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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분투를 보면서

도올 김용옥은 세상이 다 아는 전방위적인 지식인이다. 특히 도올의 동양철학과 신학에 대한 폭과 깊이는 세칭 그 세계의 전문가라는 이들에 비해 한 차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대한 안티도 제법 있지만 나는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특히 그가 우리 기독교에 가하는 일침은 광야를 헤매는 고독한 선지자의 외침으로 받아들인다.

도올의 기독교에 관한 주장 중 핵심은 성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소위 정통 기독교라고 하는 곳에서 성경은 성령에 의해 쓰인 것이라 일점일획도 틀릴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도올에게 그것은 황당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도올은 성경이 문명의 산물인 이상 인간의 창작물에 속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인간의 지혜의 소산으로 분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올의 주장은 기존의 통념을 뒤엎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기에 그의 말마따나 맹목적 신앙과 보수적 교단의 이해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충격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충격이 우리 신학의 발전을 위한 이성적 토론으로 연결되지 않고 깊은 갈등의 골을 만든다는 점이다. 이렇기에 도올과 같이 사회 통념을 깨는 대담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다. 아니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용기는 곧 의기소침으로 바뀌기 십상이다.

도올 김용옥의 <도올의 도마복음 한글역주 3>
 도올 김용옥의 <도올의 도마복음 한글역주 3>
ⓒ 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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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 전 도올이 최근 출간한 <도마복음한글역주>를 읽다가 이런 대목을 발견하고 한동안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 내가 사는 집 근처에도 무슨 대학선교단체가 있는데 성경을 끼고 우리 집 앞을 지나다니는 젊은이들이 나에게 부드럽게 인사 한번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내가 인사를 건넬 눈길조차 주질 않는다. 도대체 이게 웬일일까? 나도 한때 신학대학을 다닌 사람이요, 목사 후보가 되었던 사람이요, 가산을 탕진해서 다 교회에 바친 집안의 자식이다. 그리고 그들이 신주처럼 모시는 성경에 관하여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지식이 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도대체 내가 언제 이토록 회피와 기피의 대상이 되는 '왕마귀'가 되었는가." (<도마복음한글역주 3>, 22쪽)

천하의 도올도 우리의 소위 정통 기독교인들에게는 '왕마귀'로 인식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말이다. 이 말에서 나는 도올의 크나큰 한(恨)을 읽는다.

왜 한국의 기독교는 도올의 주장을 들으려 하지 않고, 단지 사탄의 음성으로 치부하며 귀를 막는가. 도대체 정통은 무엇이고 이단은 무엇인가. 그리고 누가, 무엇으로, 그것을 판별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말하면 정말 안 되는 것인가.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왜 사회는 그것을 막는다는 말인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이야기'를 해도 그럴 수 있다고 하면서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회는 과연 꿈속에서만 존재하는가.

그래도 하나는 다행스럽다. 도올이 그런 말을 하고 다닌다 해도 지금 이 땅이 그를 잡아다 주리를 트는 야만의 시대는 넘어섰다는 것이다. 설혹 그가 마음의 상처는 크게 받겠지만 중세 유럽에서 빚어진 이단 소동을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도올이 만일 그 시대에 그런 말을 하였다면 광화문 광장에서 능지처참을 면치 못 했을 테니 말이다.

<사상의 자유의 역사>에 대하여

책 <사상의 자유의 역사>(존 배그넬 베리 저/박홍규 역, 원제 A History of Freedom of Thought) 겉그림.
 책 <사상의 자유의 역사>(존 배그넬 베리 저/박홍규 역, 원제 A History of Freedom of Thought) 겉그림.
ⓒ 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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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 권의 책이 생각난다. 존 B. 베리가 쓴 <사상의 자유의 역사>(박홍규 옮김)이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한 세기 전인 1914년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사상의 자유라는 주제를 서양의 종교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개관한 학술적인 성격의 책이다.

