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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에서 바라본 모습. 다리 건너 앞마을도 보인다.
▲ 원천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모습. 다리 건너 앞마을도 보인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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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후배인 민기가 며칠 전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얼마 전 여수의 한 해변가 마을로 귀농했다. 

"강 선배, 여기서 살기 '빡셀' 것 같아요. 사람들도 거칠고 텃세도 있는 것 같고요. 다가가기가 좀…. 뭐, 좋은 방법 없을까요?"

목소리가 무거웠다. 그렇잖아도 원주민들과 빚어진  마찰 때문에 고단한 시골살이를 하는 귀촌·귀농인들의 사연이 더러 들려온다. 심지어 그 일로 귀촌·귀농에 실패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익명의 도시생활과 달리 시골은 이웃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민기에게 무슨 말을 해주나. 시작이 중요한데….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기로 했다. 내가 2년 전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사왔을 때 있었던 일을. 

집집마다 돌담이다.
▲ 돌담 집집마다 돌담이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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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좋은 마을 나무
▲ 느티나무 그늘 좋은 마을 나무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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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나는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마을을 돌았다. 한 집 한 집 '무단'으로 들어가  "저… 계세요? 안녕하세요? 저, 별거 아니지만 이거…" 하고 안으로 꺼져드는 목소리를 다잡으며 머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 작은 상자 하나를 쭈뼛쭈뼛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수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마을 한 바퀴를 다 돌고 혹여 빠트린 집이 있을까 싶어 한 바퀴 더 다리품을 팔았다. 헉헉 더운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동네 길을 오르내렸다. 그래도 두 바퀴째 돌 때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동네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해발 350미터의 동향 마을이었다. 역사도 오래되고 규모도 제법 큰 동네였다. '산촌생태마을'이었다. 마을회관과 산촌문화관, 취미가공체험장 같은 건물들이 번듯했다. 마을 살림을 꽤나 꼼꼼하게 꾸려가는 것 같았다. 주변으론 사과밭과 고사리밭이 많이 보였다. 돌담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지은 집들은 대문이 없었다. 물이 좋고 풍부한 마을 같았다. '원천(元川)'이라는 마을 이름만 보아도. 캥기는 건, 나는 조용한 시골살이를 원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관광지라는 것. 여름 한철이라지만. 마침 느티나무 그늘 아래,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 옆에 앉아 잠깐 쉬었다.

마을 일에 주민들의 협조가 높다.
▲ 산촌문화관 마을 일에 주민들의 협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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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밭이 많다.
▲ 사과밭 사과밭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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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날 동네에 예순 두 장의 수건을 돌렸다. 웬 수건 돌리기? 돌잔치나 칠순잔치의 답례품을 돌리는 것도 아니고, 무슨 유세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영업집 개업 홍보용도 아닌데. 그리된 사정은 이러했다. 

그 전날 고흥에 사는 고모님이 오셨다. 한 마디 언질도 없이 갑자기 서울생활 정리하고 지리산자락으로 이사 온 조카 집을 부리나케 찾아오신 거였다. 이것저것 바리바리 챙겨 들고. 수박, 감자, 양파, 마늘, 휴지, 세제… 그리고 수건 팔십 장. 

"이사떡을 돌려야겠지만 날이 이리도 더우니 음식은 좀…. 생각 끝에 수건 맞춰왔다. 이렇게라도 동네 분들께 인사드리는 게 좋겠다."

당장 앞장서 동네를 도시겠단다. 고모님은 그 씩씩한  목소리로 우리 조카 잘 부탁한다는 말 끝에, 실상은 변변치 못한 인사(人士)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은근슬쩍 조카를 치켜세워 소개할 심사였다. 조카사랑을 조카자랑으로 펼칠 판이었다. 앗, 생각만 해도 낯뜨거웠다.

게다가 나는 어떤 경우로든 동네에서 소란 떨며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눈에 띄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 저 사람과 깊게 얽히고설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툇마루에 걸터앉아 지리산 자락과 하늘을 바라보며 음전하게 살고 싶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나날이 산골의 적막한 맛을 조용히 음미하고 싶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들께 예의 바른 인사 정도나 꼬박꼬박 챙기면서. 내겐 고요하고 고독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 고모님을 주저앉혀야 했다.

"지금 다들 일 나가고 집이 다 비었을 텐데… 나중에 제가 할게요."

강한 어조로. 고모님은 끝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떠나셨다.

운치 있는 돌담을 보며 걷는 마을 길
▲ 마을 길 운치 있는 돌담을 보며 걷는 마을 길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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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우리 옆집이다. 부지러하신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다.
▲ 대문 없는 집 바로 우리 옆집이다. 부지러하신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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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에 수건 팔십 장 갖다놓겠다, 다음 날 이장님께 전화드렸다. 그런데 집집마다 돌며 직접 나눠주라신다. 단호한 목소리였다. 이런, 내 꼼수가 통하지 않게 됐다. 별 수 없이 수건상자를 들고 메고 동네를 돌아야 했다. 수건 바탕에 '잘 부탁합니다. 이사 왔습니다. 아, 무, 개' 같은 문구가 찍혀 있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 힘들게 이게 무슨 짓이여? 그냥 살면 되지…. 나 원 참…."

말은 통박인데 미소 짓는 할머니의 표정은 주름살 속까지 밝았다. 

"내가 뭐라고, 나까지 안 챙겨줘도 되는데…. 고마워서 어쩌나…. 고마워서, 고마워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는 다리로 길까지 따라 나오며 배웅했다. 

"이런 고마울 데가, 잘 쓸게요. 들어와 차 한잔 해요."
"이사 잘 왔어요. 정말 살기 좋은 동네로 온 겁니다."
"어이구, 이런… 허허…."

마주칠 때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퉁퉁거리던 아랫집 아저씨가 활짝 웃으셨다. 시골소년처럼 천진하게.

큰샘과 작은샘 우물이 두 개 남아 있다.
▲ 큰샘 큰샘과 작은샘 우물이 두 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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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떡 대신 마을에 돌린 수건
▲ 수건 이사떡 대신 마을에 돌린 수건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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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은…. 그러니까…."  

이런저런 덕담과 조언들을 듣다보니 마음 한 켠이 훈훈해지는 느낌이었다. 막무가내로 붙드는 손길을 뿌리치지 못해, 이 집 저 집에서 수박이며 찰옥수수며 고로쇠수액이며 호박전 등을 대접받았다. 차차 머쓱함과 주저함이 사라져갔다. 이 기분은 뭐지? 이웃과 더불어 사는 맛인가? 은근히 달큰했다. 

마을 일주를 끝내고 돌아오니 마당에 땅거미가 스멀스멀 내려앉고 있었다. 얻어온 오미자원액으로 차를 한잔 타 들고 툇마루에 앉았다. 사방은 어두워가도 내 속은 내내 밝았다.  

이 얘기를 다 듣고 민기가 "와우!"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어 "알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라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알았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잘 지내"라고만 말했다. 

그래, 민기야, 잘 지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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