번 생각해보자.혼자 사는 것이 안타까워 명절 때라도 함께 하자며 초대를 해준 친척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러분께서는어떻게 반응하시겠는가? 호의에 감사하며 함께 한다, 아니면, 불편한 마음을 감춘 채 정중하게 거절을 한다. 이런 상황 역시 쓸데없이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요즘 TV에서큰 활약을 보여주는 독설가 김모씨라든지 박모씨를 능가 할 정도로 강한 독설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방송녹화 때 설정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 한 명 알고 있는데. 추운 겨울의 마른 나무 같은사람, 그가 스크루지다.


 크리스마스 캐럴 스틸 컷

크리스마스 캐럴 스틸 컷


자선 사업가들에게 "이 나라에는 어차피 사람들로 가득 차 있으니 필요 없는 사람(집이 없는 사람)들을 전부 감옥으로 보내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유일한 조카의 초대를 한 마디로 거절해 버리는 냉혈한, 죽으면서 자신에게모든 것을 남긴 동업자 말리의 장례식 비용도 아까워하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구두쇠 스크루지! 그가 짐캐리의 익살스럽고 공포스런 표정연기 함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살아 돌아왔다.


백 투 더 퓨쳐 시리즈의 유쾌한 상상력과 포레스트 검프의 따뜻한모험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2년 만에 3D 애니메이션크리스마스 캐롤을 선보였다. 2년 전 베오울프를 통해 실제 배우인지 그래픽인지 구별이 안가는 훌륭한 기술을 선보였기에 이번 작품도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짐 캐리의 다양한 표정과 몸동작이 그대로 녹아 있는 캐릭터 구현과 디킨스 풍의 런던을 3D 입체영상으로 여행하는 재미는 이제껏 나온 크리스마스캐롤 버전 중 자신 있게 최고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이 영화의 매력은 저메키스의 유명세도, 뛰어난 기술력도, 연출력도(이세가지 모두 최고지만) 아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영화로, 뮤지컬로, 만화로 재탄생 되어 진부하기 짝이 없는 디킨스의 원작을 고스란히 화면에 담아 낸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지쳐서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 작지만 따뜻한 촛불 하나를 되살려 주는 디킨스의 교훈이 이 영화의 커다란 내세울 거리이다.


앞서 설명했듯 스크루지는 희대의 구두쇠로 지나가는 개도 피하고, 거지마저도 그 앞에서는 구걸을 하지 않는다. 그의 직업은 확실치 않으나 (좋게 말하면) 개인금융업에 종사하는 듯 하다. 그런 그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죽은 말리가 찾아온다. 살아 생전에 작은 사무실에 갇혀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해 원통해 하는 말리의 유령은 스크루지에겐 공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말리가 떠난 뒤 하나 둘 찾아 오는 유령들은 스크루지를 시간 여행으로 이끌며, 그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과거의 유령

 

스크루지에게도 크리스마스를 즐기던 때가 있었다. 사랑도 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학교에서 고독하게 지냈던 상처가 남아 있었나 보다. 그는 악착같이 일을 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런 그를 떠나는 약혼녀, 세상엔 돈 밖에 없다, 스크루지와 늘 함께 하는 것은 돈이다.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지만 돈은 그를 버리지 않는다.


현재의 유령

 

오로지 돈 밖에 모르는 구두쇠 영감은 세상 사람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가난하지만 식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스크루지의 서기 밥 크랏치는 늘 그에게서 냉대를 받지만 진심으로 그를 위하고 기도해준다. 스크루지의 조카 프레드는 사람들과의 만찬에서 그를 조롱했지만, 그가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사람들이 스크루지를 버렸던 것일까? 스크루지는자신의 현재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잘못이 있음을 깨닫는다.


과거의 유령

 

죽음을 보게 되면 살고 싶어지는 것일까? 그제서야 삶의 참 행복을 알게 되는 것일까? 과거의 유령, 즉 죽음의 사자에 쫓기며 스크루지는 자신의 삶이 덧없음을 안타까워한다. 그의 죽음 앞에는 달랑 돌로 된 비석 하나와 싸늘한 목관 뿐이었으니. 


위의 세가지 유령 중에서 스크루지나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것은단 한 가지밖에 없다. 과거나 현재는 우리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바꿀 수가 없다. 아무리 뛰어난 전기 작가를 고용해 자신이 걸어 왔던 삶들을 아름답게 꾸며도, 진정 자신이 경험했고 행했던 모든 일들을 자신의 마음 속에서 살아 숨쉰다. 그것들이 아픈 상처가 되든 달콤한 사탕이 되든, 그것들은 한데 어우러져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다. 즉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삶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스크루지는 과거의 아팠던 기억들을, 상처를 돈으로 움켜 맺고 돈으로 지우려고 노력했다. 돈만이 그의 진정한 친구이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증거라 믿었다. 그리고 돈이 있다면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증거들은 스크루지의 믿음을가차없이 깨버렸다.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사람이 아닌 메마르고 얼어버린 나무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그의 과거에 대한 증거이다.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이것이자기 자신을 부정했던 비열하고 비겁한 스크루지의 가슴 속 아주 작은(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공간에 희미하게 숨을 내쉬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온정이라는 촛불이 전해준 속삭임이다. 스크루지가 그 촛불을 마음 속에서 커다란 장작불로 지필 때 비로소 가장 무서웠던과거의 유령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당당하게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작은 여유를 남겨보자. , 명예, 그리고 그것들로 인한 고민들, 걱정들, 나를 옥죄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찬찬히 설계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꼬여만 가고 풀리지 않는 답답한 세상살이를 남의 탓, 남들이 만들어 놓은 부조리한 세상 탓으로만 돌리지 말자. 모든 문제는 내 안에 있다. 조용히 앉아 내 안의 촛불을 찾아 보자. 그리고 그의 희미한 속삭임을 들어보자. 스크루지와 같이 다 죽어가던 늙은이도 변화시킨 그 주문을….


크리스마스 캐롤이 크리스마스가 아닌 11월 말에 개봉된 것이 많이 의아했다. 적어도 12월 중순쯤 개봉 했더라면 시기적으로 딱 들어 맞았을 텐데. 하지만 영화를 보고 제작진과 배급사, 그리고 저메키스 감독에게 감사를 보낸다.1달이라는 시간, 그 시간은 참으로 충분한 시간이다! 나를 찾기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궁금하다고? 진심으로 우리 모두 스크루지처럼 되길

2009.11.29 11:55 ⓒ 2009 OhmyNews
크리스마스 캐롤 로버트 저메키스 짐 캐리 디킨스 스크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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