이 책은 주로 지난 2천 년 동안 서양에서 기독교의 교리와 주장을 의심하라고 주장한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양사에서 사상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기성의 권위와 맞서 싸웠던 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소크라테스, 갈릴레이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조르다노 부루노, 스피노자, 볼테르, 장자크 루소, 로저 베이컨, 존 로크, 제임스 밀, 토머스 페인, 프란시스코 페레르 등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수많은 이성의 신봉자들이 종교적 권위와 세속의 권력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인간의 이성의 해방을 위해 싸웠다. 물론 그들 중 많은 이가 이단으로 처벌받거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추방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우리는 적어도 20세기의 인류는 가장 소중한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베리는 말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가 권위주의와 독재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약되었을 때 지식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970~80년대 젊은이의 사상의 은사였던 고 리영희 선생은 교도소에서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선생은 70년대 말 광주교도소에서 사상범으로 복역하면서 사상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이 책을 통하여 더욱 갖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분에게 있어 사상의 자유를 막는 권력의 이념은 중세의 종교적 권위와 다를 바가 없었으며, 그것은 또 하나의 우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 책을 번역한 박홍규 교수도 대학 시절인 70년대 초 유신헌법 하의 살벌한 긴급조치 속에서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당시 이 책을 만난 감상을 이렇게 회상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정의,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학문의 자유 같은 이단의 언어들은 사전 속 활자로만 존재할 뿐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숨조차 쉬기 힘든 질실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 이 책은 나에게 사상의 오아시스이자 사상의 자유를 고뇌하는 근거가 되었다." (10쪽)

이처럼 이 책은 인간의 기본적 자유가 부인되던 권위주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의 지식인들에게 역사의 희망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일정한 역할을 한 책이다.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자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영원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대도 인간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의 역사를 보아도 명확하다. 권위주의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정권이 들어서면 자유를 위한 투쟁도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자유란 한 번 얻어졌다고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나타난 일련의 보수화 물결은 인권의 위축을 가져왔고 우리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심각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사상의 자유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서구사에서 정착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말 그대로 반면교사라 생각한다.

존 B. 베리는 누구인가?

존 B. 베리(John B. Bury)는 아일랜드 모나핸에서 1861년 태어났다. 그는 아일랜드의 포일 대학과 트리니티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1893년부터 9년간 트리니티 대학에서 현대사 교수를 지냈다.

1903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부임하여 유럽 고대사를 비롯해 역사학 전반에 걸쳐 학문적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1927년 사망할 때까지 강단을 지키면서 그리스 로마사를 비롯하여 비잔틴사와 19세기 현대사 분야를 연구하였다.

특히 영어 사용 역사가들이 소홀하게 취급했던 비잔틴사의 재생을 위해 노력하였다. 로마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의 저작을 편집하였고, 1919년 시작한 '케임브리지 고대사'의 편집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1927년 로마의 개신교 묘지에 묻혔다.

유혈의 호수에 가로놓인 사상의 역사

베리가 보건대 세상의 역사(비록 서구의 역사이지만)를 사상사적인 면에서 보면 사상의 자유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당연한 권리가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상의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알지만 그 권리는 무수한 투쟁을 통해 얻어진 것이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지만 사상의 자유야말로 유혈 낭자한 전장터 한가운데서 피어난 장미꽃과 같은 것이다. 베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상의 자유가 어떤 식으로든 가치 있으려면 그것은 언론의 자유를 포함해야 한다. … 우리는 언론의 자유에 너무 익숙해져 그것을 하나의 당연한 권리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 권리는 아주 최근에야 획득되었으며 그것을 얻는 데 이르는 길에는 유혈의 호수들이 가로놓여 있었다." (20~21쪽)

왜 우리가 이런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얻는데 유혈의 강을 건너야 했는가. 그것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상의 보수성에서 찾아야 한다. 어떤 사회든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주류적 사고는 그 사회의 기본질서를 형성한다. 따라서 이 이 기본질서에 사람들이 역행하면 그 반응은 냉담하다. 아니 냉담을 넘어 죄로 단죄한다.

