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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이도남님, 배순아(가명, 여 35)라고 합니다. 배신감에 못 이겨 사연을 보냅니다. 지금의 남편, 아니 이제는 과거의 남자가 된 사람 Y를 고발합니다. 

우리는 10년 전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난 5살 연상 Y와 저는 서로 호감을 갖게 되어 금세 연인관계로 발전했지요. 다른 동호회원들도 모두 인정하는 공식 커플이었습니다. 서로 사랑을 확인한 우리는 1년 만에 결혼했어요. 그는 부모를 일찍 여의었고 저도 홀어머니만 계신데다 사정이 어려워서 결혼식은 올리지 못하고 곧바로 동거를 시작했고요. 제가 살던 전셋집을 꾸며서 신접살림을 차렸습니다. 혼인신고도 굳이 할 필요를 못 느끼겠더라고요.

우리에게 아이는 없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했어요. 그런데 결혼 5년 만에 그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불행이 시작됐습니다. 도대체 뭘 하는지 Y는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외박하는 날이 더 많아지는 겁니다. 몇 달 전부터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Y는 전화로만 "사업이 잘 안되어서 빚쟁이들 때문에 당분간 몸을 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죠. 그런데 최근에 알아보니 저 몰래 딴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와 낳은 아들도 하나 있더군요. 배신감과 충격에 치가 떨렸습니다. 그런데도 남편, 아니 그 원수는 당당하더군요. 제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지자 되레 저를 보고 "너와 나는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라 남남이야" 하고 대꾸하더군요. 그 순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Y의 말처럼 10년을 함께 살아도 결혼식이나 혼인신고를 안 하면 남남인가요. 제가 Y를 고소할 수는 없나요. 제 억울한 심정, 법적으로 구제받을 길은 없을까요.

이혼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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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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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청춘 10년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가 돌아섰습니다. 마음도 몸도 모두 돌아섰습니다. 이별의 순간에도 미안한 기색도 없이 "그동안 남남이었다"는 말을 남겼다니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요. 이런 사람을 남편으로 믿고 살아왔던 배순아씨는 또 얼마나 서글펐을지요. 

결혼이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남녀 간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듯싶습니다. 사랑하면 반드시 결혼해야 하느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을 완성해 가는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 결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에도 형식이 필요할까요. 그건 당사자들의 자유입니다. 사랑에 형식이 중요하지 않듯 결혼식을 올리건 말건 혼인신고를 하건 말건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단, 법에서 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았을 때에는 법적인 구제를 받기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사실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남녀 간의 결혼에 혼인신고가 빠졌다면?

배순아씨와 Y의 관계를 사실혼이라고 합니다. 사실혼이란 실제 부부로서 결혼생활을 하지만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남녀관계를 말합니다. 혼인신고까지 마쳐 법적인 부부관계를 갖춘 '법률혼'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판례는 사실혼에 대해 "주관적으로 당사자 사이에 혼인 의사가 있고, 객관적으로 사회관념상 가족 질서적인 면에서 부부 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 생활의 실체가 있는 경우"라고 설명합니다.

사실혼이 되려면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합의가 있어야 하며, 또 실제 결혼생활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부적절한(?) 관계여서도 안됩니다. 예를 들어 법으로 결혼을 금지하는 8촌 이내 혈족 간의 근친혼이나, 중혼(배우자 있는 사람이 다시 결혼하는 것), 부첩관계와 같은 경우는 사실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즉 혼인신고만 없을 뿐 부부와 똑같은 관계가 사실혼입니다. 따라서 동거나 약혼과도 상당히 다릅니다. 동거는 결혼할 의사가 없이 일시적으로 함께 생활하는 것을 뜻하므로 동거남녀를 부부로 보기 어렵습니다. 약혼은 장래에 결혼하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에 현재 함께 살아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꼭 결혼식을 올려야 사실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결혼식이나 상견례는 하지 않았지만 양가 부모 양해 하에 상당 기간 동거하면서 상대방 부모 장례식에 참석하고, 양가에 명절인사를 함께 다녔다면 "사회통념상 실질적으로 부부공동생활로 볼 만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와 달리, 결혼을 전제로 몇차례 동거하였으나 주민등록을 함께 하지는 않았고 동거기간도 길지 않았다가 헤어진 커플에게는 "남녀로 교제한 것일 뿐 혼인생활의 실체가 존재했다고 볼 수 없다"며 사실혼 부부가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사실혼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혼 부부도 부부로서 법으로 일정한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사실혼, 법률혼과 같은 점 다른 점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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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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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혼은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혼과 비슷한 효과가 있습니다. 부부처럼 동거·부양·협조의무가 따릅니다. 이건 도덕적 의무일 뿐 아니라 법적 의무이기도 합니다. 10년도 넘긴 했습니다만, 이런 의무를 확인해 준 대표적인 사건을 소개합니다.

