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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읽었던 책,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을 다시 읽었다. 소설을 읽은 지 너무 오래돼서일까. 그때 받은 감동이나 느낌은 아직도 아련하게 느껴지는데 소설의 구체적인 내용은 안개처럼 흐릿했다. 책을 구입하고도 며칠을 접어둔 채 다른 책을 몇 권 읽었고 <마의 산>을 읽기 시작한 뒤에도 중간에 다른 책을 또 한 권 읽었다. <마의 산>(토마스 만/을유문화사) 상권에서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고 진행과 묘사가 정교하게 쪼개어져서 한 땀 한 땀 천천히 지나갔듯, 나 역시 상권은 천천히 읽었고, 하권에서는 시간이 갑자기 빠르게 흘러가고 진행속도가 빨라졌듯이 읽기 또한 뭉텅 뭉텅 휙휙 지나갔다.

 

<마의 산>에서 죽음에 애착, 다시 삶으로!

 

<마의 산>(토마스 만/을유문화사)은 1912년 토마스 만이 그의 아내가 가벼운 폐렴 증상이 있어 스위스의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하여 3주 가량 묵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요양원에서는 그에게도 폐렴 증세가 있으니 입원하라는 권유를 들었지만 주인공 카스토로프처럼 거기 머물지 않고 하산하였다. 1912년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기 시작하여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바로 <마의 산>이다.

 

<마의 산>은 스위스 다보스에 있는 폐결핵 요양원 베르크호프를 일컫는 말이다. 소설은 함부르크 조선소에 취직이 확정된 23세의 청년 한스 카스토르프가 스위스 다보스에 있는 폐결핵 요양원 베르크호프를 방문했다가 폐결핵 증세를 보여 7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스 카스토로프는 3주간의 계획으로 사촌 요하임을 방문하기 위해 요양원에 올라오지만 폐결핵징후가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고 마적인 분위기에 휩쓸린다. 특히 그곳에 요양 중인 러시아 출신 클라브디아 쇼샤 부인에게 빠지면서 더욱 더 아래 시민세계를 잊어간다. 세템브리니는 한스 카스토로프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저 아래 시민세계로 복귀하라고 충고하지만 그는 새겨듣지 않는다.

 

차츰 그는 죽음의 세계, 마의 산에서 익숙해져 가고 쇼샤 부인에게 빠져든다. 7개월 후 사육제날 저녁에 쇼샤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날 밤을 함께 보내는데, 다음날 쇼샤 부인은 산을 내려 가버리고 그는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쇼샤 부인은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오지만 기대와 달리 페퍼코른이라는 남자와 함께 오고, 페퍼코른은 우연히 쇼샤와 한스 카스토로프의 관계를 알고 자살을 하고 쇼샤 부인은 떠나버린다.

 

남은 한스 카스토로프는 허탈감에 빠지고 무감각이 그를 지배한다. 정지된 것 같은 시간, 마의 산에서 무감각한 상태로 남아 있다. 어느 날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한스 카스토로프는 그때서야 긴 잠에서 깨어나듯 그를 지배하고 있던 무감각에서 깨어난다. 그는 곧 하산하지만 그가 선 땅은 이젠 전장 터. 그곳 역시 삶의 자리가 아니라 죽음의 자리로 변해있었다. 그는 '보리수'노래를 부르며 저녁 어스름 속에서  빗발치는 포탄 속으로 사라져간다.

 

뒤늦은 깨닫는 우리 인생과 끝끝내 변화를 낳는 시간

 

삶과 죽음이란 무엇이며 시간이란 무엇일까. 깨어있음과 무감각은 또 무엇일까. 특이한 점은 소설에서는 완전 숫자 7이 다양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해설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소설 <마의 산>은 일곱 개의 장(제1장~7장)으로 구성되었고 체온계를 입에 무는 시간도 7분이며, 카스토로프는 일곱 개의 식탁에 일 년 꼴로 앉아 보면서 7년간 머무른다.

 

요양원에 온 지 3주째가 되어서야 마리아 반치니의 맛이 제대로 나기 시작하였고 제 맛이 나기까지는 65일에서 70일이 소요된다. 7개월이 지나 소설의 정점인 <발푸르기스의 밤> 장면이 나오고 소설의 절반인 상권이 끝난다. 두 삼촌의 이름도 일곱 개의 알파벳으로 되어 있고 카스토로프의 방 번호도 34호실이다. 세팀브리니라는 이름은 7이라는 숫자를 의미하며 페퍼코른이 자살을 생각할 때 일곱 명이 함께 했다. 이처럼 <마의 산>에서는 완성을 의미하는 7이라는 숫자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본다.

 

<마의 산>의 상권에서 처음에는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한 자 한 자 새겨 넣듯이 상세한 묘사로 천천히 흘러간다. 세 장이 끝날 때까지 이틀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요양원 사람들과 함께 지낸 첫 3주일에 관해 이야기 하는 데는 엄청난 수의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 반면 그 다음 3주간은 금방 지나가버린다. 그래서 소설의 첫 다섯 장에서 7개월이 지난 반면, 후반의 두 장에서는 6년 반의 세월이 지나가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소설에서 시간에 대해 거듭거듭 언급하고 또 자주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의 진행이 그러하듯 시간은 아주 많이 늘어났다가도 줄어들고 시시때때로 다양하게 와 닿는다.

 

우리는 살면서 똑같은 시간이지만 어떨 때는 아주 빨리 지나가버리고, 때로는 더디가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간다. 새롭고 낯선 것들을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성인이 되고 삶에 익숙 되면서 타성에 젖고 반복적인 생활의 흐름 속에서 시간은 휙휙 지나간다. 거듭 거듭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매일 똑같은 날들처럼 지나가는 그 모든 날들은 하루와 같다.

 

이렇듯 시간은 다양하게 경험된다. 저마다의 놓인 상황과 느낌에 따라 시간은 길거나 짧거나 정지하거나. 그러나 실제로 얼마나 길고 짧은지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서 7분이라는 시간이 무한정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처음에는 그토록 생생하던 시간 감각이 점점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익숙 되면서 휙휙 지나가버리기도 한다. 시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시간, 그것은 역에 걸린 시계처럼 장침이 5분마다 생각난 듯 꿈틀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움직이는 게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시계의 움직임과 같은 것이다. 또는 마치 비밀리에 자라고 있는지, 자라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비로소 확연히 눈에 띄는 풀과 같은 것이다. 시간이란 순전히 연장(延長)이 없는 점으로 구성되어 있는 선과 같다."('마의 산' 하권 p709)

 

한 청년(한스 카스토르프)이 '마의 산'에서 죽음에 애착을 느꼈다가 7년 동안의 무감각에서 깨어나서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정신적인 변화를 그린 <마의 산>은 읽는 이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한 젊은 청년의 성장기록이면서 타성에 젖고 무감각에 젖어 살다가 이미 삶의 자리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자리에서 뒤늦은 깨달음으로 한탄하는 우리 인생을 상기케 하고 또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만가만히 움직이면서 끝끝내 변화를 낳는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


마의 산 -상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을유문화사(2008)


마의 산 -하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을유문화사(2008)


태그:#토마스 만, #마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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