"인간사회는 일반적으로 사상의 자유, 또는 달리 말해 새로운 생각에 반대해왔다. ... 평균적인 두뇌는 본래 게으르며, 가장 저항이 적은 노선을 취하려는 경향이 있다. ... 보통 사람들은 이 친숙한 세계의 기성질서를 뒤집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적대적이다. ... 보통 사람들에게 기존의 믿음과 제도에 의문을 던지는 새로운 생각과 의견은 사악한 것으로 보인다."(20쪽)

종교적 권위에 대항하는 이성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만든 권위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증명이 가능한 권위다. 만일 어느 역사 선생님께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그것을 학생들이 믿는다면 그것 역시 선생님의 말씀이라는 권위에 존중하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권위는 그것이 의심될 때 언제라도 증명할 수 있고, 만일 그것이 거짓으로 판명되는 순간 그 권위는 무너진다.

또 다른 권위는 증명될 수 없는 권위이다. 종교적 권위가 이것을 대표한다. 예수는 신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의 교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도 증명할 수 없음에도 신자 사이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된다. 믿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라는 기독교의 교의가 여기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일반인의 사상은 확인될 수 있는 사실만이 아니라 권위에 의지하여 받아들였으나 확인도 증명도 불가능한 믿음과 의견들도 포함한다. …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은 교회의 권위에 의존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삼위일체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비록 증명이 불가능할지라도 그 권위가 주장하는 바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26쪽)

사상의 자유의 역사에서 항상 문제가 된 것은 후자의 권위, 곧 종교의 권위와 관련되었다. 증명될 수 없는 교의를 내세우고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은 이성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많은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그 경우 기존의 종교는 그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만일 어느 사람이 예수를 신의 아들이 아닌,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하자. 교회는 그를 어떻게 했던가. 처음에는 그런 믿음을 바꾸라고 설득하겠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물리적 폭력이 동원되었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다. 종교가 하나의 교리로 정립하면 그것은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사상의 역사에서 종교와의 갈등은 필연이다. 이성을 가진 자는 반드시 종교의 교의와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 종교는 그것을 포용하기보다는 그를 이단으로 내몰고 급기야는 그의 생명까지도 거두려 한다. 베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보수적인 본능과 그 결과로서의 보수적인 교리는 미신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만일 사회구조-모든 관습 및 견해들을 포함하여-가 종교적 믿음과 긴밀히 결합되어 신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간주되면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은 불경함의 혐의를 띠게 되고, 종교적 믿음에 대한 비판은 초자연적 권력의 분노를 직접적으로 도발하는 것이 된다." (21쪽)

이성의 역사로서의 인류 역사


그러나 베리는 종교적 권위가 아무리 강고해도 그것에 도전하는 이성을 결코 잠재우지 못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역사이고, 사상의 역사에서 가장 핵심이라는 것이다. 중세를 생각해 보라. 그 종교적 권위가 얼마나 대단했는가. 말 한 번 잘못하면 화형을 면치 못했다. 종교적 권위는 물리적이고 도덕적인 폭력을 행사하였고, 법적으로 강제하였으며, 사회적 비난을 무기로 삼아 이성을 공격하였다.

그럼에도 이성은 유일한 무기인 논증을 기초로 그런 압제 속에서도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인간은 종교라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에 의해 크게 제약되었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신뢰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습관과 제도를 조금씩 바꾸어 나갔다. 그리하여 새로운 문명, 사람의 생각하는 자유와 그것을 표현하는 자유가 있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베리는 이러한 자유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제한 없는 토론의 자유가 중요했음을 강조한다.

