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 2013'(5월 30일부터 6월 7일까지 롯데시네마 종로 피카디리) 여러 섹션 중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족은 늙는다.'

그럼, 가족도 늙고 말고. 가족 구성원이 나이 먹어가니 당연히 가족도 나이 드는 게지. 해마다 젊은 감독들이 나이 듦·노년·죽음에 대해 어떤 영화들을 만들어낼지 궁금해하며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래된 사진, Old Picture> (감독 박단비, 2012)

영화 <오래된 사진>의 한 장면   할아버지는 오늘도 사진기를 들고 공원으로 나간다...

▲ 영화 <오래된 사진>의 한 장면 할아버지는 오늘도 사진기를 들고 공원으로 나간다... ⓒ 인디포럼 2013

평생 사진을 찍어온 할아버지. 디지털 카메라에 휴대전화 카메라·폴라로이드 카메라까지 자유자재로 다루는 젊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사진사에게 돈 내고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하는 일은 드물다 못해 거의 없는 일. 그래도 할아버지는 오늘도 오래된 수동 사진기를 챙겨 공원에 나가 앉는다.

그러나 그동안 찍은 사진을 인화해 주던 단골 사진관의 친구도 가게 문을 닫기로 했다고 알려오니 더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친구와 둘이 가게 앞에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던 날, 할아버지는 홀로 식탁에 앉아 소주를 마신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 말, 흐르는 세월을 붙잡아 넣은 듯 사진은 지난 날들로 우리를 데려가곤 한다. 그러나 사진 밖 현실은 시간을 매어놓을 수 없으니 사람도 늙고 기계도 낡아간다.

할아버지가 매일 아침 밥을 챙겨주던 고양이가 어느 날 나타나지 않듯이, 우리 앞의 시간도 문득 그 무게감을 달리하면서 저만치 달려가 사라져버린다. 낡은 사진기를 꼼꼼히 닦아 상자에 넣어 봉하듯, 우리들 지난 날도 봉해지는 것일까.

사람은 쓸모가 아닌 존재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팍팍한 삶이 사람마저 쓸모로 판단하니 노년이 외롭고, 그래서 다들 노년을 무서워한다.

<보청기, Hearing Aid> (감독 김양희, 2013)

지난해 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는 갑자기 귀가 나빠져 거의 반응이 없다. 듣지 못하니 말씀도 거의 하지 않는다. 답답한 딸은 큰소리로 말하게 되고, 늘 어머니께 화를 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다. 그래서 보청기를 맞춰드리기로 한다.

영화 <보청기>의 한 장면  흑백사진 속 어머니는 꽃 같은 청춘이다

▲ 영화 <보청기>의 한 장면 흑백사진 속 어머니는 꽃 같은 청춘이다 ⓒ 인디포럼 2013


초행길이라 엄청 헤매다가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보청기 기사는 이런 저런 검사를 거쳐 어머니께 맞춤형 보청기를 만들어주고 떠난다. 드디어 의사소통이 되는 어머니를 보며 밝게 웃음 짓는 딸. 그러나 날카로운 기계음이 괴로운 어머니는 보청기를 빼버리고 말씀하신다. 죽을 날 받아둔 사람한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흑백사진 속 꽃같은 어머니와 잘 듣지 못하는 늙은 어머니. 저 멀리 보이는 일제강점기 때 사용하던 격납고와 푸른 마늘밭. 어머니는 흑백사진 속 그 때로 돌아가지 못하고, 격납고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들 노년도 그와 같다는 뜻으로 읽으니 가슴이 문득 서늘하다.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김양희 감독은 "환자가 있는 집이라 해도 일상에서는 슬픔과 기쁨이 오가듯이, 슬픔과 재미가 교차하도록 영화를 만들었고 결국 우리가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마도 잠깐의 의사소통을 위해 보청기의 기계 소음을 견뎌내는 일이 어머니는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노인복지관에서 만나는 어르신 중에 기술의 문제가 아닌 알 수 없는 이유로 보청기 소음이 심해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아무 장애도 없이 소통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영화 속 어머니 역시 괴로우셨으리라. 그걸 미처 모르니 우리는 들으려고, 보청기에 적응하려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보챈다. 더는 아무 소용 없다는 어머니 말씀이 안타까우나 그 또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아픈 진실이기에 영화는 딸의 울음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신, Dear> (감독 송민주, 2012)

어머니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한 아들은 어느 날 어머니께 묻는다. 그때 어땠냐고. 녹음기에 대고 말씀하신 어머니의 인생을 아들은 어머니의 음성은 그대로 살리고, 사실적인 화면이나 재연이 아닌 흐릿하고 특별한 화면으로 만들어 냈다.

가난, 집안일과 농사일, 방직공장, 어른들간의 약속으로 정해진 결혼, 무관심한 남편, 남매를 보고 살아온 세월, 이혼, 도배일, 수술.

어머니의 50년 인생을 도저히 다 알 수 없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 귀에 새겨진 단어들이다. 사랑을 하면 어떤지, 사랑을 나누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고, 나도 한 번 느껴보고 싶다는 어머니. 관객과의 대화에서 송민주 감독은 말했다. 아들이 만든 영화를 보신 후 어머니는 말씀하셨단다. "후련하다"고.

어머니, 당신은 지금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나는 어머니에 대해 과연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요? 묻게 만드는 영화다.

오래된 사진 보청기 당신 인디포럼 2013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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