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은 전통적으로 방송국과 기획사의 공고한 커넥션을 상징하는 도구였다. 상황은 달라졌다. 기획사 입장에선 예능을 통해 홍보를 하는 것이 이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예능은 전통적으로 방송국과 기획사의 공고한 커넥션을 상징하는 도구였다. 상황은 달라졌다. 기획사 입장에선 예능을 통해 홍보를 하는 것이 이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 MBC


분명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MBC <무한도전>은 2006년 캐럴 앨범을 발매한 이후 모두 일곱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앨범의 수록곡들은 모두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상업적 위력을 과시했다. 퀄리티 논쟁은 '강변북로 가요제' 당시에도, 그 이후에 벌어진 '나름 가수다'에도 있었다. 방송을 위한 음원, 방송을 위한 작곡과 편곡. 시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창작의 끝은 언제나 음악의 질적인 논쟁으로 끝나곤 했다.

사실 민감한 부분은 따로 있다. 예능에서 만들어진 음원들이 시장에 풀리면 기획사에서 야심차게 발매한 신곡들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2011년은 그 절정이었다. 열풍을 몰고 온<나는 가수다>는 매주 편곡 음원들을 쏟아내며 브라운관에서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어갔다. <무한도전>역시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앨범을 내놓으며 음원차트 상위권을 전부 접수했다. 이후 예능은 전통적 의미의 음악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나머지 두 곳의 지상파 방송국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을 앞 다퉈 방영하며 경쟁적으로 가공 음원을 출시했다.

<무한도전>의 박명수가 작곡한 '어떤가요' 앨범의 발매는 이러한 상황의 연장선상에 있다. '어떤가요'가 발매되자마자 막 앨범을 낸 소녀시대와 백지영은 곧바로 주요 음원차트 1위를 내줘야만 했다. 역시 신곡들은 힘을 쓰지 못했다. 앨범을 발매하는 <무한도전> 입장에선 충분히 예측 가능한 파급효과였다.

음악을 삼켜버린 예능. 그 본질은?

이제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 힘을 쓰지 못한다. 음악은 아직도 대중문화에서 중요한 포맷을 차지하지만, 대중들은 더 이상 음악만으로 열광하지 않는다. 예능은 이 부분을 파고들었다. 음악이 만들어지는 지난한 과정, 오디션 과정에서 참가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벌벌 떠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음악에 대한 감정이입의 폭을 극대화했다. 예능에 장착된 음악은 막강한 상업적 파괴력을 입증하며 예능의 흐름까지 바꿔놓았다.

대중들은 이제 예능이 짜낸 치밀한 카메라 워킹과 스토리텔링의 일부로서 음악을 느낀다. 음원이 만들어지는 날 것의 과정을 통해 그것을 진짜 음악이라 생각한다.

음악을 위한 음악 프로는 이제 다큐나 교양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한때 인기를 모았던 심야시간 음악프로는 하나 둘씩 폐지됐다. 지금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간신히 그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신중현이 말한 "쇼가 되어버린 음악"의 틀은 이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넘어 예능으로 번져갔다. 이것이 한류를 말하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현재다. 그것은 분명 음악이되, 쇼의 일부로서의 음악이다.

단순히 이 흐름을 음악을 향유하는 방식의 변화라고 하기엔, 방송국이 구사하는 음악 마케팅은 굉장히 공격적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강북 멋쟁이'를 만든 이가 <무한도전>의 박명수가 아니었다면 방송국에서 그렇게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무대를 연출하려 했을까. 여기에 본질이 숨어있다. 방송국의 음원 시장 진출이 음악시장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다. 예능이라는 막강한 홍보 수단을 가진 방송국이 음원 유통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폐단이 2011년 <나는 가수다>논쟁에 이어 한 차례 더 불거진 것이다. 

지난 2011년 MBC는 <나는 가수다>의 흥행에 맞춰 매주 방송이 끝날 때마다 편곡 음원을 제작해 스트리밍 업체에 유통해왔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유통마진을 얻어갔다. MBC는 2011년 음원매출만 따져보면 종합 2위의 음원유통 업체다. 음원시장이 컬러링, 스트리밍, 다운로드 정액제로 한정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MBC의 음원시장 잠식 비율은 가히 폭발적인 수준이다.

방송국의 음원수익은 정확히 말해 예능 프로를 통해 만들어진 음원에 대한 판권과 유통 수수료에서 발생한다. 방송국에서 믹싱을 거쳐 음원이 생성되면 이를 대형 스트리밍 업체에 유통한다. 이 과정에서 계약에 따라 판권에 대한 저작권료와 음원유통 수수료를 받는다.

음원을 만들기 위한 방송국들의 소요 비용은 0에 가깝다. 기획사들이 장시간 투자해 만든 기존 자원들을 가져다 쓰면 그만이다. 오디션 지망생들로부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음원을 얻어낼 수도 있다. 창작물에 대한 재가공인 만큼 수익을 생산자에게 재투자할 필요도 없다. 반대로 작곡가와 가수들에 대해 비용을 투자해가며 발매한 기획사의 신곡들은 차트 순위에서 밀려나며 힘을 쓰지 못한다. 논쟁의 발화점이 됐던 연제협의 불만도 여기서 폭발했다.

 예능 프로에서 어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던 방송 불패신화는 이제 기획사들의 고유한 영역까지 잡아먹는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예능 프로에서 어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던 방송 불패신화는 이제 기획사들의 고유한 영역까지 잡아먹는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 MBC


'어떤가요' 논쟁. 기획사-방송의 독점적 커넥션이 만든 자업자득

예능은 전통적으로 방송국과 기획사의 공고한 커넥션을 상징하는 도구였다. 가수들은 예능에 나와 음악을 홍보하고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예능은 그들을 기반으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서로에게 가장 확실한 윈윈 전략이었다. 상황은 달라졌다. 예능을 통해서 홍보를 하는 것이 이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방송이 가공된 음원을 출시하면 예능에서의 홍보 효과는 무위로 돌아간다.

음악을 삼킨 예능은 이제 가수를 주력으로 하는 연예 기획사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별도의 마케팅 없이 방송 프로에서 어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던 예능 불패신화는 이제 기획사들의 고유한 영역까지 잡아먹는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기획사들은 이제 괴물이 된 동반자에 의해 전혀 다른 국면의 시장구조로 진입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국과 함께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던 기획사들은 방송국들에 의해 점점 을의 관계로 밀려나고 있다. 기획사 입장에선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방식의 전략들이 필요해졌다.

여기서 기획사들 사이의 담합은 답이 될 수 없다. 2000년대 초반, 대형 기획사들은 대중들의 싱글앨범 발매 요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날림 음반을 찍어내다 mp3의 역습에 초토화된 경험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들에게 남은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방송국과의 새로운 커넥션을 강화하며 전혀 다른 형태의 괴물을 낳을 것인가, 아니면 별도의 길을 모색하는 새로운 실험을 감행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 결과는 오랜 시간을 거쳐 다시 기획사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지금처럼.

무한도전 강북멋쟁이 박명수 나는 가수다 음원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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