"만일 문명의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순전히 인간의 능력 범위 내에서 확보될 수 있는 정신적·도덕적 진보의 최고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상과 토론의 완전한 자유이다." (265쪽)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인간사회가 발전해왔다면 그 원동력이 무엇일까. 적어도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말한다면 '이성에 의한 회의'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권위에 의심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내 앞에 던져진 권위에 대하여 그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의심해 보는 인간들이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베리는 책 말미에 "너의 부모를 믿지 말라"라는 말을 한다. 잘못 들으면 망측한 말로 들릴 것이다. 효를 도덕의 근본으로 하는 문화에서 이 같은 말이 어떻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베리의 말을 잘 음미해보자. 그것은 권위에 맹목으로 복종하지 말라는 말이다. 어떤 권위라도 의심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성을 가진 사람의 바른 자세다. 그러니 나는 "너의 부모를 믿지 말라"는 말을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자 한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한국의 사상의 자유, 국보법의 운명을 말할 때이다

경찰이 대학생 경제연구모임인 '자본주의연구회' 회원 9명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고 3명을 체포한 가운데, 지난 3월 21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서 한국대학생연합회 소속 대학생들이 결의대회를 열어 이명박 정부의 학생운동 탄압 중단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경찰이 대학생 경제연구모임인 '자본주의연구회' 회원 9명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고 3명을 체포한 가운데, 지난 3월 21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서 한국대학생연합회 소속 대학생들이 결의대회를 열어 이명박 정부의 학생운동 탄압 중단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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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자유의 역사>를 읽으면서 우리 상황을 생각하면 그 내용이 조금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주로 서구의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사상의 자유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한 사상의 자유와는 거리가 있다. 해방 후 반세기 이상 우리 사회의 사상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보다는 주로 정치 이념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사상의 자유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철저히 부인되었다. 정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문명국가에서 누리는 완전한 사상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제7조를 보라.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조항은 우리의 사상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옥죄는 법이라는 권위의 4번 타자이다. 이 법을 잘못 사용하면 정권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북한정권과 동일시하여 감옥에 넣을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자칫 말 한마디가 치명적일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세상이 태평성대인 것 같아도 우리는 언제든지 사상범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야 처음부터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문제가 심각하다. 출범 첫해만 주춤하더니만 그다음 해부터 국보법 사건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2009년 57명이 입건되더니 2010년에는 무려 60%나 증가하여 97명이 입건되었다. 그들 사건들도 내용을 따지고 보면 여전히 절반 이상은 국보법 7조 위반 사건이다.

국보법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북한이 제시하는 어떤 정책도 동의할 수 없게 만든다. 아니 그것 이상으로 북한에 대해서는 적대적으로 생각하고, 적대적으로 표현하여야 이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국보법 적용의 역사는 어떤 사람의 주장이 북한의 주의주장과 결과적으로 동일하기만 해도 북한을 찬양·고무, 동조하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우리가 남북한과 관련된 말을 하고자 한다면 북한의 주의·주장을 전부 찾아보고, 북한이 말하지 않은 것만을 골라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감옥에 갈 것을 각오해야 한다.

서구는 천 년 이상 종교적 권위에 이성이 도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근세사에 들어 국가 권력이 만든 권위에 도전하는 이성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다. 비록 그 내용은 다르나 본질은 다를 수 없다. 종교는 도전하는 이성을 이단시하면서 폭력으로 대응하였으나 결국 이성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서구사회의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는 모두 이성의 도전에서 얻어낸 결과가 아닌가.

대한민국도 필시 그런 역사를 걸어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국가 권력이 아무리 국보법을 무기로 사상의 자유를 제한한다 해도 결국 이성의 도전에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완전한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그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을 정지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반세기 우리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땅에 떨어진 국보법의 현주소가 바로 그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이 땅의 사상의 자유를 위해 국보법의 운명, 이제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찬운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 교수이자 변호사이다.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1 - 이집트·이스라엘 초기기독교 성지순례기

김용옥(도올) 지음, 통나무(2008)


태그:#사상의 자유의 역사, #존 B. 베리,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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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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