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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구나..."

 

한 달 만에 침몰된 천안함 함수가 인양됐지만 아직까지도 그 전모를 정확히 알 수 없다. 함수가 인양된 현장을 실황 중계한 TV들은 사고원인을 근거도 없이 어뢰로 몰아가는가 하면 함수 피해 정도에 대해서도 상반된 언급을 하는 등 답답함을 주기만 한다. 휴일 이른 아침 뉴스를 듣다가 답답한 마음에 길을 나섰다가 깜짝 놀랐다.

 

차디찬 바다 속에서 건져 올린 두 동강이 난 배를 놓고 원인모를 분석을 쏟아내는 방송과 신문들이 오락가락 엇갈린 발언과 기사들을 주목한 사이에 천지는 온통 꽃밭으로 변해 있었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복숭아꽃, 배꽃, 진달래꽃 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시철가'의 한 대목이 절로 입에서 흘러나온다.

 

국제영화제 개막 앞두고 앞 다퉈 시작된 꽃의 대향연

 

'언제 이렇게 화사한 색으로 갈아입었지?'

'국제영화제 개막을 꽃들도 알아차린 걸까?'

 

수줍음을 머금은 신비한 아름다움의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어 도무지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몰랐다. 오는 29일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개막될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주변은 늘 다니던 산책길이다. '자유, 독립, 소통'을 주제로 다음달 7일까지 9일간 장편 131편, 단편 78편 등 총 209편이 상영된다. 영화 미학의 새로운 흐름을 엿보고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작품들이 대거 포진했다는 게 영화제 측 귀띔이다.

 

개막작으로는 화려한 도시를 배경으로 배우를 꿈꾸는 외로운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 박진오 감독의 데뷔작 '키스할 것을'이, 폐막작으로는 멕시코 출신의 페드로 곤잘레즈-루비오 감독의 영화 '알라마르'가 각각 선정됐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주변이 더욱 달리 보인다. 활짝 핀 복숭아꽃과 배꽃, 철쭉 등이 함께 어우러져 시선을 몽롱하게 사로잡는다. 영화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개막작이 펼쳐질 주변은 벌써 형형색색 꽃들의 공연이 시작됐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주변의 낮은 능선을 따라 길게 펼쳐진 전주시 덕진구 건지산과 가련산 은 온통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하얀색 꽃들로 뒤덮여 있다. 덕진공원, 전주동물원, 최명희문학공원,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잇는 도로와 마을, 주변 산들은 봄의 향연이 한창이다. 눈부시고 아름답다.

 

봄날의 눈부시고 아름다움이 더욱 소중해지는 이유는?

 

하수상한 시절이어서인지 봄날의 눈부시고 아름다움이 더욱 소중해진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던 시인의 표현이 절절히 다가온다. 각박한 삶을 살아오면서 잊은 지 오래지만 화사한 봄날 꽃을 보면서 음미하기에 제격인 시인 것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시인 김춘추의 '꽃' 중에서

 

분홍 빛 복숭아꽃 유혹에 끌려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지천에 널린 하얀 배꽃과 마주한다. 분홍색 일색이던 수채화가 갑자기 하얀색으로 변해 금세 숨을 멈추게 한다. 뿐만 아니리 도로엔 어디서 본 것 같은 낯선 꽃들이 길게 줄지어 안내한다.

 

복숭아꽃, 배꽃 저리 눈부신 기쁨으로 함께 피어날 수 있을까?

 

꽃잎이 어느새 하나둘 힘없이 나뒹구는 연분홍 벚꽃은 소박하다. 진분홍 복숭아꽃과 하얀 배꽃에서 비로소 봄이 절정이 느껴진다. 산은 연둣빛으로 물들어가고 온통 초록이 짙어질 무렵이면 이곳 복숭아꽃과 배꽃은 늘 장관이다. 과일도 씨알이 굵어 인기가 좋다. 김선광 시인의 '봄꽃을 위한 론도'가 장관을 이룬 봄의 전령사들 앞에서 머릴 스친다. 

 

꽃에게 어떤 아픔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적지 않은 아픔이 있어서

저리 눈부신 기쁨으로 함께 피어나는가.

꽃에게 어떤 기쁨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적지 않은 기쁨이 있어서

저리 눈부신 아픔으로 함께 지는가.

- 시인 김선광의 '봄꽃을 위한 론도' 중에서

 

복숭아꽃, 배꽃이 봄을 대변하는 듯하다. 붉은 빛 태양아래 울긋불긋 피어오른 복숭아꽃과 배꽃이 함께 하니 화사하기 짝이 없다. 철쭉과 진달래도 이에 질세라 한데 어우러져 봄을 대변하느라 한창이다. 또 버드나무와 풀잎은 이슬비에 젖어 싱그럽기 그지없다. 봄의 화려함과 생동감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옛 선비들에게 꽃은 그 요염한 아름다움, 고혹적인 자태 때문에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선비는 겉가죽의 화사함이나 아름다움에 주목하여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사물의 이면에 있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법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빙자옥질(氷姿玉質)과 오상고절(傲霜孤節)의 빙벽 같은 내핍의 윤리도 봄바람에 풀어질 때도 있는 법. 복사꽃, 배꽃, 진달래꽃과 함께 온 천지가 울긋불긋해질 때가 되면, 마음은 절로 흥겨워진다.

 

세월이 하수상하니 마음까지 봄이 되진 못하는구나...

 

이런 봄밤에 복사꽃 피어나고 달조차 떠오른다면 어느 누가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도원경(桃源境)에서 도도한 흥취를 즐기고 싶지 않겠는가?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남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나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받고 싶다던 이해인 시인의 시가 딱 어울리는 계절이다. 하지만 봄은 봄이로되 마음까지 봄이 되지 못함은 세월이 하수상하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꽃밭에 서면 큰 소리로 꽈리를 불고 싶다.

피리를 불 듯이

순결한 마음으로

꽈리 속의 잘디잔 씨알처럼

내 가슴에 가득 찬 근심 걱정

후련히 쏟아 내며

꽈리를 불고 싶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동그란 마음으로

꽃밭에 서면

저녁노을 바라보며

지는 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싶다.

남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나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받고 싶다.

- 시인 이해인의 '꽃밭에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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