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승승장구>에 출연중인 탁재훈

KBS 2TV <승승장구>에 출연중인 탁재훈 ⓒ KBS


"대한민국에서 가장 재밌는 사람". 과거 MBC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했던 박명수는 탁재훈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 말을 듣고 윤종신은 "천재죠"라고 덧붙였다. 이들의 평가처럼 탁재훈은 한국에서 말을 가장 재밌게, 잘 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래서 그는 어느 프로그램에서든 앞장서서 토크를 풀어가는 스타일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탁재훈이 변하고 있다. KBS 2TV <김승우의 승승장구>(이하 <승승장구>)를 통해 게스트의 말을 누구보다 경청하며 공감하는 MC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찬란했던 '탁재훈 시대'는 왜 저물었나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햇수로 3년여의 시간 동안 KBS의 간판 MC는 누가 뭐래도 '탁재훈' 이었다. 성공의 시작은  KBS 2TV <상상플러스>였다. 탁재훈은 특유의 애드립과 숱한 유행어를 쏟아내며 <상상플러스>를 당대의 국민 프로그램으로 발돋움하게 만든 1등 공신이었다. 

2006년 <상상플러스>가 있었다면 2007년에는 <해피선데이-불후의 명곡>이 있었다. 2007년 <상상플러스>가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을 때, <불후의 명곡>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한 탁재훈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증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전 연령층의 폭넓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탁재훈은 2007년 'KBS 연예대상' 수상에 성공한다. 그의 수상 여부를 두고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전반적인 성적표를 놓고 봤을 때, 당시 탁재훈만큼 KBS에 공헌을 한 사람도 드물었다. 다른 방송사에는 출연하지 않고 오직 KBS에서만 활동했을 뿐 아니라 2006년, 2007년 2년 연속 높은 시청률을 보장한 특급 MC였기 때문이다.

 2007년 KBS연예대상을 받은 탁재훈

2007년 KBS연예대상을 받은 탁재훈 ⓒ KBS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광풍에 가까운 인기를 모았던 '탁재훈 시대'가 흔들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막말과 다소 성의 없어 보이는 진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진행하던 프로그램이 경쟁작에 역전당하는 등의 악재에 시달린 그는 유재석-강호동이 주도하는 예능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2년 가까이 예능계의 중심이었던 그가 하루 아침에 주변부로 밀려난 것이다.

그렇다면 탁재훈이 유-강이 주도한 예능계에서 존재감을 잃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예능인으로서 탁재훈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장점은 툭툭 던지는 말장난과 적재적소의 애드립이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MC든, 게스트든 적극적으로 말한다.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아 웃음 포인트를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 전면에 나서 분위기를 리드하는 것이 '탁재훈 스타일'의 본질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말하는 MC'다.

허나 유재석과 강호동이 제시한 MC상은 완전히 정반대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들어주는 MC'다. 탁재훈만큼 애드립이나 순발력이 강하지 않은 대신, 게스트의 말을 경청하고 충분한 대화 속에서 재미와 감동을 이끌어낸다. 유재석의 <놀러와><해피투게더>,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강심장>이 모두 이런 스타일의 프로그램이다. 유-강 체제가 확고해지면서 대중이 선호하는 MC 스타일이 말하는 MC에서 들어주는 MC로 변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탁재훈의 쇠락 원인은 '들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깊이 있고 편안한 토크를 추구하는 시청자들에게 말장난과 꼬리잡기가 특기인 탁재훈의 진행은 가볍고 유치한 것으로 치부됐다. 06~07 시즌 그에게 큰 인기를 안겨다줬던 재간둥이 MC 스타일이 2008년 이 후부터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말하는 MC'에서 '들어주는 MC'로 성장하다

 2000년대 중반 큰 인기를 끌었던 KBS 2TV <상상플러스>에 출연했던 탁재훈

2000년대 중반 큰 인기를 끌었던 KBS 2TV <상상플러스>에 출연했던 탁재훈 ⓒ KBS


그런데 최근 탁재훈이 변하고 있다. 그는 <승승장구>에서 게스트의 말에 공감하고, 적절한 반응을 곁들여 주며, 심지어 눈물까지 흘린다. 메인 MC 김승우나 이수근보다 훨씬 토크에 깊이 빠져들어 이야기 자체를 즐기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예전의 탁재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전향적인 자세다. 

솔직히 말해서 탁재훈이 처음 <승승장구>에 합류할 때만 해도 우려의 목소리가 상당했던 것이 사실이다. 김승우·이수근이 컨트롤하기에는 그가 너무 큰 MC였던데다가, 방송 스타일 역시 1인 토크쇼에 어울리지 않게 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합류 초반 과도한 애드립과 끼어들기로 인해 '분위기를 망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시청자들의 하차 요구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탁재훈은 <승승장구>에 누구보다 잘 녹아들고 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대신 적재적소에 제대로 된 리액션을 보여줌으로써 분위기를 살리고, 김승우·이수근과 호흡을 맞춰 완급을 조절한다. 1인 토크쇼 <승승장구>를 통해 말하는 MC가 아닌 들어주는 MC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특유의 깐족거림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터져 나오는 애드립도 여전하다. 대선배인 윤복희가 나와도, 사회적 명사인 혜민 스님이 나와도 상관없다. 빈틈을 찾아내 게스트의 말꼬리를 잡고 웃음을 이끌어 내는 탁재훈의 진행은 가히 수준급이라 할 만하다.

 KBS 2TV <승승장구>에 출연중인 탁재훈

KBS 2TV <승승장구>에 출연중인 탁재훈 ⓒ KBS


다만, 눈에 띄는 점은 그가 예전에 비해 훨씬 '절제'한다는 점이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언제나 전면에 나섰던 탁재훈이 이제는 전체적인 조합과 균형을 위해 뒤로 한 발 물러설 줄도 알고 있다. 때문에 그의 깐족거림은 과거처럼 불편하지 않고 분위기를 전환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장점을 버리지 않는 동시에 단점은 극복해나가는 자기연마의 과정을 통해 탁재훈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칼럼니스트 정덕현은 탁재훈을 일컬어 "예능의 잠룡"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무한한 잠재 가능성을 가진 MC라는 의미다. 이 말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현재 탁재훈은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1인 토크쇼' 장르에서 진화를 거듭하며 새로운 스타일의 MC로 성장하고 있다. 과연 이런 노력이 예능의 잠룡인 그를 깨워낼 수 있을까.

물론 이 물음에 정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탁재훈이 멈추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점차 대중의 신뢰를 회복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예능의 잠룡은 눈을 뜨기 위해 몸을 꿈틀거리고 있다.

탁재훈 승승장구 불후의 명곡 상상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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