[사례] 여대생 C씨(여성)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D씨를 만나 2년 정도 교제하고 결혼식을 올렸으나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은 신혼집에서 얼마간 동거했는데 D씨는 변호사 개업준비를 한다고 고향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D씨는 몰래 와서 옷가지와 패물 등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C씨가 찾아오자 D씨는 "뜻이 바뀌어 헤어지자는 것이고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니 다시는 찾아다니지 말라"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결별을 통보하였습니다.  

D씨의 황당한 태도에 C씨는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사실혼관계에 있어서도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사실혼 배우자의 일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동거·부양·협조 의무를 포기한 경우에는 악의의 유기에 의하여 사실혼관계를 부당하게 파기한 것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위자료 금액은 6천만 원으로, 1998년 판결 당시로써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사실혼 부부에게도 일상가사채무의 연대책임을 비롯하여 부부공동생활을 전제로 하는 일반적인 혼인의 효과가 생깁니다. 또한 위 사례처럼 결혼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위자료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며, 결혼생활에서 함께 모은 재산이 있다면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혼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연금을 받을 자격도 있습니다. 공무원연금·군인연금·국민연금법 등에는 유족연금을 받을 자격에 사실혼 배우자도 포함시켜 놓고 있습니다. 또한,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임차인 사망시 사실혼 배우자의 권리승계도 인정하고 있습니다(임차인인 남편이 상속인 없이 사망했다면 해당 주택에서 가정공동생활을 하던 사실혼 처가 임차인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합니다. 만일 함께 생활하지 않은 2촌 이내의 상속권자가 있을 때는 상속권자와 함께 임차인의 권리를 승계받게 됩니다).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권 없고 간통죄 고소 못해

우리나라는 형식혼주의를 따르고 있습니다. 형식혼주의란 쉽게 말해서, 서류상으로 혼인신고가 되어 있는지를 중시하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사실혼은 조금 불안정한 지위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법의 잣대로 보자면 사실혼 부부는 배우자끼리 친족이 될 수 없고 배우자 가족들과도 인척관계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사실혼 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배우자 사망시 재산상속권이 없습니다. 법률상 배우자가 다른 상속인들보다 50%를 더 얹어 상속받는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래서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상속권을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또 사실혼 부부도 외도를 하지 않을 의무가 있지만 간통죄로 형사 고소할 수는 없습니다. 형법상 간통죄는 법률상 배우자만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신적 피해에 따른 위자료 청구는 가능합니다. 상간자(함께 바람피운 이성)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정리해봅니다. 사실혼 관계는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을 뿐 실제 부부 사이인 관계를 뜻합니다. 부부로서의 권리와 의무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끼리도 친족이 되지 못하고 상속권이 없다는 불편이 뒤따릅니다.

형식 갖추지 못한 결혼, 때로는 불편도 따른다

아직도 상심하고 있을 배순아씨의 질문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부부라고 해서 남남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간통죄로 Y를 고소할 수는 없겠군요. 굳이 책임을 물으시겠다면 사실혼관계를 부당하게 깨뜨린 Y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하시기 바랍니다. Y처럼 파렴치한 사람에겐 본때를 보여줄 필요도 있습니다. 참고로 최근 판결을 소개합니다. Y와 비슷하게, 10년 정도 사실혼관계를 유지하다가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과 혼인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그에게 위자료 2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바 있습니다.       

사랑엔 국경도 나이도 없다는데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원한다면 결혼식을 생략하건 혼인신고를 안 하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하지만 형식을 갖추지 않은 사랑은 때로는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정도 감수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1.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생활법률 책 <생활법률상식사전>(2010)과 <생활법률해법사전>(2011)을 썼습니다.
2. 기사에서 언급한 상담내용은 개인의 신상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명을 사용했으며, 사연과 판결 등을 바탕으로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3. 여러분이 보내주신 사연은 개별적으로 답변을 드리며, 이와 별도로 각색하여 기사나 출판에 사용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메일 주소 : jundorapa@yahoo.co.kr)



태그:#이혼 , #사실혼, #이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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