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인> 포스터 이상일 감독

▲ 영화 <악인> 포스터 이상일 감독 ⓒ 도키엔터테인먼트

한여름 장맛비에 어울릴 만한 영화가 등장했다. 사람에 대해 깊이 침잠하게끔 하는 보기 드문 작품이 2일 오전 왕십리 CGV에서 소개되었다. 이 자리엔 영화를 제작하고 각본을 쓴 이상일 감독도 함께 했다.

한국 개봉을 앞두고 방한한 이상일 감독은 "원작에서 '누가 악인인가'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악인인가'라는 질문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면서 "지방과 도시 격차라는 일본의 현실과 함께 사람의 욕구와 애정, 욕망이 뒤섞여 감정과 내면들이 묶여 있기에 영화로 만들만 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악인>은 지난해 열린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인의 창 부분에 초청돼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07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던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재일교포 감독 이상일이 메가폰을 잡았다. 각본은 이 두 사람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이 감독은 <식스티 나인>과 <훌라 걸스>라는 작품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누가 범인인가, 누가 나쁘냐'로 시작되긴 하지만 인간이 갖고 있는 선과 욕망에 대해 더 파볼 수 없을까로 출발했습니다. 제가 30년 이상 살아오면서 잘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고자 하는 시도였기에 지금의 러닝타임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13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관객들에게 부담으로 다가가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이 감독의 답이었다.

<악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모를 보면 하나같이 일본 영화계에서 스타로 추앙 받는 이들이다. 주인공인 츠마부키 사토시는 <워터보이즈>(2001)로 일본아카데미 우수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상대역을 한 후카츠 에리는 <악인>을 통해 몬트리올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조연 배우들도 화려하다. <도쿄타워>(2007) <걸어도 걸어도>(2008)의 키키 키린, <쉘 위 댄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2006)의 에모토 아키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베테랑 배우다.

"주인공을 맡은 츠마부키 사토시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자진해서 역을 맡게 되었다"고 말한 이상일 감독은 "후카츠 에리는 전부터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였다"며 "관객들이 기존 유명배우들의 이미지들을 지울 만큼 영화에 몰입하게 싶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캐스팅한 배우들 모두 오랜 경험이 있기에 연기 수준의 판단은 의미 없다"고 하면서 "이들이 풍겨내는 분위기와 존재감이 있고 배우 이전에 인간의 냄새가 있다, 그것이 영화에 그대로 담겨있다"라고 배우들의 면모를 설명했다.

몰래 사모했던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

 2일 낮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악인> 시사회에서 이상일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츠마부키 사토시와 후카츠 에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 <악인>은 2010년 일본에서 개봉했으며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가 2007년 발표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2일 낮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악인> 시사회에서 이상일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츠마부키 사토시와 후카츠 에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 <악인>은 2010년 일본에서 개봉했으며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가 2007년 발표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 이정민


"내 개인적으로 일본에선 대체할 배우가 없다고 생각하는 키키 키린씨가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고 말한 이 감독은 봉준호 감독에 대한 특별한 생각을 언급했다. 그는 영화 상영회 전날에도 봉준호 감독을 만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감독은 "나 혼자 몰래 존경하고 있었는데 언론에 보니 다 나왔더라"라며 "일본엔 <마더>같은 심지가 강한 영화가 없는데 봉준호 감독을 통해 작업하는 동안 많은 힘을 받았다"고 말했다.

인물들의 내면연기가 중심인 만큼 극에 몰입하게 하는 사운드 역시 중요하다. <악인>의 음악을 담당한 히사이시 조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가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여러 작품에 참여했다. 이 감독은 "대가와 함께 작업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영화가 배우들의 얼굴에서 시작되고 그들의 표정과 몸짓이 중요하기에 사운드가 그것을 능가하지 않는 선으로 함께 조율했다"고 말했다.

인간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과의 만남, 영화 <악인>은?

만남을 위한 사이트에서 만난 여성을 우발적으로 죽이게 된 유이치(츠마부키 사토시). 이후 같은 같은 사이트에서 알게 된 미츠요(후카츠 에리)과 사랑에 빠지고 둘이 함께 도피하면서 겪게 되는 심리변화가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 내용이다. 여기에 이들을 둘러싼 주변인물들이 사건의 흐름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내용의 입체감을 더한다.

영화엔 크게 두 종류의 시선이 등장한다. 우발적이라지만 살인자는 나쁘다는 세간의 시선과 그 살인자를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이해하고 용서하려는 이들의 시선이 그것이다. 이 모든 시선은 서로 감응하거나 대립하면서 갈등을 만들어 낸다.

 영화 <악인>의 후반부 장면

영화 <악인>의 후반부 장면 ⓒ 도키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없다는 보편진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들에게 직접 '이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판단하게끔 한다. 내용만 던져놓고 마는 무책임함이 아니라 살인자의 내면과 그를 사랑하게 된 여인부터 죽임을 당한 여인과 그의 가족, 또 그들의 이웃과 지인들의 시점을 고루 보여준다. 배우들은 극의 흐름에서 튀거나 묻히지 않고 충실하게 자신이 맡은 역을 해낸다.

원작인 소설과는 달리 영화 <악인>에선 주인공의 배경이나 상황이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성패와 연결될 수 있다. 서술로 설명되지 못한 부분들을 배우 각자가 이미 내재한 채 연기로 표현해 설득력을 얻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호방하고 유쾌한 이미지의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츠마부키 사토시는 지난 달 있었던 첫 시사회 때 "내 안에 없는 우울함을 연기하는 게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말한 바 있다. 후카츠 에리 역시 촬영이 없는 날에도 항상 나와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지 고민했다는 후문이다. 일본 스타 배우들의 연기 변신 역시 이 영화를 감상할 좋은 지점이다. 영화는 오는 9일에 개봉한다.

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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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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